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사회적 합의 없이는 철회 않겠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정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인공임신중절(이하 낙태) 수술을 포함하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의 반발에 복지부는 낙태 수술을 한 의사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처분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보류하기로 했지만 의사들은 낙태 수술 전면 거부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처벌 유보하겠다’는 방침이지만···의사회 “한시적 유예는 해결책 아냐”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지난 17일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과 처분 기준을 세분화한 ‘의료관계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그간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이 구체적이지 않고 위반 시 행정처분 수위도 자격정지 1개월에 불과했던 것을 유형 세분화와 함께 경중에 따라 1~12개월로 나눴다.

유권 해석 형태로 면허정지 1개월 처분을 내려오던 낙태죄와 관련해 개정안은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로 명시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금도 법원에서 형법 제270조 위반 여부를 판단하면 이를 근거로 해당 의료인에게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의사는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27명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복지부가 이러한 개정안을 시행한 데 반발한 것. 여기에 헌재가 지난해 2월부터 형법 제270조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지난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불법 인공임신중절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여성과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 “오히려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음성화를 조장해 더 큰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관련 모자보건법은 현재 헌재에서 낙태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절차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당장의 입법 미비 해결에 노력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부인과병의원의 폐원이 개원보다 많은 저출산의 가혹한 현실을 마다하지 않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며 밤을 새우는 산부인과의사가 비도덕적인 의사로 지탄을 받을 이유는 없다”면서 “입법 미비 법안을 앞세워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으로 규정해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고집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부도덕한 의사로 낙인찍혀 가면서 1개월 자격정지의 가혹한 처벌을 당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의사회는 “대한민국의 산부인과의사는 정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전면 거부를 선언한다”면서 “이에 대한 모든 혼란과 책임은 복지부에 있음을 명확히 밝힌다”고 했다.
 
“불명예 낙인 용납 X”
 
결국 정부는 이들의 입장을 고려해 낙태 수술을 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처분을 헌재가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30일 “형법을 위반한 의료인에게 행정처분을 할지 말지에 대한 권한은 없으나 처분 시점에 대한 재량권은 가지고 있다”며 “헌재 결정 때까지 처분을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복지부의 낙태 수술 처벌 유보 결정에도 수술 거부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 30일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복지부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관련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낙태 수술을 계속해서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포함한 것이 문제로 처벌 유예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의사회는 성명을 내고 “한시적인 유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부가 여성과 의사에게 비도덕적이라고 불명예를 낙인찍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법 개정과 사회적 합의를 수술 거부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생존이 불가능한 무뇌아조차 수술할 수 없도록 만든 45년 전 모자보건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이를 위해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복지부가 사회적 합의 전까지 낙태 수술을 원하는 환자가 병원에 방문했을 때 의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외는 어떨까?
 
낙태 논란을 둘러싸고 해외에서도 양립하기 어려운 2가지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뚜렷하다. 바로 ‘여성 자기결정권’ vs ‘태아의 생명권’이다.

독일은 낙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이 산모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것. 또 카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는 아일랜드 등 유럽과 칠레 같은 남미 등에서도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독일은 낙태의 불법성은 인정하면서도 의사에게 시술되는 12주 이내의 낙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대신 이에 대해서도 의학적‧사회적 적응사유나 범죄학적 적응사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아일랜드, 칠레 등 태아의 생명권 존중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불법 낙태수술이 사회적인 문제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는 그나마 불법 수술을 통해 건강 및 신체의 위해 가능성을 본인이 떠안기보다는, 낙태가 합법인 이웃 국가로 수술을 받으러 갈 수 있는 우회로가 있다.

반면 낙태의 인정 범위를 점차 넓히는 국가도 있다. 미국의 경우 1973년 한 임산부가 주마다 다른 법 때문에 ‘원정 낙태’를 떠나는 비용을 주정부법무장관에게 청구한 ‘로(Roe v. Wade) 사건’ 이후 낙태가 자유화됐다. 헌법상 기본권인 프라이버시권(Right of privacy) 속에는 여성의 낙태권도 포함돼 있고 태아의 생명권도 보호해야 하므로 임신 기간에 따라 낙태권을 달리 해석하고 있다.

임신 첫 3개월간은 태아의 독자적 생존가능성이 적어 여성의 낙태권을 우선하고, 이후 3개월(4~6개월)은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을 해치는 경우 등 일정한 경우에 허용한다. 마지막 3개월(7~9개월)은 태아의 독자생존 가능성이 커지므로 여성의 낙태권보다는 태아보호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불법 낙태 시술소 난립이나 낙태 수술이 음성화돼 여성들의 건강과 생명을 잃을 위험성도 제기된다. 또 안전성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불법 낙태약이 성행하거나 해외 낙태 수술을 알선하는 브로커 등도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복지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여성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지난 2010년 이후 8년 만에 진행해 분석 결과를 10월에 공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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