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탓에 신규 공사·자재 발주 최소화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 연료비 상승 등으로 인해 극심한 경영 적자를 겪고 있고, 이 여파로 협력사들까지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한전이 신규 공사와 자재 발주를 최소화하면서 협력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국민 청원도 등장했다. ‘한전 하도급사 직원’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청원을 통해 “한전에서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조금씩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다가 올해 들어서는 공사대금을 전혀 받지 못해 직원 급여와 장비기사 등 외주 인건비를 못줘 매일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요서울이 한전과 협력사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협력사 “공사대금 못 받아…매일 독촉 시달려”
한전 “협력사 요청 시 주기적으로 예산 내려”


한전과 배전공사 단가계약을 체결한 전기관련 업체들이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전이 적자를 이유로 신규 공사와 자재 발주를 크게 줄인 게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다 공사대금마저 제때 지급하지 않아 연관 기업들이 임금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해당 논란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 연료비 상승으로 인한 한전의 경영 적자로 인해 촉발됐다.

한전이 지난달 13일 발표한 올해 상반기 잠정공시에 따르면 한전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꼽힌다. 한전은 지난해 3·4분기 2조7729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 이후 4·4분기 들어 적자로 돌아섰고 올 2·4분기에는 적자 폭이 700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커졌다. 당기순손실도 1조169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한전은 1조259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었다.

연료비 상승도 한전의 경영 적자를 키운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제재 등의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두바이유 가격은 1배럴당 68달러로 지난 2017년 상반기(51달러) 대비 33% 상승했다. 유연탄도 1톤당 104달러로 전년 동기의 81달러 대비 28%, 액화천연가스(LNG)는 1기가줄(GJ)당 12만4000원에서 13만5000원으로 각각 가격이 올랐다. 이에 따라 늘어난 발전 자회사의 영업비용은 2조 원에 달했다.

한전 협력사 청와대 국민청원 이어져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전 협력회사들 다 망하고 있습니다’라는 글에는 일주일이 지난 5일 19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한전의 신속한 조치를 요구했다. 게시글에 따르면 한전이 적자를 이유로 신규 공사와 자재 발주를 최소화하면서 협력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작성자는 “한전은 약 180개의 지사로 이뤄져 있고, 지사마다 많게는 7개, 적게는 3개 정도의 협력회사가 있다”며 “업체당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직원이 최소 8명, 많게는 10명이다. 최소한 전국에 7000~8000여 명의 근로자가 한전의 하도급사(배전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전 협력회사 중 공사비 지급에 대해 한전 직원들에게 강력한 항의를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에 저를 포함한 많은 업체들은 공사비가 입금되기를 조용히 기다릴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일을 하고도 공사비를 못 받다 보니 갖고 있던 자금마저 바닥이 나서 급여를 못 주거나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으며, 거래처 결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작성자는 “공기업인 한전에서는 예산이 있는 만큼 발주와 시공을 재개하고, 공사가 끝난 건에 대해서는 대금을 바로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청원했다.

또한 한 청원 참여자는 “올여름 역대급 폭염 속에서 일했던 기술자들은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미처 회복을 못한 상태에서 다시 작업을 했다. 돈이 없다는 핑계로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금을 못 준다니 한전이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전 “하반기 실적 개선될 것”

한전 관계자는 올 상반기 악화된 경영 실적에 대해 “올해 상반기에는 유가 상승의 영향 및 원전 가동률이 낮아져 적자 범위가 커졌다”며 계절별 손익 구조상 2분기 수익이 가장 낮고 3분기 수익이 높은 점 등을 감안해 하반기 실적은 상반기보다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하반기 실적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대외 환경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신임 사장 취임 이후 이미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고강도 경영 효율화, 신규 해외사업의 성공적 추진 등을 통해 하반기에는 연간 영업이익 기준으로 흑자 전환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협력회사 공사비 체불과 관련해서는 “지난 8월 말에 협력사들에게 예산을 추가적으로 내렸다. 해당 사업소에서 예산을 요청하면 주기적으로 파악해서 예산을 내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업체에서 체불이 발생한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한전은 발전자회사 경비절감 등 고강도 자구 노력을 시행하고, 지능형 디지털발전소 표준 플랫폼 공동 개발·구축 등 중복 투자 억제, 발전자회사간 연료 공동 구매 확대 등 전력그룹 전체의 효율성과 수익성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전은 UAE원전사업의 성공적 이행과 사우디 원전사업 수주 노력 등 적극적인 해외사업 추진을 통해 수익원 다변화를 계획하고 있다. 한전이 실적 개선에 성공하며 협력사들과의 상생을 도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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