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석이다. 추석 연휴면 정치인들은 서울역으로 향한다. 당의 지도부라는 정치인들이 활짝 웃으며 귀향 인사를 하는 풍경은 매번 명절마다 연출된다. 갈 길 바쁜 귀향객들은 무덤덤한 얼굴로 지나치지만, 추석 밥상머리에 얹힐 정치 이야기를 한 짐씩 얹어 가게 된다.
 
정치인들의 이런 평소에 하지 않던 이벤트는 주점 호객꾼의 호객 행위처럼 값 싸고 낡은 느낌이 든다. 차례를 지낸 밥상머리에서 서울역에서 본 정치인 얘기도 나올 것이고, 정치 소재 대화가 으레 그렇듯 욕설로 마무리 될 테지만 전형적인 정치 쇼로 비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달 간의 옥탑방 체험을 마치고 이번에는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의 이동 체험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박 시장이 옥탑방 한 달살이를 시작했을 때 ‘보여주기 쇼’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호의적인 눈으로 봐도 한 여름에 천만 서울시의 시장이 할 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비판에도 박 시장은 꿋꿋하게 한 달을 버텼고 체험을 마치며 ‘옥탑방 구상’을 내놓았다. 이렇듯 체험을 정책으로 연결시키려는 박 시장의 ‘눈에 보이는’ 체험 행보는 임기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는 무소속으로 있는 이용호 의원이 반성문을 내놓았다. 지난해에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으로 아동수당 예산협의 과정에서 상위 10% 배제를 관철시킨 것을 반성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정부예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선별복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위 10% 배제를 관철시켜 막대한 행정 비용이 들게 된 사실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이 의원이 배보다 배꼽이 큰 행정 비용에 놀라 뒤늦은 반성을 했는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건 무소속으로 잠수 중이던 이 의원은 반성문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는 효과를 보았다.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 산책을 하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다리 위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벤치에 앉아 한참을 밀담을 나누는 풍경은 울림이 컸다.
 
중계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중계된 이 장면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남과 북의 의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고요한 가운데 낮게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이 지나는 그림자만 비추던 풍경은 쇼라고 비판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장면이었다.
 
정치인들의 쇼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정치인들은 태생적으로 쇼를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정치인은 ‘할 일’을 말하는 때가 있고 ‘한 일’을 말하는 때가 있다. 물론 선거 무렵에는 ‘한 일 + 할 일’을 뒤섞어 의정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유권자에게 보낸다.
 
종이 홍보물이건 SNS 게시물이건 전통적인 홍보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뉴스를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세상이 도래했는데 남의 자랑을 순순히 들어줄 사람이 흔치 않다. 유권자와의 소통, 유권자의 지지가 필요한 정치인들에게는 쇼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정치인들의 발버둥이 쇼로 보이는 것은 방법이 시대에 뒤떨어진 점이 큰 몫을 차지한다. 선거운동 기간만 되면 시장에 나타나 호호 불며 어묵을 사 먹는 정치인을 보면 당연히 염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스마트시대를 사느라 똑똑해진 유권자들에게 먹히는 방법이 아니다. 하지만, 시장을 찾아 어묵쇼를 하는 정치인에게 욕을 하더라도 시장에 오지 말라고는 말아야 한다. 유권자를 찾는 정치인을 욕하게 되면 결국 정치인과 유권자의 거리만 멀어질 뿐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것저것 체험도 해보고 정책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칭찬하면서 방법도 세련되길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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