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서 세인들의 관심은 박용오-용성 형제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들의 뒤편에 맏형인 용곤, 막내인 용만씨 등이 있지만 이들은 일단 경영권의 최정상에 있지 않았거나 책임을 질 수 있는 가족의 대표자가 아니어서인지 용오-용성 두 형제가 맞붙은 양상이다.양진영의 폭로전 양상이 시간이 갈수록 도를 넘어서면서 세인들의 관심은 양측을 대표해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박용성 회장 진영의 두산그룹 김진 사장과 박용오 회장 진영의 손 병천 전 춘천CC 상무에 쏠리고 있다. 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검찰에 고발해 박용성 회장측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손 상무는 지난 7월 말경 내부독직혐의로 회사에서 해고됐었다. 사실 김진 사장이 홍보실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손 상무를 통해 외부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수없이 그룹계열 골프장인 춘천CC를 이용했다.

그때마다 손 상무는 김 사장의 부탁(?)을 회사경영 차원에서 지원해주었음은 물론이다.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지금 서로 다른 편이 되어 상대방을 공격해야 하는 슬픈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박용오 회장측은 손 전 상무와 함께 최근 큰아들인 박경원 전신전자 대표의 오랜 친구인 A씨를 언론담당관으로 내세워 언론과의 직접 접촉에 나서고 있다. 이는 박용호 회장측이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의 비자금 의혹을 처음 제기한 뒤 한 때 언론을 기피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다. 박용오 회장측은 여기에 법무법인 로고스 소속의 변호사도 합류시켜 안기부 출신의 송재혁 KBO 총재 특보와 함께 ‘공격진용’을 전면 보강했다. 두산 오너일가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한 두산산업개발의 이자 대납 건도 이들의 합작품으로 알려졌다. 박전회장측은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는 한편 추가폭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시기를 조율 중이라는 전언이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며 검찰에 진정한 손병천 전 춘천CC 상무는 “형제간의 감정싸움이 계속된다면 두산그룹은 속속 드러나는 비리로 자멸하고 말 것”이라며 “두 형제(용성·용만)의 비리를 박용오 전 회장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를 계속 부인하고 감정으로 대립해 형제들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는 두산그룹측은 지난 9일 그룹 홍보실 김진 부사장을 프로야구 구단인 두산베어스 사장으로 승진(그룹홍보실 사장 겸임) 발령하는 등 진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김 사장의 발탁은 박용오 전 회장측에 대한 공세에 적극 나서기 위한 방안의 일환일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두산 베어스 구단주 박용성 회장, 김진 사장’의 체제가 한국야 구위원회(KBO) 총재직을 맡고 있는 박용오 전 회장을 상당히 불편하게 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이와 함께 두산그룹은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의 인맥으로 분류돼온 경창호 두산베어스 사장겸 두산산업개발 레저부문 사장을 퇴진시켰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중순경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의 영전으로 공석이 된 (주)두산 상사BG 사장 후임으로 김철중 두산부사장을 사장으로 올렸다. 특히 이번 ‘형제의 난’의 도화선격인 박정원 부회장의 두산산업개발로의 영전과 이번 인사에서 난의 근원지인 두산산업개발 주요 요직에 김준덕 (주)두산 경영지원본부장과 이태희 관리본부장, BG 김병구 사장 등의 (주)두산 인맥을 배치한 것은 난의 진원지인 박용오 회장 인맥을 청산하는 작업으로 비춰지고 있다. 특히 박용오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인 경창호 두산베이스 사장을 물러나게 한 대목은 박용오 전 회장의 인맥을 제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두산 3라운드 어떻게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네’

두산그룹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박용성 현 회장에 대해 ‘비리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이번에는 박용성 회장이 박 전 회장의 ‘부정비리’를 폭로했다. 애시당초 시작된 형제들의 재산 싸움이 쌍방에 대한 부정 비리 폭로전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회장님’들의 전쟁에 대해 그 누구보다 속앓이를 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두산그룹 내부 관계자들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회사 직원들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용들이 많다”며 “상황이 빨리 종료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룹 홍보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홍보실은 두산그룹 박씨 일가의 싸움이 잠잠해져 더 이상 보도가 되지 않기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지만, 정작 그렇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는 상황. 두산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신문에 보도가 되고나서야 (홍보실에서)아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 얘기로 미뤄보자면, 요즘 두산그룹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회장님’들이 일부 측근들을 통해 직접 지시하고, 진행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만큼 두 회장 사이에 묵은 감정이 있었고, 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산인 것. 실제로 박용성 회장과 박용오 전 회장의 다툼이 회사의 공식 루트를 통해 알려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난데없이 기자회견을 열거나, 금융감독원에 뜬금없는 공시를 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박용오 전 회장의 경우, 스스로 보도자료를 작성해 박용성 회장이 약 1,7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며 언론과 검찰에 의혹을 제기했다. ‘아닌 밤중에 형의 공격을 받은’ 박용성 회장은 기분 내키는 대로였다. 박 회장은 지난 8일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두산산업개발의 분식회계를 고백했다. 이 분식회계는 물론 박용오 전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의 경영을 맡고 있을 때 일어난 것이다. 그는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스스로 밝혔다”고 말했지만, 그 얘기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싶다. 이어 박 회장은 이틀 뒤에는 두산산업개발이 박용성 회장, 박용오 회장 등 오너 일가의 대출금 이자를 대신 갚아줬다고 공시했다.

회사 돈이 오너의 개인 쌈짓돈으로 쓰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박용성 회장과 박용오 전 회장은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두산그룹 관계자는 “오랜 앙금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방전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마음 속에 맺힌 한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화목경영’을 자랑해온 두산그룹의 겉모습이 사실과 달랐던 것. 더군다나 박용성 회장은 “회사 돈이 오너들의 은행 이자로 쓰였다”고 스스로 생채기를 내면서도 “나머지 오너일가는 이 돈을 다 갚았지만, 박용오 전 회장 일가는 아직도 돈을 안 갚았다”며 비아냥거릴 정도. 하지만 두 회장의 폭로전이 더 이상 진행될 경우, 두산그룹이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 내부의 한 관계자는 “무차별적으로 서로의 약점을 들춰낼 경우 그룹 경영활동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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