하청에 재하청 ‘다단계 논의 구조’···“시간‧예산 낭비”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가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 정시 확대 비중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대입 개편 결정권이 결국 교육부로 다시 넘어갔다. 1년간 다단계 논의 구조를 거치고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교육부를 향한 비난이 거센 상황이다.

1년 동안 ‘정시비율 조금 확대’ 수준에 그쳐···“김상곤 사퇴 촉구”

국가교육회의는 지난 7일 2022학년도 대입에서 수능 위주 정시전형 비율을 현행보다 확대할 것을 교육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현행(2019학년도 기준 23.8%)보다 확대할 것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시 확대 비중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특별위원장은 “각 대학의 사정을 고려해 권고하려 했지만 자료가 부족해 명확한 비율을 정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입장인 만큼 정시 비율이 현행(2019학년도 기준 20.7%, 전체 정시전형 23.8%)보다 소폭 늘어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교육회의는 정시 확대 비중을 명시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해 정시 확대를 유도하는 선에서 최종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커졌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교육부는 시민참여단의 고뇌와 국가교육회의의 결정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8월 안에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을 차질 없이 발표할 것”이라며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책임자 문책하라”
성토 목소리

 
당초 교육부는 대입 개편 권고안에 정시 확대 비율이 명시될 경우 관계 법령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현행 고등교육법상 대입전형 비율은 대학 자율인데 정시를 특정 비율 이상으로 확대하려면 2022학년도 입시까지 남은 기간 대학에 이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국가교육회의가 정시 확대 비율을 명시하지 않아 교육부가 이를 법적으로 강제할 명분이 사라졌다.

여기에 교육부가 정시 확대 비율을 법령에 특정할 경우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수시 위주 전형을 유지해 온 대학들을 중심으로 논란이 될 여지가 많다. 한 예로 포스텍(포항공대)은 수시전형으로 신입생을 100% 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부가 지난해 8월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 방침을 백지화하고 대입 개편을 1년 미룬 뒤 국가교육회의→대입 개편 특위→대입 개편 공론화위→시민참여단으로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다단계 논의 방식을 취하면서까지 뜸을 들였으나 사실상 현행 대입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시간과 예산만 낭비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좋은교사운동은 “국가교육회의가 의결한 대학입시제도 개편 권고안은 지난해 대입 개편을 1년 유예한 수준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며 “1년의 시간을 보내고 20억이 넘은 예산을 들여 정시비율을 조금 확대하는 것을 권고하는 안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입 개편 공론화 과정의 문제점을 살피는 동시에 김 부총리 등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공론화 결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성토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고교학점제, 혁신학교 확대 등 수많은 미래 교육정책들이 이번 결정으로 기능이 정지될 위기에 처했고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는 담보할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게 됐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화 과정의 잘못을 살펴 책임자들을 엄중하게 문책하고 결과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역‧전문대학
생존권 걸렸다?

 
지역 대학의 촉각도 곤두섰다. 학생 수 감소와 수도권 대학 선호 등으로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대학 상황에서 정시 확대는 생존권과 결부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대학들은 그동안 수시를 통해 우수 학생을 우선 충원해 왔는데 정시가 확대되면 충원 미달 우려가 발등의 불이 되는 것.

가뜩이나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대학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는 조치인 셈이다.

국가교육회의가 신입생 충원 난을 이유로 정시 확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권고한 대학(산업대학, 전문대학, 원격대학)에도 지역 대학은 빠져 있다.

이에 대해 지역의 한 사립대학교 관계자는 “전국 대학의 수시모집 평균이 약 75% 정도이고 우리 대학은 84%에 달한다”며 “수도권 대학들은 학생 충원에 문제가 없겠지만 지역 대학들에 정시 확대는 말 그대로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나마 수시 모집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우선 채용할 기회로 활용해 왔다”며 “수시모집에서 정시로 이월되는 비율을 따지면 현재도 정시 모집은 30%에 육박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시 확대 적용 대상에서 제외 대학으로 언급된 전문대학도 이달 중으로 발표될 대입개편 최종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4년제 대학교보다 어려운 여건인 전문대학도 대입 개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다. 실제로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을 통해 수험생들의 지원학교 연쇄 이동이 도미노처럼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역 전문대학의 경우 일부 학과는 100% 수시로 충원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수시 모집은 우수 학생 유치의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대위원장은 지난 8일 대입 개편 권고안과 관련해 “실험실의 쥐들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실험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 부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에서 “2022학년도 대입을 치를 현재의 중3 학생들과 학부모, 일선 현장에서의 혼란과 분노는 그야말로 극에 달해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김 부총리는) 교육정책 수립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번복해 왔을 뿐만 아니라 책임 회피, 무능력, 무소신 등 그야말로 총체적 부실과 무능함을 드러내면서 백년대계가 아니라 백 일도 못갈 정책으로 극심한 혼란만 남겨놨다”고 혹평했다.

그는 특히 “국가 교육정책을 하청에 재하청으로 넘기며 책임 회피에만 열중하고 있으며 논의는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고 그간 교육정책 논의 과정을 강력 비판했다. 그러면서 “요즘 교육부가 왜 존재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김 부총리는) 일말의 책임이라도 갖고 있다면 즉시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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