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내치면 盧-文 근간 흔들린다? 읍참마속 결단 내리나…

<뉴시스>
[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또 이견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경제 투톱’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 얘기다. 현안마다 사사건건 부딪쳤던 이 둘이 이번 ‘고용 참사’ 사태를 두고도 극명한 시각 차를 보였다. 의견 대립의 핵심은 최저임금 등 소득주도성장이다. 김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을 고용 악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반면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을 확신한다. 다만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라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고용지표가 최악을 가리키고 있다. 이미 ‘경제 투톱’ 간 ‘갈등’이 상호 양보에 의한 ‘조정’이나 ‘절충 가능성’을 넘어섰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결단이 촉구되는 가운데 야권을 중심으로 ‘장하성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난 수준의 ‘고용 대참사’ 원인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문재인 정부 내의 의견 차이가 심각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견해 차이는 서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대립’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김 “수정 검토” vs 장 “개선 확신”
野 “장하성 사퇴” 십자 포화

 
지난 19일 역대 최악의 일자리 절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당·정·청 회의에서 김 부총리는 “그동안 추진한 경제정책도 효과를 되짚어 보고 필요한 경우엔 관계 부처 장과 협의해 개선·수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겠다”며 소득주도성장 중심의 일자리 정책의 선회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소득주도성장으로는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으니 자신이 주도하는 ‘규제개혁’을 통한 ‘혁신성장’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반면 장 실장은 ‘기조 유지’를 못 박았다. 그는 “우리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정책들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가 활력을 띠고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국민들도 성장의 성과를 체감하고 고용 상황도 개선될 것을 확신한다”고 맞받았다. 경제성장의 혜택이 서민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은 한국경제의 모순된 구조 때문일 뿐 시간이 지나면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이견 이전에 그 시작점부터 다른 측면이 있다. 김 부총리는 정통적인 관료 출신인 데 비해 학자인 장 실장은 참여연대에서 핵심 활동가로 일했다. 또 김 부총리는 경제부총리로 기용되기 전까지는 문재인 정부와 특별한 인연도 없었던 반면 ‘재벌 저격수’로 알려진 장 실장은 유명한 ‘소득주도성장론자’로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자연히 문 정부 초기에는 소득주도성장 기조에 따라 전반적인 경제정책 주도권을 장 실장이 쥐면서 대한민국 경제 컨트롤타워는 ‘장&김’으로 불렸다. 당시 관가에선 ‘김동연 패싱론’까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당연히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의 관계는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지난해 연말부터 관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결국 지난 5월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으로 두 사람의 불협화음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갈등이 그렇지 않아도 휘청거리고 있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더 키우고 있다는 데 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위기 극복책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서로 엇갈린 진단과 처방을 내놓으며 정책 혼선은 가중되고 시장의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부총리가 잇따른 정책 기조 변경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도 책임 회피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은 지난 20일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주도해 온 장하성 실장을 향해 십자 포화를 퍼부었다. 한국당은 ‘경제 파탄 워스트 5’에 대한 인사 조치를 촉구하면서 장 실장을 1순위로 꼽았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장 실장은 고용 참사를 불러온 가장 핵심 책임자”라며 “소득주도성장론의 총설계자이자 총체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으로 규정했다.
 
바른미래당도 “실패한 정책을 주도한 청와대 경제 참모진부터 전면 교체하라”(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 “정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해결될 문제라는 장하성 정책실장”(이지현 비대위원)이라는 등 장 실장을 공격했다. 이는 여권 내부의 분열상을 부각하고, 소득주도성장 등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 등 정책기조의 근간을 흔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文 “직을 걸라” 엄포 놨지만...
‘레드카드’ 가능성 ‘희박’

 
상황이 이쯤 되자 청와대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갈등설’을 빚어온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를 향해 “직을 건다는 결의”로 종합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 모두가 완벽한 팀워크로 어려운 고용 상황에 정부가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주고,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정책에서 무엇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난관보다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이 직접 ‘갈등설’의 주인공인 경제정책 ‘투톱’에게 공개적으로 경고를 날린 것이다.
 
