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LG그룹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올해부터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LG그룹이 M&A시장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LG그룹이 올해에 확보한 현금만 2조5,000억원대. 대부분 계열사 보유 지분 매각과 국내외 자금조달을 통해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LG그룹이 M&A시장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IMF 당시 구조조정 작업의 일환으로 빼앗기다시피 한 LG반도체(현 하이닉스)를 다시 사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그룹은 업계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확보한 현금은 재무구조 개선과 전자·화학 중심의 사업포트폴리오 확대에만 사용될 것이란 설명이다.

재계관계자들은 그러나 “GS그룹과의 분가이후 위상이 줄어든 LG그룹이 최근 확보한 현금을 바탕으로 하이닉스 등을 인수, 통신 및 전자분야의 선두주자로 나서려 할 가능성이 높다”며 여전히 LG그룹의 행보에 관심을 나타냈다. 2조5,000억원 확보한 LG
LG그룹은 현재 계열사들 및 국내외 자금조달을 통해 모두 2조5,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상태다. 가장 많은 현금을 확보한 곳은 경기 파주시에 생산라인을 확충 중인 LG필립스LCD(이하 LGPL). LGPL은 지난 4월 해외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4,000억원을, 7월 미국에서 1조2,000억원대의 주식예탁증서(ADR)를 발행해 총 1조6,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또한 LG전자는 지난 7월 보유하고 있던 LGPL 지분 2.8%를 매각해 4,000억원대의 현금을 비축했으며, ㈜LG는 합작계열사였던 오티스LG의 유상감자에 참여해 보유주식 전량(159만2,000주)을 매각해 3,300억원을 확보했다.

재무구조가 튼튼한 것으로 알려진 LG그룹이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현금을 확보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LG그룹은 이에 대해 “파주 LCD 공장투자(LG필립스LCD)와 재무구조 개선(LG전자와 ㈜LG)을 위해 확보한 자금”이라고 밝혔다. 특히 ㈜LG 관계자는 “그룹차원에서 현금을 확보한 상태지만, 딱히 투자할 대상은 없는 상황”이라며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부채비율 감소를 위해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LG의 부채비율은 24.3%로 미미하다. ㈜LG의 설명대로 이 현금을 부채해소에 사용할 경우 사실상 ㈜LG는 무차입 경영체제로 들어설 것이라는 게 재계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는 언제든지 사업기회만 보이면 막대한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포석을 다져놓은 셈.재계의 한 관계자는 “LG그룹이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이상 기회만 생기면 ㈜LG를 주축으로 차입 등을 통해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모은 현금과 차입 등을 합하면 가용현금만도 3조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LG그룹’M&A…재계 촉각

재계는 LG그룹의 가용현금이 이처럼 불어나자, LG그룹의 향후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용현금이 엄청난 만큼 대형 M&A매물들을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 재계순위 2위였던 LG그룹이 GS그룹과의 잇단 계열분리로 외형이 크게 줄었으며, 건설·정유·유통 등 ‘캐시 카우’가 될만한 사업들을 모두 계열분리시켰다는 점에서 업계의 이 같은 추측은 더욱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LG그룹의 통신부문 강화에 대해서는 재계를 떠나 각계에서 예상하고 있다. 매물로 나올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통해 LG전자, LG텔레콤, 데이콤, 파워콤 등 여러 분야에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이 같은 예상은 LG그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달 19일 하이닉스 출자전환주식 공동관리협의회는 이달 중순 하이닉스 지분 23% 가운데 일부를 일괄매각(블록 세일)한다는 계획 아래, 해외주식예탁증서 발행을 함께 진행시킨다고 발표했다. 반면 LG그룹은 비슷한 시기 오티스LG에 대한 유상감자를 통해 3,000억원을 회수했다. 공교롭게도 LG그룹에 현금이 유입되는 시기와 하이닉스 지분 1차 매각시기가 맞아떨어진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하이닉스 지분 매입을 위한 LG그룹의 현금 확보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07년 이후 경영권이 걸린 지분 51% 매각(2차 매각)에 앞서 블록세일 때 미리 기반을 다져놓겠다는 것. ‘하이닉스 인수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그러나 금융권 전문가들은 재무건전성을 중시하는 LG그룹의 특성상 최대 3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하이닉스 인수가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인수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이들도 있다.

또한 LG그룹이 상장사 인수시 지분 30%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 지주회사 체제를 가지고 있어 하이닉스 인수에 적어도 3조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8조 2항에 따르면 지주회사가 상장사를 인수해 자회사로 두려면 반드시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업종에 속할 경우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인수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로 둘 수도 있지만, 이 역시 30% 이상 확보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LG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경우, LG그룹측에서 지분 30% 이상은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현재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무려 10조7,465억원(16일 종가)에 이른다. 현 시가를 기준으로 지분 30%만 사더라도 3조2,240억원이 든다.

“재무자금 일뿐” 해명

그러나 지난 6월말 현재 LG가 가진 현금 및 현금등가물은 150억원에 불과하다. LG전자 역시 현금 및 현금등가물은 1조3,200억원에 그친다. 사모투자회사(PEF)에 참여해 간접 인수할 경우 상대적으로 자금이 적게 들지만, PEF 해산 이후 경영권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LG그룹 역시 하이닉스 인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LG 관계자는 “이번 오티스LG엘리베이터 유상감자에 참여한 것은 단순히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라며 “하이닉스 인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회사는 일단 전자와 화학이라는 LG그룹의 양대축을 위주로 사업구상을 하고 있다”며 “재계의 시각처럼 새로운 사업에 대해 전폭적인 투자를 하거나, 대형급의 신규사업체를 인수하는 방법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관계자들은 “LG그룹이 재무구조 개선과 전자·화학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을 말하고 있지만, 새롭게 시작한 리조트 사업이나 여전히 약세인 통신부문을 강화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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