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김지영 교수 “여성들, 언어 수용자를 넘어 창작하고 가용해”

건국대학교&#160;몸문화연구소&#160;윤김지영&#160;교수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페미니즘(feminism)'이란 사회제도 및 기성관념에 의한 여성 억압에 문제의식을 가져 개선을 촉구하고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하는 운동을 뜻한다. 현재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 ‘탈(脫)코르셋 운동’ ‘성 편파 규탄 시위’ 등의 집단행동을 통해 사회적 반향을 얻고 있다.
 
‘메갈리아’ ‘헬페미니스트’ … 인터넷 發 페미니즘 용어
윤김지영 교수 “사회적 의제화 언어, 여성 스스로 만든다는 점 고무적”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성폭력을 고발해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의 서막을 열었다. 서 검사의 용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여성들이 이 운동에 가담하면서 각계 저명 인사들의 왜곡된 성 의식과 내부에 은폐돼 있던 악습들이 드러났다.

이후 ‘비공개 스튜디오 촬영회’ ‘화장실 몰카(몰래카메라, 불법 촬영)’ 등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그릇된 성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있는 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많은 여성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도화선이 돼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됐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사회적 논의로 자리매김했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오해도 존재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페미니즘은 무엇인가’라는 원론을 묻고자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윤김지영 교수와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페미니즘’에 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 간의 성별 불평등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여성인권 운동이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조사한 성 격차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44개국 중 118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의 억압 현실을 개선하고 남성 중심적 체제의 변화를 도모해 차별을 철폐해 나가기 위한 성 평등 운동이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어떤 기조로 진행되고 있는가.
▲2015년 메갈리아의 탄생 이후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이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여성들이 없을 정도로 페미니즘은 일상의 생존 기술로 퍼져나갔다.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프리즘을 통해 일상과 삶 전반을 비판적으로 해부해 나가는 여성들은 전통과 상식의 이름으로 용인되던 여성 혐오적 요소들을 문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청원이나 사회적 공론화, 나아가 여성 시위로 조직되고 있다.
 
-과거에도 이러한 흐름들이 있었나. 현재와 변별점이 있다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학내 운동권 여성들이 서구 선진 사상에 대한 이해 일환으로 페미니즘 서적을 공부하는 방식으로 여성주의가 들어왔다. 대학 내 세미나를 통해 페미니즘이 퍼져나가 주로 엘리트 페미니스트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양성됐다. 하지만 이제 페미니즘은 온라인 페미니즘이자 페미니스트 다중(Multitude)이라는 10·20·30대 여성들이 주축이 돼 여성 의제를 직접적으로 생산하며 기존의 전문가 페미니스트 그룹과 영향력을 주고받고 있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흐름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메갈리아’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메갈리아(Megalia)'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로, 여성 혐오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남성들의 언어를 답습하는 ‘미러링(Mirroring)’ 전략을 내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커뮤니티명은 메르스 갤러리의 ‘메’와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반전해 보여줘 남성 중심 사회의 이면을 고발한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유명 저서 ‘이갈리아의 딸들’의 조어다.

이들은 수동적인 여성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 칭하며 여성 혐오에 남성 혐오로 맞서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이러한 인식이 굳어져 우리나라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정체화(Identifiability)할 경우 “메갈(리아)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다.

-페미니스트와 ‘메갈리아’를 동일시하는 시선에 대해.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세기가 열리는 데에는 메갈리아의 역할이 컸다. 때문에 2015년 이후 등장한 헬페미니스트(지옥의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을 메갈리아 세대로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나아가 페미니스트에 대해 메갈리아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이들의 무지와 무관심이 반영돼서 이러한 등치구조가 생겨나는 부분도 있다.
 
-외국에서의 페미니즘은 어떤 양상인가.
▲2011년 이후 페미니즘 제4물결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온라인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투 운동’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낙태죄 폐지를 위한 운동은 아르헨티나와 아일랜드 등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적’ 페미니즘의 현주소는.
▲현재 한국 페미니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진 초연결성이라는 IT 기술형태를 통한 페미니즘이다. 이 점에서 온라인 페미니즘이라는 제4물결에 속하지만, 여성 의제의 진전속도나 내용에 의하면 페미니즘 제2물결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간극을 가진다.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면.
▲어느 나라보다도 페미니즘 운동이 가장 격렬하고 폭넓게 일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이미 서유럽 국가에서 페미니즘은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어 낸 후 침체기나 느린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 페미니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속도의 측면에서도 강도의 측면에서도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여성 관련 화두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도 퍼져가기 시작했다. 이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탈코르셋’이다.

‘탈코르셋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이 점차 보여주는 것보다 자신에게 편안한 옷차림을 추구하고, 미용 관련 소비가 감소하는 등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핑크택스(Pinktax)’ ‘탈코르셋’ 등 페미니즘 운동과 더불어 새로운 용어들이 발생하고 있다.
▲여성들이 직접 이 사회의 불평등한 사태에 대해 정의 내리고 이를 사회적으로 의제화하기 위해 언어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개념을 만들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고, 이를 인식 개선과 제도 변혁으로 일궈 나가겠다는 적극적 의지이자 실천 양식이 이러한 용어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해당 용어의 정의는.
▲'핑크택스'란 여성용 제품의 질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더 비싼 경우를 뜻한다. 소비 지출의 차원에서 어떠한 성별 불평등이 소비 관행처럼 뿌리내려 있는가를 들여다보게 하는 용어다.

'탈코르셋'이란 여성을 속박하는 정신적, 신체적, 심리적, 물질적 억압 조건들을 코르셋이라 부르고 이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운동이다.

주로 외모 압박과 꾸밈 노동의 강요를 거부하거나 여성들에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침투한 쾌락과 욕망의 지점이 얼마나 여성 착취적이며 남성 중심적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인식 전환과 실천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용어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부조리한 현실을 적확히 드러낼 언어의 부재, 급박히 돌아가는 현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적합한 언어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어들을 통해 페미니즘이 ‘언어’를 획득했다고 봐도 무방할까.
▲그렇다. 그들은 이제 엘리트 페미니스트 학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단된 범주나 개념들을 수용하는 자로만 남아있지 않고 직접 언어를 창작하고 부려 쓴다.
 
-하고 싶은 말.
▲자기 자신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타성이나 통념, 습관의 이름으로, 전통과 상식의 이름으로 성차별을 강화해 오진 않았는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참고 넘어가거나 침묵해야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날카롭게 질문하고 바꿔 나가기 위한 용기가 페미니즘이다. 새로운 시대적 감각인 페미니즘이라는 변화의 물결에 함께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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