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준 사장 프로필◆
생년월일 1951년 1월 17일
학력 영남대 응용화학과 졸
경력 1978년 삼성전자 홍콩지사장
1999년 삼성전자 이사
1999년 (주)레인콤 사장

◆최지성 사장 프로필◆
생년월일 1951년 2월 2일
학력 서울대 무역학과 졸
경력 1981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기획팀
2000년 삼성전자 부사장
2003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1

0~20대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차세대 휴대형 기기 ‘MP3플레이어’ 시장을 두고 골리앗과 다윗의 전쟁이 불을 뿜고 있다. ‘골리앗’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고, ‘다윗’은 중소기업인 레인콤이다. 삼성전자는 ‘옙(YEPP)’, 레인콤은 ’아이리버(IRIVER)’라는 MP3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회사 전체 매출 규모에 있어서는 두 회사가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MP3플레이어 시장에서는 중소기업인 레인콤이 대기업 삼성전자보다 장사를 잘 해왔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가 ‘1위 도약’을 선언하고 나서 올해 MP3시장을 두고 회오리 바람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선전포고는 지난 13일 시작됐다. 이 날 삼성전자는 MP3기계의 외장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초호화, 초고가’ MP3기기를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 기기는 기존의 MP3기기에 비해 최고 8배나 비싼 가격이지만, 출시한 지 이틀 만에 전량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이렇게 되자 바짝 긴장하고 나선 곳은 업계 1위인 레인콤.특히 레인콤은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중소기업의 신화’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 이 시장의 최고 강자는 누가 될까.

이번 ‘골리앗과 다윗’의 전쟁의 중점에는 삼성전자 최지성 사장과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이 있다. 우선 두 사람은 동갑내기다. 1951년도에 출생한 두 사람은 올해 한국나이로 쉰 다섯이 됐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이외에도 한 때 한솥밥을 먹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최지성 사장과 양덕준 사장은 지난 80년대 삼성전자에 함께 몸담고 있었다. ‘한솥밥 먹던 사이’에서 ‘최대의 적수’로 만난 두 사람의 전력은 어떨까.최지성 사장은 삼성그룹의 ‘저격수’다. 삼성그룹이 신규사업 진출을 시도하는 곳 어디에서나 그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서울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최 사장은 19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그의 직장 첫 근무부서는 ‘잡화과’로 신발, 문구용품 등을 판매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삼성그룹의 심장부인 그룹 회장비서실 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삼성그룹이 반도체 왕국을 꿈꾸던 1985년, 그는 당시 삼성반도체통신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당시 삼성그룹은 차세대 신수종 사업을 ‘반도체’로 정하고, 그룹 및 계열사의 핵심 인력들을 모두 이 사업부에 모으던 와중이었다.

최 사장은 ‘신수종 사업’의 핵심 멤버로 발탁됐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됐다. 삼성전자 독일 사무소장을 맡으라는 지시를 받고서다. 이후 그는 삼성전자의 영업, 기획, 해외업무 등을 익히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의 존재가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부터. 당시 삼성전자는 반도체, 정보통신, 가전, LCD 등으로 부문을 나눠 소그룹 체제를 가동하고 있었고, 최 사장은 삼성전자 정보가전총괄 디스플레이사업 부사장 직함을 갖게 됐다. 현재 그는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이다.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 그는 ‘두려움이 없는 사나이’로 통한다. 새로운 일에 대해 무식하리만큼 저돌적인 추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MP3’라는 시장에 정식 도전장을 내밀었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삼성전자의 자존심을 회복해보겠다는 야심에서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양덕준 레인콤 사장의 전력도 막강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영남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이후 1978년부터 1998년까지 삼성전자에서 근무했다. 그의 업무는 반도체 부문이었고, 한 때 홍콩지사장을 역임하는 등 글로벌 감각을 일찌감치 익혀온 인물. 삼성에서 그의 마지막 직함은 삼성전자 반도체 비메모리부문 마케팅 수출담당이사였다. 소위 ‘잘 나가던 대기업 임원’이었던 양 사장은 지난 98년 과감히 옷을 벗었다. 그때 창업한 것이 바로 레인콤이었다. 그의 나이 마흔 아홉. 당시 레인콤은 반도체 칩 생산 기술을 전수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기술 전수만으로는 회사를 꾸려나가기 힘들다고 판단한 양 사장은 다양한 해외 업무 경험을 살려 차세대 사업으로 MP3 플레이어를 생각해냈다. 당시 세계적으로 MP3시장은 태동단계에 있었다. 국내에는 삼성전자가 이 시장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사실상 시장이 형성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소니 등 해외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지난 2001년 자사의 마크를 단 ‘아이리버’가 탄생했다. 그가 ‘아이리버’라는 제품을 출시한 이후, 10대의 젊은 층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존의 CD플레이어에 비해 제품 사이즈가 작아 휴대가 편리하고, 다양한 음악을 다운받아 들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지난 2001년 전체 시장 규모가 4천억원대에 불과했던 이 시장은 불과 2년만인 지난 2003년 2조1천억원대의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레인콤의 매출도 덩달아 늘었고, 어느새 양 사장은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불도저식’경영 마인드를 가진 두 사람이 올해 어떤 승부를 벌일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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