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과 이마트의 시작

길을 걷다가도 아버지가 즐겨 맸을 법한 화려한 넥타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멈춰서서 옛 생각에 잠기곤 한다. 살아계시는 동안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와 매일 통화했고, 거의 매일 어디든 동행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의 이치를 알고자 했으며 언제,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항상 아버지와 함께 하고자 했었다.돌아가신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에도 아버지를 내 마음속에 품고 산다.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를 어렵게 대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더욱 그립고 애틋한 부녀지간의 정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태산이 무너진 듯 슬픔을 견딜 수가 없어 한때 방황하기도 했다. 이때의 미국여행이 오히려 지금의 이마트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환경의 변화가 필요해 찾은 곳에서 나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사실 삼성에서 분리된 이후 신세계는 조선호텔과 백화점만 운영하는 중소기업 규모에 불과했다. 신규 사업을 하기에는 자금과 능력이 부족한 시기였다. 나는 미국에 체재하면서 미국의 프라이스 클럽과 월마트 등 창고형 점포를 보았고, 적은 투자로 가능한 신규 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것을 회사에 제안하였고 1993년 창동에 최초로 테스트 점포를 연 것이 오늘날 이마트의 시작이다.신세계는 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후 프라이스 클럽과 제휴하여 노하우를 습득했고, 백화점 경영을 통해 얻은 한국 유통 트렌드를 분석해 한국에 맞는 새로운 할인점 업태를 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IMF시기에는 프라이스 클럽과 카드 부분을 매각해 이를 이마트에 집중 투자하기로 한 결정이 현재의 신세계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사회봉사와 스타벅스 사업

내가 스타벅스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은 수익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커피를 즐겨 마시기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를 잘 알고 있었던 요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스타벅스의 사회봉사와 공헌에 대한 정신, 그리고 기업문화에 대해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임직원들 모두 서로간에 ‘파트너’라 부른다. 종업원을 ‘파트너’라 부르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수평적인 관계를 규정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호칭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 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호칭은 상대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규정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종업원을 파트너로 부르는 스타벅스의 기업문화는 조직 내 임직원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로 만들고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사회봉사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우리의 계약당시는 IMF의 어려운 시기였다. 따라서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자리잡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회사의 기업문화만 신세계가 습득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기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기업은 사회와 함께 어우러져 돌아가는 것이다. 드러나는 사회적 지원보다는 생활속에서 주위를 생각하고 우호적인 문화를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바탕 위에 고객과 종업원 주주들이 함께 신뢰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신세계의 경영스타일

최근 이마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세계 경영자들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게 배운 경영방침으로 회사경영자를 선택했으며 그 사람들에게 모든 권한을 주었다. 회사를 경영한 것은 내가 아니고 전문 경영인이다. 전문 경영인을 중용하고 그 사람들에게 전권을 맡기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경영방식은 아버지께 배운 것이다.신세계는 현자형 오너와 성취형 전문 경영인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신세계는 내가 사업의 큰 틀을 잡으면 구학서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방침을 제시하고 전문 경영진들이 각 회사별로 전략을 수행하는 경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세부 경영은 이마트 이경상 대표, 백화점 서강대표 등 각 회사, 부문별 대표가 챙긴다. 그들은 나에게 정례보고도 하지 않는다. 신세계의 경영 판단은 거의 전적으로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겨져 있다.

예를 들어, 백화점 사업의 경쟁력이 약해졌을 때 성장 산업인 할인점 시장을 선점해 이를 진두지휘하면서 카드와 프라이스클럽을 팔아 자금과 부지를 확보했던 일도 나의 경영 방침인 선택과 집중원칙에 따라 전문경영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추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신세계는 아버지가 다 만들어주신 셈이다. 인재를 중요시한 아버지가 우수 전문 경영진을 육성해놓았고, 나는 그 육성된 인재를 선임한 것 외에는 별로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신세계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신세계에 근무하고 있는 모든 임직원들이 노력했기 때문이며 이 점에 대해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신세계는 오는 2012년까지 국내에는 백화점 9개, 이마트 130개, 그리고 중국에도 25개 이상의 이마트를 출점하게 되며 2012년에는 매출 33조로 세계 10대 종합 유통 소매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사업 영역도 현재의 백화점과 할인점 사업뿐만 아니라 쇼핑센터, 인터넷 쇼핑, 아울렛 사업 등에도 진출하게 된다.

# 전문 경영인 구학서 사장, “이병철 회장도 인정한 경영인”

성취형 전문 경영인인 구학서 사장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배운 인재다. 구학서 사장은 삼성 비서실에서 아버지를 모시면서 투자, 자금운용 등을 배웠다. 구 사장은 모든 것을 지극히 신중하게 결정하고 일단 결정한 것은 추진력 있게 끌고 나가는 경영자다. 표현도 절제되어 있는 사람이다. 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행동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그러나 그는 유머 감각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모처럼 통화를 하면 요즘 백화점의 매출은 몇 퍼센트 올라갔고 이마트의 이익률은 몇 퍼센트라는 식의 지극히 업무적인 보고만 한다. 내가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 모처럼 전화했으면 요즘 건강은 어떤지, 날씨는 괜찮은지 그 정도는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제가 원래 그런 것 잘 못합니다” 하고는 또 회사 동향만 이야기했다. 재미도 없고 아부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구 사장은 농담도 잘 안하고, 불필요한 언행도 하지 않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있고 겸손하다. 그는 모르는 것을 배우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구 사장은 우수한 전문 경영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며 특히 경영과 재무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세계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 "정상에 올랐을 때 겸손하라"

요즘 같은 때 신세계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아버지 말씀은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하고, 정상에 올랐을 때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라는 메시지다. 인간이나 기업 모두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겸허해져야 한다. 주변에서 인정받을수록 스스로를 더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최근 신세계 사원모집에 우수한 지원자가 많이 몰리고 있다. 좋은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유통은 우수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신세계에 국내 최초로 사내 유통대학과 유통 MBA과정을 비롯해 국내 다른 유통기업이 갖추지 못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여긴다. 나는 신세계가 유통사관학교라고 불리는 것에 만족한다. 신세계 출신이 다른 유통회사에서 일을 잘 하고 한국유통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변화와 혁신, 그리고 장보고에 대한 과제

소매업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뉴욕과 유럽은 참고할만한 곳이다. 조용한 가운데서도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 그리고 의식주의 패션이 빠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쫓긴다. 그리고 “우리도 발전해야겠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돌아가서 뭔가를 해야한다” 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글로벌 경쟁시대에 우리는 시야를 세계로 돌려 안목을 넓혀야만 한다.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또 세계 속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객관적으로 가늠하고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동기와 의욕이 생길 것이다.국내에서의 경영만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영원히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변화와 혁신은 우리가 앞으로 가장 먼저 풀어나가야 할 지상 명제인 것이다. 신라시대의 해상왕 장보고는 세계와의 교역이 미미했던 시대에도 세계를 품에 안고자 바다를 정복한 사나이였다. 창업의 거장이란 뜻에서, 또 뜻을 세계 제일에 두었다는 점에서 아버지는 장보고의 이상과 야망을 닮았다.아버지는 우리나라에 왜 장보고의 동상이 없는지 늘 궁금해하셨다. 나는 이런 주제를 우리회사, 우리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던져주고 고민하게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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