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10월.해외출장을 목적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오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이후 5년 8개월 동안 고국의 땅을 밟지 못했다. 독일ㆍ수단ㆍ프랑스ㆍ베트남 등지를 오가며 해외도피를 했던 김 전 회장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빈손’임을 강조했다. 모든 재산을 대우 회생을 위해 내놓았기 때문에 수중에 동전 한 닢도 없다는 논지였다. 과연 ‘김우중’은 빈손일까. 하지만 “도대체 무슨 돈으로 수년간 해외에서 버티었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지인들의 도움이라는 궁색한 답변이 이어질 뿐이었다. 일부에서 ‘김우중의 재기론’이 끊이지 않고 떠돌고 있는 것도 김 전회장이 은닉한 재산이 최소한 5,000억 원대 이상이라는 주장이 탄력을 받으면서부터다.

김우중 전 회장은 지갑이 두개다. 하나는 공식적으로 동전 한 닢도 들어가 있지 않는 텅빈 지갑이며, 다른 하나는 수천억원이 고스란히 잠자고 있는 배가 두둑한 지갑이다. 하지만 후자의 지갑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지갑을 부인과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눠서 보관케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지갑들이 좀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어서 일일이 꺼내어 얼마나 들어있는지 확인하기도 그리 쉽지 않다. 엄연히 김 전회장과 그의 부인과 자식들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결국 공식적으로 볼 때는 김 전회장의 지갑은 무일푼 지갑만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상 “마누라나 자식 돈이 쌈짓돈”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보면 상황은 돌변하게 된다.

김 전회장의 아내인 정희자씨의 명함을 보면 ‘필코리아리미티드 회장’이라는 직함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경주힐튼 호텔, GH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대우하노이 호텔을 위탁경영하고 있고, 아도니스(골프장), 에이원컨트리클럽, 로이젠의 최대주주로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정작 필코리아리미티드에 대한 지분은 9.4%에 불과하다. 오히려 퍼시픽인터내셔널이라는 정체불명의 외국계 회사가 90.6%를 소유한 지배주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코리아리미티드는 정 회장 나아가 김 전 회장이 실질적인 오너로 여겨지고 있다. 퍼시픽인터내셔널이 대우해외금융법인인 ‘BFC’에 의해 자본금 383억원으로 설립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BFC는 검찰의 조사결과 김 전 회장의 1,000억원대의 비자금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결국 필코리아리미티드라는 곳이 바로 정희자 회장의 지갑이자 김우중 회장의 숨은 지갑인 셈이다.다시 필코리아리미티드의 계열사 중에 가장 눈에 띄는 2곳이 있다.

아도니스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아도니스와 거제도 장목면 일대 골프장을 개발하는 로이젠이 그곳. 아도니스 컨트리클럽은 대략 3,000억원대의 시가를 자랑하고 있고 로이젠이 개발하는 골프장 부지는 땅값만해도 1,000억원대로 평가받는다. 결국 해외에 빼돌린 비자금 1,000억원, 아도니스 컨트리클럽 3,000억원, 거제도 골프장 부지 1,000억원만 합산해도 최소한 5,000억원대의 지갑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로이젠이 거제도 일대의 골프장을 보유하게 된 사연을 살펴보면 김 전 회장의 숨은 지갑이라는 의혹이 짙다. 원래 이 땅의 소유주는 김 전 회장이다. 하지만 정희자 회장의 소유인 지성학원에 이 일대 21만평을 무상 증여했다. 이것을 다시 56억원 대의 헐값으로 로이젠에 재매각한 것이다. 주인이 두번 돌며 세탁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김 전 회장의 땅이라는데 별 의문을 달 수 없다.지금까지는 정 회장과 연계된 지갑만 열어봤다.

김 회장은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2남 1녀 가운데 아들 둘의 명의로 서울 방배동 일대 300평(40억원)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딸은 이수화학의 주식 6%로 대략 21억원대의 주식을 갖고 있다. 3남인 선용씨는 노블베트남을 통해 베트남의 하노이, 다낭, 호치민에서 골프장 및 주택 개발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해외법인인 BFC를 통해 미국 보스턴 고급주택, 프랑스 포도밭 등 해외부동산과 아트선재센터를 통해 구입한 고가의 미술품 수백점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일각에선 김우중 전 회장이 이런 자산을 밑천 삼아,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세계경영에 다시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그 시작이 베트남이며 종목은 김 전 회장의 장기이자 특기인 건설과 호텔 사업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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