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한금융그룹의 내부 인사를 두고 금융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아들이 신규 설립한 금융계열 투자운용사의 임원으로 올초 전격 발탁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세습경영’을 위한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금융계의 대다수 관계자들은 “회장의 아들이 계열사 임원으로 발탁된 것을 ‘세습경영설’로 연관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일부 신한금융지주그룹 안팎의 시각은 좀 다르다. 금융그룹이라는 회사의 특성상 사기업처럼 ‘회장’의 아들이 주요 포스트에 고속승진하는 것은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라 회장의 경우 신한금융지주그룹의 창업주이거나 오너십을 행사할 만큼 대주주도 아니기 때문이다.

라 회장은 2005년 8월 말 현재 신한금융지주의 주식 13만여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식수는 전체 지분의 0.001%(우선주 포함 총주식수 4억1,600여만주)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며, 개인주주 서열에서도 재일교포인 최모(비상임 이사)씨에 이어 2대주주에 불과하다.도대체 신한금융지주그룹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최근 신한프라이빗에쿼티(이하 신한PE) 투자운용팀 이사로 발령받은 라원진(38세)씨. 그는 신한PE로 이동하기 전까지 신한은행 자금부에서 차장으로 근무했다. 아무리 신설 계열사라고는 하지만 부장이나 이사보 등을 거치지 않고 두 단계나 훌쩍 뛴 것은 초고속 승진인 셈이다.이에 대해 신한지주측은 “신한PE는 전 직원을 모두 합쳐도 10명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조직”이라며 “투자전문회사의 특성상 최하직급은 모두 ‘이사’로 불린다”고 해명했다. 신한PE 발령과 관련해서는 “투자운용팀의 팀원으로 팀장을 보좌하는 역할만 할 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신한지주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미묘하다. 우선 지난해 말 신규 설립된 신한PE라는 회사의 위상 부분. 이 회사는 지난 2004년 12월8일 설립됐으며, 초기 납입자본금은 100억원으로 신한지주가 전액 출자했다. 당시 이 회사에는 동원증권 부사장을 역임한 이진용 사장과 기업합병 전문가인 양기석 전무 등 사모펀드 및 M&A 전문 인력이 대거 영업되면서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신한지주 관계자에 따르면 “신한PE는 현재 3,000억원 상당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이 중 1,500억원은 이미 국민연금으로 충당됐고, 나머지 1,500억원은 그룹계열사들이 갹출해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신한PE는 신한지주그룹의 여유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핵심 투자회사인 셈이다.

하지만 확인 결과 국민연금 외에는 아직 예상한 자금이 모이지 않아 본격적인 투자활동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라 이사는 현재 신한PE에서 무슨 일을 담당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신한지주측은 “개인적인 사항”이라며 일체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그는 현재 신한PE의 핵심 부서인 투자운용팀에서 근무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투자운용팀은 사모펀드를 통해 충당된 자금과 신한계열의 자금을 모아 투자할 대상을 선정하는 부서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라 이사의 경우 그동안 신한은행 자금부 차장으로 근무한 것 외에 별다른 특이한 경력이 없다는 점. 이로인해 그룹 내에서도 라 이사의 고속승진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 라응찬 회장은 누구? 상고출신서 은행총수된 입지전적 금융인

신한금융지주그룹은 그야말로 라응찬 회장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2년 설립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면서 ‘은행장 최초의 3연임’ 등 신한은행에 커다란 한 획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장 출신으로는 드물게 고졸 출신(1959년 선린상고 졸)이라는 점에서 금융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경상북도 상주 출신인 그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농업은행에 입사, 금융외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대구은행 비서실장을 거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라 회장은 제일투자금융 상무로 재직할 당시 신한은행 창립과정에서 이희건 명예회장 등 재일교포들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면서 금융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1991년 신한은행장이 된 라 회장은 이후 국내 은행장 중 최초로 3연임에 성공, 금융계의 ‘스타CEO’란 닉네임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재기를 둘러싸고, 한 때 금융가에서는 “신한은행 창립자들과의 경영권전쟁에서 이겼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그러나 라 회장은 1999년 신한은행 부회장을 끝으로 금융일선에서 물러났으며, 2001년 9월 신한지주의 출범과 함께 지주사 회장에 취임, 금융인이 아닌 경영인으로서 다시금 전면에 나서게 된다. 금융업계에서는 라 회장에 대해 “판단과 결정이 빠르고, 강한 추진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업계관계자들은 라 회장의 이런 추진력이 바로 한미은행과 제주은행 등 대형 은행들을 신한지주 계열로 통합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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