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송하성 경기대 교수, “남성에 비해 빛 보지 못한 경우 많아”
“더 깊숙이 묻힌 역사” 무명 독립운동가 발자취 재조명해야

 
광복(光復) 73돌인 2018년, 한국인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초개(草芥)같이 목숨을 버린 독립운동가로 어떤 인물을 꼽을까. 우선 안중근·윤봉길·이봉창 의사(義士)처럼 국민의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광복 73주년을 맞아 이젠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에도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패한 의거의 주인공들, 또는 남성 일색의 ‘의혈투쟁’에 함께 나선 여성 열사들도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실패했지만 자랑스런 그들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 옆에는 후손이나 유족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무후선열제단이 있다. 1975년 8월 15일 광복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제단에는 유관순 열사(烈士)와 이준 열사 등 당대를 빛낸 애국 열사들의 위패 131위가 모셔져 있다. 이 가운데 30년째 다른 열사들의 위패와 함께 제단 한쪽을 지키고 있는 위패가 유상근(柳相根) 의사의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끈 한인애국단의 4대 의거 가운데 1932년 1월 이봉창 의사의 ‘도쿄(東京) 의거’, 같은해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上海) 의거’는 교과서에도 자세히 실려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 의사의 ‘다롄(大連) 의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32년 당시 중국 정부는 일제의 만주 침략에 항의하면서 일본을 국제 연맹에 제소했고 국제연맹은 만주에 조사단을 파견키로 했다. 백범은 그해 5월 26일 오후 7시 40분 리튼 단장이 이끄는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조사단이 다롄역에 도착할 때 이를 영접할 혼조 시게루(本庄繁) 관동군 사령관 등에게 폭탄을 던질 계획을 세우고 유 의사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의거를 며칠 앞두고 다롄 우체국에서 보낸 비밀 전문이 일본군 정보망에 걸려 유 의사와 정보수집 역할을 맡은 최흥식 의사, 폭탄 운반책인 이성원·이성발 등이 모두 체포됐다.
 
이후 유 의사는 관동청關東廳) 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차대전 발발 직후 뤼순(旅順) 감옥으로 이감됐고 안타깝게도 1945년 8월 14일 광복을 하루 앞두고 순국했다. 정부는 유 의사에게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인애국단의 4대 의거로 뽑히는 다른 하나는 이덕주(李德柱)·유진만(兪鎭萬)의 조선총독 폭살 계획이다.
 
황해도 신천 출신의 이덕주는 1923년 초 백범의 지시로 유진만과 함께 조선총독을 살해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했지만 그 해 4월 19일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1935년 12월 순국했다.
 
여성 의혈투쟁가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가 차지하는 위치가 워낙 독보적이지만 유 열사 외에도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한 여성 운동가도 적지 않다. 송하성 경기대 교수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은 남성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영양 출신의 남자현(南慈賢·1872∼1933) 지사는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대한통의부 등 항일단체에 가담했다. 북만주 일대에서 예수교회와 여성교육기관을 만들어 여성계몽운동을 벌이고 1920년 청산리대첩에서 부상한 독립군 치료에 힘을 쏟아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다.
 
1932년에는 왼손 무명지를 잘라 흰 수건에 쓴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란 혈서와 손가락을 국제연맹조사단에 보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다. 1933년에는 일본 고위관리를 암살하기 위해 무기를 운반하다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6개월 간 옥고를 치른 남 지사는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남기고 61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일제의 심장에 폭탄을 던진 것은 비단 남성 운동가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평안남도 대동 출신의 안경신(安敬信·1887∼?)은 1919년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상하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댔다. 1920년 8월에는 광복군 총영 출신의 장덕진·박태열 등과 함께 평양에 들어와 평남 경찰국 청사에 폭탄을 던져 일본 경찰 2명을 사살했고 평양시청과 평양경찰서에도 폭탄을 던졌으나 도화선이 비에 젖어 아쉽게 불발로 그쳤다.
 
이 밖에 한성 임시정부 수립에 공헌한 이애라(李愛羅·1894∼1922) 선생,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사건을 벌인 김상옥 열사를 숨겨준 이혜수(李惠受·1891~1961) 선생, 평양 진명여학교 설립자이자 대한독립청년단 결성의 주역인 조신성(趙信聖·1873~1953) 선생 등도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꼽힌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여성 독립운동의 역사를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여성의 독립운동은 더 깊숙이 묻혀왔다”며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반대해 싸웠던 평양 평원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과 제주 해녀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20여 분간의 경축사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는 총 7차례 등장했다. 이는 최근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운동, 혜화역 시위 등 여성 인권과 관련한 사회적 움직임도 감안한 것으로 보였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성평등한 민주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민의 기본적인 요구에 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지난 광복절 이후 1년간 여성 독립운동가 202분을 찾아 광복의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며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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