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여당의 전당대회에서 이런 사달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친문이 친노를 밀어내고, 친문을 극문이 타격하는 전당대회를 보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지금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살을 내주고 뼈도 내주는 해괴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전당대회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 ‘부엉이 모임’이 후보들보다 먼저 뜨면서 징조가 보이기는 했다. 전해철, 최재성, 이해찬, 김진표, 박범계와 같은 친문 후보들의 단일화가 뉴스 될 때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앞섰다. 김진표가 이재명의 탈당을 주장한 뒤로는 달리 방도가 없이 뺄셈만 가득한 전당대회로 방향이 잡혀 버렸다.
 
물론, 최근 한국 정치에서 편을 가르고, 미워하다 증오하고, 경쟁상대를 악마화하는 행태는 익숙한 풍경이기는 하다. 이명박의 친이와 박근혜의 친박은 서로 미워하고 몰락시키려다 보수 정치를 위기로 몰아넣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최근에‘뜨거운’ 이재명은 지난 2017년 대선 이후 일부 친문 세력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항마로 뛰다 패배하면서 이재명은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전해철을 가볍게 누르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재명의 반대자들은 이재명이 밉기에 남경필을 지지하자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다.
 
이재명만 미움의 대상에 오른 것은 아니다. 김진표 지지를 표방하는 세력에게 이해찬은 대통령을 ‘문실장’이라고 부르는 퇴물에 불과하다. 젊은 날을 민주화에 바치고 평생을 민주당 외길을 걸으며 김대중, 노무현 곁을 지킨 정치인 이해찬은 사라지고 없다.
 
반면, 이해찬 지지자들에게 김진표는 애초에 민주당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보수 기독교에 아부하고 사드 도입도 찬성하고 전술핵 도입까지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에나 어울리는 정치인이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김진표와 이해찬은 더 이상 한 당에 공존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이 전당대회 때 갑작스레 생긴 일은 아니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안철수는 ‘MB아바타’로 스스로 무너지기 전부터 간철수, 안초딩, 안크나이트라 불리며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재명, 안철수에게 투영되는 이런 일관된 미움의 정서는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SNS상에서 이종걸, 박영선, 설훈, 정청래, 추미애, 안민석, 김현, 은수미, 유승희, 우원식, 우상호 등은 같이 갈 수 없는 정치인이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친노, 친문과 대척점에 서거나 다른 선택을 했었던 게 빌미가 된다.
 
보수 진영의 반격 앞에서 내부 총질에 여념 없는 세력이 진지를 제대로 지키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집권 2년 차에 대통령 지지도, 당 지지도가 동반 하락하는 이유를 경제적 어려움 탓으로만 볼 수 없다.
 
이 미움의 정서는 마치‘반향실 효과’처럼 자신들이 주류고 다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작은 방에서 미움의 정서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맴도는 것에 현혹되어 확증편향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드루킹과 경공모는 이런 세태에 온라인을 타고 컬트집단화해 정치판을 좌지우지한다는 환상에 빠졌던 존재들이다.
 
이 미움의 정서는 지지층을 밀어내고 세력을 미분화해서 결국 소수가 되는 길을 걷게 할 가능성이 높다. 타깃 삼은 정치인을 고립시키기 위한 혐오와 증오가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결국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통령마저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당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협치를 강조하며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진영 논리나 선악 구도로 인한 혼돈을 멀리하고 집권 세력, 사회적 다수파다운 결정을 한 것이다. 대통령이 이런 생각까지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한 번 집권하려면 선거에 이기면 되지만, 계속 집권하려면 그 사회의 다수가 되는 길뿐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