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에서 ‘진보’로 이름만 바꿔 달았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당선 직후 80%대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하던 지지율이 취임 후 1년 3개월여가 지난 현시점에서 50%대로 뚝 떨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기가 끝났다’고도 말한다. 지금까지는 문 대통령 이미지에 따른 지지율이라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 앞에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남북관계, 경제, 교육 등이 그것이다. 이 문제는 절대 대통령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청와대 정부’란 “대통령제 민주 정부의 한 퇴행적 형태”
비서실…“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자의적 권력기구”


리얼미터는 tbs 의뢰로 지난 6~8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만4967명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66주 차 국정수행 지지율이 지난주 대비 5.2% 포인트 내린 58%로 나타났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이는 취임 이후 최저치다.

주요 하락 요인으로는 민생 문제가 꼽힌다. 최저임금 인상안 등이 논란이 불거지면서 서민들의 생계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리얼미터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전기요금 인하 방식이 한시적 누진제 완화 수준에 이르러 국민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해 부정적 평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았다.

경제·민생 문제가 새 정부 출범 2년 차 국정 변수로 작용한 상황에서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청와대도 고심하고 있는 눈치다.

청와대는 지난 9일 오전 열린 현안점검회의에서 지지율 최저치 관련 보고를 받은 후 민생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 등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현안브리핑에서 BMW 사태, 폭염 속 전기요금 문제 등을 거론, “요즘 몇 가지 논의되는 쟁점들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봤다”며 자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
약일까 독일까?

 
정치권에서는 현 정부 최저치를 기록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에 대해 ‘이제부터가 진짜다’라는 반응이다.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이었던 ‘적폐청산’ 효과가 다 한 만큼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능력이 지금부터 발휘돼야 한다는 소리다. 말로만 전 정부와 다름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결과로 말해야 하지만 눈앞에 쌓인 과제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이다. 문재인 정부 탄생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문 대통령의 공약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눈길을 끄는 책 한 권이 출간됐다. 정치학자 박상훈이 쓴 ‘청와대 정부’라는 책이다.

그는 책을 통해 민주주의에서 정부란 어떤 존재이며 왜 필요하며, 또 어떻게 통치될 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탐색했다.

저자는 ‘박근혜의 청와대 정부’와 ‘문재인의 청와대 정부’를 비교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정부를 “박근혜의 ‘보수판’ 청와대 정부와 비견될 만한 ‘진보판’ 청와대 정부의 등장”으로 봤다.

그가 말하는 ‘청와대 정부’란 “대통령제 민주 정부의 한 퇴행적 형태”를 가리킨다. 그는 “대통령이 자신을 보좌하는 임의 조직인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일종의 자의적 통치 체제”로 정의했다.

또 “청와대 정부의 다른 얼굴은 의회와 정당, 내각 등 책임 정치의 중심기관들이 청와대 권력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청와대 정부의 원형은 박정희 정부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가 말하는 청와대 정부의 핵심은 대통령중심제, 청와대 중심의 당청관계, 비서실 권력의 획기적 강화다. 자연스레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떠오른다.
 
“왜 책임 정부 대신
청와대 정부 만들었나“

 
박상훈은 문재인 대통령 1기 정부 운영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 정부 대신 청와대 정부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가 국민 여론을 직접 이끌고자 한 것, 청와대가 권력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 ‘청와대 보수회의(수석 보좌관 회의의 약작)’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내각 통할권이 부활된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의 정부 구성이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약속과 다르다고도 지적했다. 박씨는 문 대통령은 과거 의회‧야당과 협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책임 총리와 책임 장관을 중심으로 정부를 운영하겠다고 밝혔었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 정부 특히 비서실 조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박 씨는 “실장과 수석으로 대표되는 비서실 조직은 내각을 통할하고 집권당을 압도하는 힘을 갖는 반면,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자의적 권력기구”라며 “애초부터 그럴 요량이었다면 미국처럼 차라리 그들을 장관으로 세우고 청문회를 거치게 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굳이 수석 보좌관 조직이 필요했다면 집권당의 정책 라인을 들여왔어야 했다”고 조언했다.

그는 입법무가 아닌 청와대가 직접 민주주의라는 입법 청원을 받는 일, 사법부가 아니면서 적폐청산을 앞세워 도덕의 심판장을 주도하는 일 등에 대해서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박 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정부’ 아래서 “정당정치와 당정 관계의 기능이 살아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기능이 약해지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으로 이루어진 다당제는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며 “1년도 안 되어 이 가운데 두 개 정당(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이름을 상실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중심이 되어 적대와 증오의 정치를 반복하는, 이른바 ‘양극화된 양당제로 퇴행하는 양상만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동시에 진보적 시민과 보수적 시민 사이에서, 나아가 각자 그 내부에서 적대적 갈등과 분열, 상처가 확대되고 심화됐다. 적대적 양극화가 다시 강화되는 가운데 불안정한 다당제가 분열과 재편을 거듭하는, 지극히 기형적인 정당정치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박 씨가 생각하는 좋은 정부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시민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가꿔가는 것”이라며 “그 위에서만이 시민 개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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