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외아들이자 막내인 정의선씨의 명함은 3개다. 그는 공식적으로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이자, 현대차 구조조정본부 사장이며 현대모비스 기획담당 사장이다. 이 3곳의 매출은 놀랍게도 재계 순위 2~3위를 달리는 현대차그룹의 매출 60%를 차지한다. 올해 35살인 정 사장의 현주소다. 이런 정 사장의 그룹 내 위치 때문에 내부에서 어느 누구도 차기 그룹 회장으로 정 사장을 점찍는데 이견이 없다. 단지 시기문제라는 것이다. 그것도 내년에 후계구도가 굳어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초읽기에 들어간 정의선 사장의 그룹 승계와 재산 분할 작업 전모를 추적했다.

지난 3일 정의선 기아차 사장 앞으로 한통의 호소문이 배달됐다. 기아차판매점 연합회 명의로 된 이 호소문은 “지난 9월 영업에서 기아차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지 못할 경우 이를 회사에서 보전해 주고 차량 단종에 따른 손실도 최소한 직영 영업소 수준에서 보전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사실 기아차는 국내 영업 부문은 김익환 기아차 사장이 맡고 있고, 해외영업에 관련된 것은 정의선 사장이 맡아서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이런 호소문은 당연히 김익환 사장에게만 보내야 정상이다. 이에 대해 류영직 연합회 회장은 “정의선 사장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로 보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 원만한 해결도 낳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의선 사장의 대내외적인 위치는 그가 현대차그룹의 후계자라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 사장이 현대차 그룹의 경영권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승계 받으려면 주식인수비용, 증여세 등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문제는 정 사장이 어떻게 이런 돈을 구할 수 있겠느냐 이다.

비상장사 통한 경영권 승계자금 확보

정의선 사장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그룹의 주요 계열사 지분은 기아자동차 지분 1.01%가 전부다. 현대차 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어떻게든 늘려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현대차와 기아차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초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사장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정 사장이 지분 30%를 갖고 있던 전장부품 계열사 본텍을, 현대차 지분 14.59%를 갖고 있는 현대모비스와 합병해, 후계 구도를 구축하려다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히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결국 기아자동차와 본텍의 합병은 무산됐고 정 사장은 지난 9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본텍 지분 30%를 지멘스에 매각했다.

한마디로 비상장사를 활용한 편법경영권 승계를 시도했다가 ‘물’ 먹은 사례다. 따라서 현재의 분위기로서는 정의선 사장의 소유인 비상장사를 상장시켜 시세차익을 얻은 이후에야 장내에서 현대모비스, 기아차, 현대차의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이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정의선 사장이 소유한 비상장사들은 현대차 그룹의 관련 일감을 거의 대부분 수주 받아 회사가치를 극대화시키고 있다”면서 “결국 이를 바탕으로 주식 가격을 몇 십 배로 증폭시켜 경영권 세습에 필요한 주식 매입비용을 확보하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정 사장이 소유한 비상장사 중에 눈에 띄는 엠코, 글로비스, 이노션 등이 대부분 참여연대의 지적대로 현대차그룹의 그늘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게다가 서로 상호지분을 인수하여 연결고리를 강화해놓은 상태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비상장사가 있다. 바로 정 사장이 24.96%를 소유한 현대차 물류계열사인 글로비스다. 글로비스는 지난 7월 1일자로 기업공개를 위한 외부감사회계법인을 금감원으로부터 지정받아 놓은 상태. 법률에 따라 상장하기 1년 전에 외부감사인 지정을 받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줄잡아 내년 7월이면 글로비스가 상장될 형식적인 자격이 되는 셈이다. 증권사 리포트에 따르면 글로비스가 상장되면 주당 20만원을 호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 사장이 보유지분 중 일부를 처분해 막대한 현금을 확보한 뒤 현대차 그룹의 핵심 계열사 지분을 매집할 것이라는 분석도 공통적이다.

아내, 딸, 사위까지 계열사에 포진

실 경영 승계와 더불어 재산분할은 정의선 사장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이미 정몽구 회장 일가에 대한 재산 분할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정 사장의 예와 마찬가지로 비상장회사를 물려주는 방식으로 사업시작 초기에 물려받는다. 만약 회사가 성장하거나 대규모 흑자를 낸 뒤에 증여하면 주식 수도 크게 늘고 주가도 크게 올라 증여세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의 부인인 이정화씨와 첫째 딸인 정성이씨의 비상장사 참여가 대표적인 예다. 이정화 해비치리조트 대표이사는 지난 2003년 이사로 발령 받았지만 실질적인 경영참여는 하지 않았다. 단순히 지분만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해 돌연 이정화씨가 해비치리조트의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가 된 것이다.

해비치 리조트는 제주도에 해비치컨트리클럽(골프장)과 해비치오션사이드(콘도)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정화 대표가 올해 66세이며 사실상 35년간 전업주부로 활동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그녀가 갑자기 리조트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되어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전문경영인인 오성훈 대표이사와 함께 올 7월 김창희 엠코 대표이사이자 현대자동차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새롭게 발령받아 이 대표를 돕고 있지만 골프장 건설 및 관리 등 대외업무가 전업주부로 살아온 이 대표에게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결국 명목상의 대표이사이지 대부분의 경영은 오 대표와 김 대표가 맡아서 하고 있다는 것이 주변의 시각이다. 따라서 이 대표가 갑자기 사회로 나선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나하는 것이 재계의 주된 시각이다. 광고회사 이노션에도 정몽구 회장의 장녀 성이씨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전업주부였던 그를 최대주주이자 고문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 일부에선 정 사장의 지분 참여로 빚어질 잡음을 줄이기 위한 ‘물타기’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성이 고문이 보유한 이노션의 지분은 40%인데 공교롭게도 정의선 사장 역시 ‘공평하게(?)’ 40%로 나눠 갖고 있다.

