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업계를 중심으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다단계공제조합에 대한 공정위의 ‘낙하산 인사’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다단계업계에는 암웨이, 하이리빙 등이 가입한 직접판매공제조합(이하 직판조합)과 JU네트워크, 다이너스티인터내셔날 등이 가입된 특수판매공제조합(이하 특판조합) 등 두 개의 조합이 있다. 이 조합들은 다단계업체들의 사업승인을 인가하는 업무와 다단계업체로 인해 받은 소비자들의 피해구제를 목표로 설립됐다. 문제는 이 조합들에 상당수의 공정위 퇴직인사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 특히 올 상반기 이사장 교체가 이뤄진 특판조합의 경우, 공정위 1급간부에서 다시 공정위 1급이 재선임되는 등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공정위의 CP프로그램도 논란이 일고 있다. CP프로그램이 다단계업체 사이에서 일종의 보험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것. 다단계업체 관계자들은 “공정위가 사업인가권과 CP프로그램을 통해 다단계업계를 ‘퇴직 후 재취업처’ 정도로 여기고 있다”며 공정위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퇴직 후 다단계로 가는 공정위 1급들

다단계업체들의 불법 영업행위를 감독해야할 공정위가 오히려 다단계업계를 상대로 ‘낙하산인사’와 ‘제식구감싸기’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인가권을 쥐고 있는 다단계공제조합을 통해 공정위 퇴직인사들의 퇴직 후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것. 실제 다단계업계의 양대 조합 이사장은 모두 공정위 출신이다. 이한억 직판조합의 이사장은 전 공정위 상임위원 출신이며, 특판조합의 조휘갑 이사장은 정보보호진흥원장이 최종 이력이나 이전에 역시 공정위 상임위원을 지낸 바 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은 특판조합의 역대 이사장들과 상무가 모두 공정위 출신으로 임명됐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특판조합 관계자는 “공정위 근무를 통해 다단계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사장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이사장 추천과정도 석연치 않다. 국회 정무위 소속 한 의원은 “특판조합의 경우 주요 요직은 모두 공정위 출신들이 차지했다”면서 “업무전문성도 없는 이들이 어떻게 요직에 앉게 됐는지에 대해 인사추천위원회의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지만, 공정위가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업계관계자들은 그러나 “공제조합장이 다단계업체들의 사업인가권을 쥐고 있다는 점과, 조합장 선출에 대해 공정위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정위가 다단계업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민간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의 전면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면죄부가 돼 버린 CP제도

공정위에서 운영 중인 ‘CP(Compliance Program)’제도 역시 논란거리다. 공정경쟁을 통한 거래질서를 바로 잡는다는 근본취지와는 달리 불법행위에 대한 일종의 ‘보험’처럼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처음 제안한 곳은 공정위. 공정위에 따르면, CP제도는 2002년 7월15일 공정위 산하 민간자문위원단으로 구성된 자율준수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국내에 도입됐다. 이 제도에 대해 공정위 총괄정책과 권철현 사무관은 “불공정거래행위 감소를 통한 시장질서 확립은 물론, 법 위반 예방차원에서 운용이 가능한 제도”라고 설명했다.다단계업체 관계자들은 그러나 “CP제도가 도입취지와는 달리 다단계업체들로부터 악용되고 있다”며 “불법행위에 대한 행정명령의 면제요건으로 CP제도 도입이 포함돼 있어 일부 업체들에서 면죄부처럼 활용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산하 (사)한국공정경쟁연합회(이하 공정연)에서 운영 중인 CP제도는 일정 수준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기업이 도입의사를 천명하면 인증을 해주고 있다. 또한 CP제도 도입에 따른 혜택으로는 과징금 경감(최대40%)은 물론, 신문공시 및 검찰고발 면제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CP제도 시행에 대한 정부기관의 강제규정도 없다는 점이다. 즉 기업이 제도도입을 선언하고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되는 셈. 업계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공정연은 “CP제도는 당초 기업들 간에 ‘자발적’인 ‘자율’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를 도입한 업체들에 대한 강제규정을 두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자율규정인 만큼 도입업체들의 양심에 맡길 문제”라고 해명했다.

다단계 점령한 ‘공정동우회(?)’

다단계업체들은 인가권을 쥔 공제조합 이사장직 독점과 CP제도 운용으로 인해 업계가 공정위의 퇴직 후 ‘자리보전처’로 전락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 한국암웨이를 비롯, 대형업체들에는 공정위 출신 임원들이 한두명씩은 포함되는 등 다단계업체들이 사실상 공정위의 ‘낙하산 착륙지점’으로 변질된 상태”라고 귀띔했다. 또한 그는 “다단계업체를 대표하고 있는 양대 조합(특수판매공제, 직접판매조합)의 이사장을 모두 공정거래위원회의 1급 출신 퇴직자들이 번갈아가며 취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위 실무진들의 ‘전관예우’ 차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여지가 높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퇴직하자마자 날아온 공정위 1급 출신의 이사장이 다단계관련 조합에 버티고 있는 한, 엄격하고 공정한 공정위의 잣대는 무뎌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이 같은 논란은 조합설립 당시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먼저 설립된 직판조합의 경우 박세준 한국암웨이 사장이 이사장을 맡았지만, 이후 공정위의 출신들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조합실무진에는 설립당시부터 공정위 인사들이 대거 임명됐다는 게 YMCA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YMCA측은 지난해까지 인터넷을 통해 존재를 알렸던 공정위 퇴직자들의 모임인 ‘공정동우회’(이하 동우회)를 주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내에 재경모임 성격인 이 동호회가 다단계조합과 공정위를 연결하는 창구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 특히 공정동우회의 후원기업에 국내 다단계업체들의 사명이 총망라돼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홈페이지는 지난해 말 개편을 통해 삭제된 상태며, 이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을 현재로선 알 수 없다는 게 공정연측의 설명이다. 공정연 박영문 과장은 이에 대해 “현재 다단계업계에 대한 감사권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집중되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면서 “동우회와 공정연은 별개의 단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정위의 제재조치는 공정위 자체가 아닌 민간전문가들이 대거 포함된 소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인 만큼 공정위 인맥만으로 제재조치를 피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소비자연맹의 정해창 변호사는 “CP제도와 관련된 논란은 강철규 공정위원장이 지난 2003년 CP제도를 민간단체에 이양하며 인센티브 확대방침을 발표한 직후, CP제도에 관련된 단체들의 권력기구화는 이미 예견됐었다”면서 “기업들에 의해 설립한 단체가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법을 뛰어넘는 특혜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 공정경쟁 프로그램의 허와 실

다단계업체들이 지난해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CP제도를 놓고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경쟁프로그램으로도 불리는 이 제도의 정확한 명칭은 ‘자율준수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CP). 이 제도는 지난 2002년 7월 공정위 산하 민간자문위원단으로 구성된 자율준수위원회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도입됐다. CP제도는 기업이 스스로 공정거래 관련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운영하는 준법시스템으로, 기업의 임직원들에게 경쟁법 준수를 위한 명확한 행동기준을 제시해, 법 위반을 예방함과 동시에 위반행위 여부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로 설립됐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도입된다는 점 외에도 CP운영업체가 ‘우발적’으로 공정경쟁법을 위반했을 경우 과징금 등 제재수준 경감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정경쟁을 통해 불법적인 요소를 미연에 방지해 시장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면서 “법 위반을 예방해 기업의 손해방지는 물론, 기업가치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도도입의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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