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좀 꺼주세요.” 한나라당 박순자 의원(47)의 소등 요구가 끝나자마자 산업자원위원회 국감장은 이내 어두워졌다. 곧바로 박 의원은 한전측이 단전가구에 비상용으로 대여하는 조명등을 켜보이며 “이런 조명등 놓고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까? 생색내기용 정책 아닙니까” 라며 한전측 관계자들을 추궁했다. 박순자 의원처럼 초선의원들은 국정감사 첫날부터 의욕적으로 감사에 나서 공기업 사장 및 임원들을 당황케 했다.국정감사 첫날인 지난 4일, 산업자원위원회는 한국전력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이 자리에선 한전의 방만한 경영과 잘못된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사 불균형 문제 등이 거론됐다.

그 중, 한나라당의 박순자 의원은 한전의 단전가구에 대한 대책을 지적하기 위해 몸소 시연을 보여 단연 주목을 끌었다. 박순자 의원은 우선 한전측의 비현실적인 전기료 체납가구 선정을 문제 삼았다. 최근 증가한 체납자들 중 대부분이 불황으로 인한 저소득층의 ‘생계형 체납자’ 이지만 한전측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채 무조건 체납자로 분류한다는 것.박 의원은 “단전만이 저소득층 체납자에 대한 유일한 대책인가” 라고 질문한 뒤 한전측이 단전대책으로 내놓은 비상용 조명등 대여정책에 관해 ‘생색내기용 정책’ 이라고 꼬집었다.

한전이 단전가구에 대해 한시적으로 비상용 조명등을 빌려주게 된 배경은 바로 지난 2월에 있었던 장애인 부부의 단전조치 후 촛불화재사망 사건. 이 사건 이후로 여론의 비난을 받은 한전측은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해 서비스를 시행했다. 한전이 비상조명등 1,286대를 구입하며 투입한 예산은 총 1671만 8,000원(개당 1만3,000원). 그러나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비상용 조명등을 이용한 단전 가구는 거의 없었다고 박의원은 지적했다. 지난 2개월동안 단전을 경험한 가구수는 10만 9,253가구인데 비해 조명등을 이용한 가구수는 불과 143가구에 불과했던 것.

실제로 전기납부요금 독촉장, 단전예정 및 단전 알림장 어디에도 조명등을 대여해준다는 문구는 찾을 수 없었다.조명등 대여제도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였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해 조명등 구입비와 홍보비를 낭비한 것이다. 또, 비상용 조명등의 성능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중국산 조명등을 사용해 “어려운 국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할 것” 이라는 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