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가 여론조사를 재발견한 것은 2002년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부터다. 여론조사는 그날이후로 한국정치의 상수가 되어버린 ‘노무현’이라는 존재를 탄생시키면서 정치판에서 무소불위의 존재로 부상했다.
 
각 당은 앞 다투어 공직 후보자 추천 방법에 여론조사를 끼워 넣었고, 여론조사는 당락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이명박 후보도 본선보다 어려웠던 당내 경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가까스로 뒤집고 정동영 후보는 가볍게 제압해 대통령이 되었다.
 
한국정치에서 여론조사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고 있지만 후보자를 결정하는 데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것은 미친 짓에 가깝다. 여론조사는 특성상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표본오차만큼 표심이 왜곡될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조사 업체, 조사 방법에 따라서는 그 이상 왜곡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정당이 후보자를 유권자에게 내세우는 공천 과정을 여론조사에 맡기는 것은 우리나라 정당들이 그만큼 무책임하고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도 여론조사는 많은 후보들의 공천에서 칼을 휘둘렀다.
 
여론조사가 민심의 온도를 측정하는 사회과학적 도구가 아닌 공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 등락에 따른 반응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년 차에 접어들어서도 70%가 넘는 지지도를 보이자 여론조사에 불신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여론조사는 왜곡”이고 곧이곧대로 보도하는 “언론은 전부 앞잡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적 보수 신문인 조선일보는 “도대체 70%가 어떻게 나오지?”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여론조사 결과에 의혹과 불신의 눈길을 보냈던 심경은 단순해서 해석할 필요도 없다. 반대편 정치세력이 인기가 높은 것이 믿어지지 않으니 조사 결과가 믿기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도가 50%에 턱걸이하는 요즘, 여론조사를 성토하던 불편한 심경들이 사라진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국정지지도 50%가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지만 80%에 육박하던 때가 그리운 사람들은 표정관리가 쉽지 않고, 50% 밑으로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짧기만 하다.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을 보면 미국정치에서 여론조사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시즌2, 13번째 에피소드인 ‘바틀렛 대통령의 세 번째 연두교서’편을 보면 민주당의 바틀렛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세 번째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백악관 참모들은 연두교서 이후에 실시된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백악관이 한 해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연두교서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연두교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여론조사로 가늠하는 모습은 비록 드라마지만 우리와는 영 딴판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 대통령도 드러나지 않을 뿐 여론조사를 국정운영에 유용하게 사용한다. 70%에서 50%로 떨어진 지금도 여론조사 수치는 중요한 문제다. 대통령의 반대 세력은 떨어진 지지도를 무기로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대표적 정책을 포기하길 은근히 위협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 세력들은 떨어지는 지지율을 믿기 어려워 하면서 지지도에 연연하지 말 것을 애써 강권한다.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지도가 고공 행진을 할 때 걸었던 ‘꽃길’을 생각하면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물음이다. 당연히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로 일하는 단임제 대통령에게 여론조사로 측정되는 지지도 말고 다른 정치적 수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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