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벌그룹에서 총수가 차지하는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총수의 이미지가 그룹 전체의 이미지를 대변하기까지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새롭게 계열분리를 했거나 법적인 문제에 연루돼 위기관리가 필요한 그룹들을 중심으로 총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PI(President Identity: 최고경영자 이미지마케팅 전략)전략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가운데 총수의 경영모습을 담은 사진까지도 치밀한 계획 하에 관리하는 이른바 ‘포토경영(Photo Management)’이 재계 전반으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최태원 SK회장이 대표적이다.

“좀 더 효과적인 이미지 변신 방법은 없을까?”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미지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 권오용 기업문화실장(전무)은 얼마 전까지 사회봉사 자리는 빼놓지 않고 쫓아다녔다. 최태원 회장이 참석 가능한 곳을 파악하고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그룹 총수들 가운데 젊은 편(45세)에 속하는 최 회장의 이미지를 ‘젊음과 패기’ 그리고 ‘사회 공헌’ 쪽으로 집중하고 있기 때문. 사실 주요 그룹 가운데 직접 사회봉사장에 나타나 소매를 걷고 땀을 흘리며 봉사하는 총수는 최 회장이 유일하다. 그만큼 이미지 변신에 효과적이다. 이런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활짝 웃으며 보람찬 인상을 짓은 총수의 사진 한 컷이다. 이 한 컷이야 말로 총수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도 그 동안 실추된 기업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포토경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 회장이 내건 포토경영의 아이콘은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는’, 그리고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젊은’ 기업인이라는 이미지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5∼6개월에 한 번씩 직접 사회봉사활동을 펼치는 최태원 회장의 사진을 보도 자료로 뿌렸다. 지난해 ‘사랑의 집짓기’ 자원봉사 참여, ‘사랑의 바자회’ 행사에서 특별판매 도우미 활동, 올해 정신지체 장애우 40여 명과 ‘쿠키 만들기’에 참가, 직접 빵굽기에 나서는 최 회장의 사진이 언론에 실렸다. 3장의 사진 모두 불우이웃을 도우려는 젊은 대기업 총수의 땀과 노력이 진하게 배어있는 ‘감동어린’ 사진들로 구성됐다. 최 회장은 이처럼 주로 봉사활동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헌신하는 기업인의 이미지’를 쌓아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최 회장은 신입사원들과 6시간 동안 간담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신임 임원과의 대화, 신임 팀장과의 대화, 5차에 걸친 신임 차장 교육 등에 일일이 참석하는 등 월 1회 이상 임직원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최 회장의 이미지 관리는 소극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했다.그러나 고대 선후배 사이인 권 전무가 홍보를 맡고부터 확 변했다.

특히 최 회장에 대한 PI(President Identity) 확립에 박차를 가했다. 최 회장의 사회봉사 활동 모습을 언론에 자주 노출시켰고 부인인 노소영씨와 함께 있는 모습을 언론에 적극 알렸다.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최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소박하고 헌신적이며 친근한 경영인’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내며 최 회장의 경영행보에 큰 도움을 주는 한편 SK의 개혁 노력에 주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 사실이다. 총수들의 소위 이미지 관리가 필요한 시기는 크게 5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새롭게 총수로 등극했을 때, 둘째, 기업규모가 성장성이 높아짐에 따라 변신을 시도할 때, 셋째, 총수 스스로 슬럼프에 빠져 미래 전략을 짜야 할 때, 넷째, 총수 자신이 법적문제에 연루돼 위기관리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마지막으로, 주변에서 이미지 변신을 주문할 때다. 최태원 회장의 경우 첫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이유에 모두 다 포함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은 사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보는 것이 곧 진실이며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것이 언론매체에 투영되면 사진의 신뢰도는 급속도로 높아진다는 것이 신문방송학계의 오래된 주장이다. 이런 맥락 아래 최태원 회장의 사진을 통한 포토경영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 재벌총수들 이미지 마케팅 ‘돌입’
이건희 회장 부제에 대응… 구본무 회장은 현장경영 활발

국감 증인채택과 와병설로 홍역을 겪고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측도 이미지 마케팅에 크게 신경 쓰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의 해외 장기체류가 자칫 증인참석 회피로 연결 지어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룹 부회장 승진설이 나도는 이재용 상무에 대한 단속도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상무가 어떤 형태로든 언론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전략을 짜놓은 상태. 구본무 회장은 요즘 부쩍 현지 공장을 직접 방문하는 ‘현장경영’ 사진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부재를 비교하기 위하여 오히려 더 많은 현장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등LG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도 최근 부쩍 언론 노출이 잦아졌다. 특히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여 허 회장이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적 감각을 강조하는 이미지 마케팅이 한창이다. 45년간 에너지 분야에만 종사한 전문성을 내세우며 ‘미스터 오일’(Mr. Oil)이라는 애칭도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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