이는 고용 악화에 따른 민심 이반을 경계하면서,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엔 경제정책 투톱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비친다.
 
다만 문 대통령이 ‘최후통첩’에 버금가는 발언을 했음에도 실제로 장하성·김동연 투톱 중 한 명에게 ‘레드카드’를 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최근 김 부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 대통령은 6월 말 경제·일자리수석을 교체하면서도 소득주도성장 책임자인 장 실장을 유임시킨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 실장을 교체할 경우 참여정부부터 시도해 온 경제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 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문 정부의 성역처럼 인식되고 있다. 즉 소득주도성장을 버리는 것은 문 정부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경제 투톱에게 강한 어조를 내비치면서도 최근의 고용 악화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 때문이라는 일각의 비판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고용 상황이 좋아지는 분야와 연령대가 있는가 하면 고용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분야와 연령대가 있다. 인구와 산업구조 조정, 자동화와 온라인 쇼핑과 같은 금방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도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장 실장에게 섣불리 ‘레드카드’를 꺼낼 수 없는 요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이는 지지층 내부 이탈 현상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는데 이 같은 지지층의 분열을 야기한 데는 문 대통령의 경제 정책 기조 변화가 컸다는 관측이다.
 
이미 문 대통령이 친기업 행보를 보이자 정부와 정책연대를 하고 있는 시민단체와 노동계까지 문 정부에 직접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진보 성향의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정부의 규제개혁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최근 추진된 ‘인터넷 은행 은산분리 완화’ 정책에 대해서 일부 진보 진영 시민단체는 “대선공약 파기”라고까지 주장할 정도다. 만약 이대로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우는 장 실장의 입지가 줄어들 경우 진보 진영은 더욱 강하게 문 대통령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 입장에선 김 부총리를 버리기도 쉽지 않다. 규제 개혁을 비롯한 혁신성장의 사령탑인 김 부총리를 경질했다간 성장 기조가 후퇴한다는 비판과 함께 청와대가 경제 실정 비판에 귀를 닫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장 실장에 대한 사퇴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이와 정반대로 김 부총리를 버린다면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에 씌웠던 ‘불통’ 프레임을 그대로 이어받는 꼴이 되고 만다. 아울러 최악의 경제위기에 숨통을 틔워줄 외자 유치를 위해서라도 외자 유치 적임자로 평가되는 김 부총리를 버리긴 쉽지 않다.
 
정부·여당 지지율 ‘동시 하락’...
경제정책 기조 변화 불가피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완벽한 팀워크’를 강조하면서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하라”고 주문한 것도 당분간은 두 사람 모두 유임이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20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갈등설) 그 문제를 언론에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이 어떻게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똑같을 수 있겠는가”라며 애써 두 사람의 의견 차이가 없음을 주장한 것 역시 둘 중 한쪽도 현재는 버릴 수 없는 절박한 심정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청와대의 ‘딜레마’를 잘 알고 있을 여권도 ‘갈등설’에 대해 “지나친 해석”이라고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최근 언론과 야당에서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 간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며 “심지어 지난 일요일 당정청 회의에서의 모두발언도 두 사람이 충돌하는 것처럼 해석하는데, 이건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청와대와 여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경제 위기로 인해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 분기점을 맞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20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13∼14일과 16∼17일 전국 성인남녀 2천7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2%포인트),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한 주 전보다 1.8%포인트(p) 내린 56.3%로 집계됐다.
 
이는 리얼미터 여론조사 기준으로 최저치였던 지난주 주간집계(58.1%)보다도 낮은 수치다. 특히 진보층(77.2%·4.3%p↓)에서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39.6%(1.0%p↓)로 3주 연속 하락했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일부 지지층을 잃지 않기 위해 이미 실패로 드러난 소득주도성장을 고수하며 장 실장을 끝까지 엄호하는 것은 한국당이 일부 보수층을 대변하며 TK 정당으로 전락한 것과 같은 양태”라며 “지금이라도 잘못된 경제정책을 인정하고 수정하여 경제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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