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은 영화광이다. 그녀는 영화에 대해 한 산문집에서 이렇게 평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의 삶을 꿈꾸게 했던 것이 영화였다”라고. 왜 그런 것인지. 꼬치꼬치 캐묻지는 말지어다. 따로 물음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 그저 느낌표만 있으면 족하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영화가 대중에게 골고루 사랑을 받는 이유는 뻔하다. 상영되는 동안 잠시나마 이곳의 냉혹한 현실이 아닌 저 높은 다른 곳의 달콤함을 꿈꾸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은 일상에서 저만치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럴 때 망설이지 말고 영화라도 한 편 볼 일이다. 혼자서 보든, 아니면 누구와 보든 그건 나만의 자유다.

지난 설연휴 3일간 필자는 영화를 보는 자유를 맘껏 누렸다.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할 정도로 행복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원래 말하고자 했던 영화를 돌연 지워버렸다. 대신에 기억의 꼭대기를 차지한 <주먹이 운다>라는 제목의 영화로 불쑥 장사를 말할까 한다.창업에 있어 아이템 선정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첫 번째로 필요한 성공의 조건이 절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템은 항상 두 번째 밖으로 순위가 저만치 밀려나 있다. 자본금, 입지와 함께 아이템은 엎치락뒤치락 중요도에서 2위 자리를 놓고 다툼하는 게 어쩌면 주어진 숙명일지도 모른다. 스포츠로 말하자면 기껏해야 은메달 감이다. 때문에 이류는 차지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일류가 될 수는 없다.

아이템은 항상 두 번째

이를 친절하게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왕년에 복싱스타. 주인공 중 한 명인 강태식(최민식)은 작위적으로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전직 권투선수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유상완(류승범)도 엇비슷하긴 마찬가지다. 건달도 못된 생양아치로 영화에 나오지 않던가. 왜, 은메달리스트이고 또, 생양아치일까. 화면 가득 실어낸 두 주인공의 닮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공통점을 어서 찾아보라고 관객을 향해 빠르게 속삭인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화룡점정을 찍고 만다. 가장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영화의 그림은 교도소 식당에서의 아비규환 ‘혈투’와 초등학교 교실의 ‘칠판’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단순무식, 골통, 독종이란 걸 조연들의 첨언을 참조하지 않아도 단박에 눈치로 알게 될 것이다. 결국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게 서로가 빼닮았다.성공의 조건은 하고자 하는 일, 되고 싶은 꿈이 아주 투명하길 시종일관 요구한다. 더불어 변화를 기대한다. 변화(change)하지 않으면 기회(chance)는 내게 다가서는 법이, 영화 속에서도 영화 바깥에서도 없기는 온통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43세의 남자. 그는 서방노릇은 이내 포기하지만 아빠로 남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 마치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 이야기처럼. 공중전화, 신인왕전 포스터, 목욕탕신이 굳이 영화의 그림으로 필요한 이유다.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

19세의 남자. 그는 다 컸기 때문인지 아버지의 면회조차 외면하곤 한다. 그러나 손자로서 할머니는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패싸움이 아닌 권투로 찾는다. 왜냐하면 교도소 권투연습장 벽면에도 붙어 있듯 ‘글러브는 정당하게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정당당. 이 네 글자야말로 열아홉 사내가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의 표현 방식이 아닐까. 그렇다면 마흔 셋의 아빠와 열아홉의 사내에게 비굴한 삶이 아닌 비쿨(be cool)한 삶을 안내한 코치는 도대체 뭐라고 조언했을까. 먼저 태식의 인생 코치인 분식점 사장역의 상철(천호진)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사연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 게 아냐.” 여기서 사연은 추측컨대 지독한 아픔의 과거일 것이다. 명대사다. 사연일랑 훌훌 털어내지 않으면 고스란히 절망의 비수로 남을 뿐, 희망의 끈을 애당초 붙잡긴 정녕 요원한 것이리라. 따라서 아이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창업자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이다.

또 상완의 권투 코치 박사범(변희봉)은 영화 속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내가 권투를 가르치는 것은 선수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교도소의 권투 코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아울러 시장(교도소)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템(권투, 선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 최상위는 창업자(사람)가 일에 임하는 태도 즉 자세일 것이다. 그러므로 창업에 있어서도 아이템은 어디까지나 두 번째 밖의 소관이다. 첫 번째는 마땅히 창업자의 몫으로 성공의 조건을 가늠하는 것이다.

창업은 인연의 산물

업의 창조. 그것은 창업을 의미함이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차이는 창(創)도 중요한 요소지만 업(業)도 창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 데 있다. 불교에선 업을 두고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연의 결과’로 풀어 강조한다. 그러면서 다르게 ‘카르마’로도 부른다. 이 카르마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차이점을 구분하는 데 아주 그만이다. 사전적 설명으로 덧붙이자면 카르마(karma)는 “생각한 것이 원인이 되며, 그 결과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로 들어 믿어도 무방하다. 일본 최고의 CEO라는 명예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지금은 하고 싶은 승려가 됐다는 ‘카르마 경영’의 저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는,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두 힘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운명과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이라는 것. 따라서 일상의 다반사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며, 그 이념과 행위가 원인이 되어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주먹이 운다>에서 감독은 두 주인공을 통해서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결은 곧바로 카르마가 열쇠가 됨을 알 수 있다. 분식점 사장과 권투 사범과의 인연 때문에 두 주인공은 비로소 생각을 다시 고쳐먹게 되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 운명도 바꾼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반전되는 그림을 보여준다. ‘좋은 걸 생각하면 운명이 바뀌고 이게 또 좋은 결과를 낳는다’라는 걸 두 주인공의 아들과 할머니를 통해서 깨닫게 해준다. 동시에 감독(류승완)은 카르마의 정화를 신인왕 결승전 시퀀스(sequence)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자부하는지 2:1의 판정승으로 승패의 의미를 교묘하다고 할만치 분위기를 퇴색시켜 놓는다. 명장면이다. 창업에 있어서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공자의 말마따나 마흔의 창업은 불혹(不惑)에 좀 더 전략을 맞출 필요가 있으며, 청년은 ‘이십성인(二十成人)’이라고 했으니 ‘사람됨’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유혹을 통제하는 것은 마흔 창업의 성공 비결이며, 사람 노릇하는 것이 스물 청년의 창업의 성공 조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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