결국 “이노션이 총수의 2세에게 유망한 사업 기회를 넘겨주고 계열사 물량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부와 경영권을 편법적으로 승계하려는 의도가 비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는 셈이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정성이씨가 이노션의 최대주주이며 실질적으로 모터쇼 참석, 신차 발표회 이벤트 계획, 광고제작지휘 등 실질적으로 대내외적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고문이라는 피상적인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노션은 현대·기아차의 광고 대부분을 수주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해 광고선전비로 각각 1,220억원과 911억원을 지출하는 등 국내 초대형 광고주 중 하나다. 이노션의 등장으로 광고업계 판도가 완전히 바뀌는 지각변동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이처럼 전업주부였던 이정화씨와 정성이씨가 비상장사를 통해 경영전반에 등장하며 정의선 사장을 밀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그룹의 이제용 상무와 마찬가지로 정의선 사장도 정몽구 회장의 유일한 아들인 외아들이자 막내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정서상 여성이 승계를 받는다는 것, 특히 가부장적인 전통이 어느 기업보다도 강한 현대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보니 전 가족이 총동원하여 정의선 사장이 현대차그룹을 안전하게 인수할 수 있도록 소매를 걷고 나선 것이다.

시민단체 편법 의혹 제기

흥미로운 점은 부인인 이정화씨와 첫째인 성이씨를 제외하곤 아직도 둘째인 명이씨와 셋째인 윤이씨는 여전히 전업주부로 남아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의 첫째 사위(선두훈씨)가 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것과 달리 둘째와 셋째 사위들이 이미 현대차 그룹의 계열사에서 대표이사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딸들이) 쉽게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즉 첫째 사위가 의사집안에서 태어나 병원경영을 물려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대차 그룹에 합류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따라서 큰딸이 경영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둘째 사위인 정태영씨가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으로, 셋째 사위인 신성재씨가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맡아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 그룹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재계는 “고 정주영 회장에 이어 ‘피보다 진한 것은 없다’는 확고한 지론을 갖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친딸과 부인, 심지어 사위까지 그룹 내에 포진시켜 외아들 정의선 사장의 승계구도를 견고히 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 종자돈 15억원을 8년 만에 400억원으로 불려
삼성 이재용 상무, ‘신통방통’한 재테크 요령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차세대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대물림을 위한 경영수업만 열심히 받고 있는가 했더니 ‘틈나는’대로 재테크 능력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8년 만에 종자돈 15억 2,000만원을 가지고 400억원으로 불려났으니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에게서 당장 삼성을 물려받아도 걱정은 붙들어 매놔도 될 듯하다. 이 상무의 숨겨진 재테크 비결을 조금만 공개하면 이렇다. 이 상무가 서른 살에 불과했던 지난 96년 당시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서울통신기술’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마한 IT기업의 전환사채를 주당 5,000원에 15억 2,000만원 어치를 인수한다.

전환사채(CB)라는 것은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사채로 재벌가의 편법증여 방법으로 즐겨 사용해왔다. 이 상무는 구입한 전환사채를 무슨 연유인지 다음달에 주식으로 바꿔 50.7%라는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서울통신기술은 ‘뛰어난’ 경영능력과 매출실적을 보이며 기업가치를 해매다 상승시켜나갔고 이윽고 8년이 흐른 지난해까지 이 상무가 보유한 주식가치는 400억원대로 급상승한 것이다. 실로 놀라운 안목이자 뛰어난 재테크를 가진 이 상무다. 여기까지 보면 이 상무가 운이 좀 좋았고 재테크에 대한 혜안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라는 짐작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속내를 좀더 들춰보면 이해가 안 되는 의문점 몇 가지가 보인다. 우선 서울통신기술의 전환사채를 시가보다 1/4가격에 살 수 있었던 능력이다. 당시 삼성전자측은 서울통신기술의 주식을 주당 1만9,000원에 샀다.

반면 이재용 상무는 5,000원에 주식으로 바꾼 신통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뿐이 아니다. 속된 말로 서울통신기술이 ‘뜰’ 줄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면 이 상무가 최대주주에 오르자 공교롭게도 서울통신기술이 급성장을 한 것일까. 자칫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식의 공방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나 어느 쪽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서울통신기술은 초기 통신설비가설업체로 설립됐다. 삼성의 계열사쪽의 관련 물량을 수주받아 사업을 펼치는 형태였다. 그러다 99년 삼성전자로부터 사업전망이 유망한 홈네트워크 사업부문을 양도받으면서 승승장구를 하게 된다. 특히 타워팰리스 등 삼성이 짓는 아파트에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거의 독점 공급하면서 누워서 떡먹기식의 사업을 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서울통신기술의 뒤편에는 듬직한 삼성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이 상무의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인수를 통한 편법증여와 배임혐의와 관련하여 관계자들이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 중에 있는 와중에 에버랜드보다 훨씬 구체적인 전환사채 헐값 발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갈길 바쁜 이 상무의 고민이 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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