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사를 보면 흥한 재벌도 많지만 몰락한 재벌도 많다. 기업이라는 것이 항상 변화하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임을 전제로 한다면 재벌의 흥망성쇄도 모두 숙명적인 것이리라. 기자는 20년 가까이 재벌을 취재하면서 숱한 재벌과 재벌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오래전 그저 별 볼일 없는 중소기업에 불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몸집이 커져 재벌가의 반열에 오른 주인공도 있었고, 한창 잘 나가다 갑자기 몰락한 재벌도 많았다. 그렇게 흥망성쇄를 겪은 기업주들은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다. 그러나 공통점은 대부분 비자발적이든, 자발적이든 사회적인 변화와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호부터는 기자가 경제부 기자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재벌가의 사람들이나 그들의 성공과 좌절을 기록해본다.

성공과 좌절을 겪은 기업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오늘에 살고 있는 신흥기업인들이 경영행보에 참고했으면 싶다.1989년쯤의 일이다. 당시 기자는 신생지인 한 주간신문사에서 막 기자생활 초보로 일하고 있었다. 이 신문은 창간 직후부터 꽤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며 신문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탄생한지 1년여만에 웬만한 일간신문을 제치고 많은 독자들을 확보했다.그즈음 기자는 이 신문사의 경제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편집국으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낯선 중년의 목소리였다. 그는 기자에게 어디어디로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중요한 사실을 알려줄테니 취재거리가 될 것이라는 솔깃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기자가 찾은 곳은 현재의 한남동 고갯길 인근에 위차한 C아파트 단지내였다. 그곳에는 대부분 단독주택이 있었는데, 기자는 인근 부동산에 물어물어 제보자가 말해준 집을 찾을 수 있었다. 2층의 단독주택인 집은 매우 넓었다. 밖에서 보아도 집 크기는 300평쯤 되어 보였고, 대문 옆에는 ‘포르투갈 명예대사관’이라는 문패가 제법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기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현관문 앞에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키 큰 중년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기자를 보자 환한 웃음을 보였다. 넓은 이마는 올백으로 빗어넘긴 머리카락 때문에 더욱 도드라졌다. 가는 눈매는 얼핏 보아도 그가 꽤 유명세를 누린 인물임을 느끼게 했다.그는 기자를 보자 마당 한가운데까지 달려나오며 두손을 잡았다.“윤석민이 올시다.”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약간은 어색함이 배어났다.기자는 그가 안내하는 내실로 들어갔다. 내실은 단독주택을 개조해 사무실로 만든 맨 뒤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보 내용을 잘 모르고 있던 기자는 그저 그가 안내하는 대로 내실로 들어가 멀거니 한동안 앉아 있었다. 약 5분쯤 지난 뒤 윤씨는 두 사람의 또다른 중년신사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건네준 명함에는 ‘도투락 서주산업’이라는 상호가 적혀 있었다.기자를 처음 현관에서 맞이해준 남자는 한 때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선박건조회사의 하나였던 대한선주의 전 회장 윤석민씨였고, 내실로 찾아온 두 남자는 대한선주가 몰락한 뒤 윤씨가 오너로 있던 도투락 서주산업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근무하는 경영인들이었다. 기자는 세 사람과 어색한 첫 만남을 가진 뒤 습관처럼 수첩을 꺼내들고 ‘얘기를 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순간 윤씨는 옆자리에 배석하고 있던 두 사람을 눈짓으로 잠깐 밖에 나가 있으라고 제스처를 했다. 두 사람이 나간 뒤 윤씨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기자가 앉아있던 소파 앞에 털썩 무릎 꿇고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젖이 보일 정도로 서럽게 엉엉 울어 기자는 너무나 황당했다. “왜 이러십니까?” 기자의 만류에도 윤씨는 막무가내로 서럽게 펑펑 울었다.

기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머뭇거리자 윤씨는 ‘죄송하다’며 멋쩍은듯 자세를 가다듬었다.그리곤 그가 왜 기자 앞에서 우는지를 찬찬히 설명했다. 그가 기자를 불러 창피스럽게 울음까지 보이면서 전해준 얘기내용의 골자는 세칭 ‘대한선주 강제인수에 얽힌 사연’이었다. 대한선주는 기자가 윤씨를 만나기 2년여전이던 5공 말기에 윤씨로부터 한진그룹에 경영권이 넘어간 기업으로, 5공이 막을 내린 직후 이 회사의 몰락에 대해 특혜의혹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던 터였다.이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독자들이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윤석민이라는 인물에 대한 부분이다.지금이야 거의 20여년 전의 일이니 대한선주라는 회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80년대 당시만해도 대한선주는 정말 대단한 회사였다.

원래 이 회사는 대한해운공사라는 정부 산하 공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박정희 대통령 말기이던 1978년 민영화되어 대한선주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인수자는 윤석민씨였다. 대한선주는 지금의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진해운의 전신이었다.윤씨는 1938년 충북 청원생으로 청주상고를 나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서원농산, 서보산업 등 여러개의 회사를 운영하던 기업인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정치에 입문해 국민당 부총재를 지냈고, 청주 청원지역 국민당 국회의원(11대)까지 역임했다. 그는 60이 훨씬 넘은 나이인 1996년에는 신한국당 청흥흥덕지구당 원외 위원장을 지낼 만큼 노년에도 정치적 야심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대한선주(대한해운공사)를 인수한 것은 1978년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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