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은 돈만 330조…정부 1년 예산의 78% 육박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기업들이 잇달아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놓으며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LG그룹을 시작으로 1월 현대차, 3월 SK, 6월 신세계, 이달 8일 삼성, 12일 한화까지 기업별로 기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미 밝혀진 것만 330조 원으로 정부 1년 예산 447조의 78% 육박하는 투자 및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가 현장 의견의 정책 연계보다는 ‘정권 코드 맞추기’나 ‘보여주기’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자체적인 경제 정책에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일자리 창출의 근원지인 재계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靑 ‘무언의 압박’에 재계 ‘정권 코드’ 맞췄나
‘보여주기’에 그칠까 우려의 목소리도


우선 ‘투자·일자리 창출’ 계획을 발표한 기업을 살펴보자. LG그룹은 올해 국내 투자 계획을 지난해 17조6000억 원보다 8% 증가한 19조 원으로 올렸고 약 1만 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또 4조 원을 투자해 LG 사이언스파크 설립을 약속하며 향후 2만2000여 명의 연구개발(R&D) 인력 채용을 약속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월 향후 5년간 5대 신사업 분야에 23조 원을 투입해 4만5000명 규모의 신규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SK그룹도 3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만남 이후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등에 27조5000억 원을 투자해 8500여 명의 신규 채용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그룹의 투자 규모는 지난해 대비 44% 증가했으며 2020년까지 3년간 80조 원의 투자를 실시하고 채용은 2만8000여 명 수준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신세계 그룹도 정용진 부회장과 김 부총리의 만남 이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신세계 그룹은 향후 3년간 연평균 3조 원 투자 및 매년 1만 명 이상의 채용을 실시키로 했다. 

삼성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지난달 초순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 순방 기간 현지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의중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국내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이달 초에는 김 부총리가 삼성전자 평택공장에서 이 부회장을 만났다. 명목상으로 업계 현안을 살피고, 애로를 수렴하기 위한 자리지만, 이 부회장에게 대규모 투자 등을 부탁하기 위한 자리라는 게 재계 분석이다.

이에 삼성은 지난 8일 향후 3년 동안 2만 명에서 2만5000여 명 수준의 채용 계획을 대폭 늘려 약 4만 명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삼성은 국내에 130조 원, 연평균 43조 원의 투자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삼성은 이를 통한 고용 유발 효과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투자에 따른 고용 40만 명, 생산에 따른 고용 30만 명 등 모두 7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화는 기존 중장기 전략을 수정하며 투자 및 고용을 늘렸다. 한화그룹은 12일 ‘중장기 투자 및 고용 계획’을 통해 향후 5년간 22조 원의 신규 투자와 3만5000여 명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한화그룹은 중장기 전략을 통해 2018년 현재 70조 원 수준의 매출 규모를 2023년까지 100조 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올 초부터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관계 부처와 수백조 원을 쏟아 붓는다고 발표하고, 실제로 실천하고 있지만 6개월째 공회전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정책은 한계가 있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에 고용 창출 대책을 진행해도, 결국에는 이를 구현하는 곳은 민간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대기업에 손을 내미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전략의 일환으로 최근 정부는 경제·일자리수석을 중심으로 기업 현장 방문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문한 것으로 현장에서 경제 부진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실무 소통을 강화하고 나섰다. 기업의 규제와 애로사항을 구체적으로 듣고 정책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이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무언의 압박’에 재계가 ‘울며 겨자 먹기’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있다.

LG그룹 시작으로 최근 한화까지 가세

지난해 12월 LG그룹을 시작으로 1월 현대차, 3월 SK, 6월 신세계, 이달 8일 삼성, 12일 한화까지 기업별로 기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미 밝혀진 것만 투자금이 330조 원에 달한다. 2018년 한국 정부 예산이 447조원임을 고려하면, 기업의 투자금은 정부 한 해 예산의 74%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재계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 먼저”

하지만 재계의 이 같은 행보가 현장 의견의 정책 연계보다는 ‘정부 코드 맞추기’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자리 창출의 근원지인 재계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재계의 고용 창출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제하기보다 기업들의 자율 참여로 이뤄지는 것이 옳다는 것.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투자가 단순 정부 코드 맞추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와 이윤 확대, 고용 창출이라는 기업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한편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취업자 수는 2706만4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7만2000명 증가에 그쳤다. 이는 2010년 1월 1만 명이 줄어든 이후 8년 4개월 만에 가장 저조한 실적이다. 6월 취업자 증가 수 역시 10만6000명으로 평월 증가세인 20만 명, 문재인 정부의 목표치인 30만 명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이로 인해 올해 상반기 취업자 증가 수는 14만2000명으로 전년 동기(36만 명)의 40%에도 못 미쳤다. 아울러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는 상반기 14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만7000명이 급증했다. 이는 2000년 14만6000명 이후 최대로 한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고용 한파를 겪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재계의 이 같은 노력이 일자리 문제 해소의 마중물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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