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년 시험대 오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지난 10월 21일은 난파직전 현대그룹의 수장이 된 현정은 회장의 취임 3주년이 된 날이지만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그룹을 지켜냈다는 기쁨 보다는 지난 3년 동안 경영외적 변수에 시달리면서 마음고생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몽헌 회장 자살 직후 난파 직전까지 몰렸던 현대호의 선장이 된 현회장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등 범 현대가로부터도 경영권 위협이라는 위기에 직면하는가 하면 현대가의 가신이자 정주영-정몽헌 회장 등 역대회장을 모셨던 家臣 김운규 현대아산 부회장을 잘라내야 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최근에는 북핵이라는 최대 악재에 직면해 현대가의 숙원사업인 대북사업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3년 전, 평범한 가정주부의 경영자로의 변신은 재계에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경영능력이 검증된 적이 없는 평범한 가정주부의 위험한 도박쯤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회장은 남편 정몽헌 회장의 자살 이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영능력 검증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현회장에 대한 당시 재계의 시선은 어찌보면 무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회장에 대한 시선은 최근 180도 달라졌다. 더 이상 현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서 이견을 다는 이도 없다. 이는 지난 3년 실적을 통해 검증됐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대그룹의 작년 매출은 6조9,700억원으로 2003년보다 28% 증가한 수치를 달성했고, 2,600억원 적자였던 누더기 회사를 불과 1년새 흑자 7,800억원의 회사로 돌려세웠다.
특히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등 주력 계열사들의 재무상태가 호전돼 2003년 418%에 이르던 그룹의 부채비율은 203%로 가라앉혔다.
경영자로서의 능력은 어느 정도 검증됐지만 현회장은 경영외적인 변수에 노출돼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우선 현회장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위협은 가시권 안에 들어섰다. 크게는 시숙 정몽준 회장의 경영권 위협과 북핵이라는 악재가 그것이다.
우선 현회장의 최대 부담으로 다가서고 있는 경영권 분쟁은 현회장의 판정승으로 결말지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현회장은 숙명처럼 느껴지는 현대가의 모기업이자 뿌리인 현대건설 인수에 전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시숙인 정몽준 회장 등 범현대가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0월 24일은 현대그룹이 가파른 9부 능선을 넘어선 날이다.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난 10월 24일 이사회를 열고 아일랜드계 파생상품 전문투자 회사인 넥스젠 캐피탈과 현대상선 주식 600만주(지분 4.5%해당)에 대한 파생상품 계약을 전격 체결했다. 다소 말이 어렵게 들리지만 이날 계약으로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 그룹의 경영권 위협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 이에 따라 40%대에 머물던 현대그룹의 우호지분을 45%대로 끌어올리면서 사실상 경영권은 안정권에 들어왔다는 의미인 것이다.
현대그룹은 이와 관련 “이번 계약으로 현대상선 우호지분이 40%대 중반을 넘어서게 돼 경영권 안정화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선언했다.

시숙과의 갈등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간의 경영권 전면전은 지난 4월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주식 26.7%를 현대그룹과 한마디 상의없이 전격적으로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지분 인수배경과 관련해 “현대상선을 외국인의 적대적 M&A로부터 보호해 안정적으로 고객을 확보하고 유동자금 투자를 위해 상선지분 매입을 결정했다”며 현대그룹의 백기사임을 자처했다.
현대중공업의 해명에도 현대그룹은 긴급 보도자료를 내면서 “사전협의는커녕 우리의 반대의사를 무시하고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한 현대중공업 그룹이야말로 백기사가 아닌 흑기사”라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당시 재계도 현대중공업의 지분 인수를 겨냥해 ‘시숙과 형수와의 전쟁’이라는 시각으로 보면서 정몽준 회장이 현대그룹 접수를 위한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갈등은 그날 오후 설전으로만 그쳤다.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잡음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협은 위협이었던지 현대그룹은 이후 유상증자와 우호지분을 확대하면서 우호지분율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현대그룹은 “4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이 없어도 안정적 경영권 확보가 가능해졌으며, 이번 파생상품 계약으로 현대중공업과의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종료됐다”고 했다.
현대상선의 우호지분은 현대엘리베이터 18.72%,케이프포춘 10.01% 우리사주 5.82% 현회장 등 특수관계인 3.66% 등을 포함한 40.5%대였다. 반면 현회장에게 적대적 기색을 보였던 범현대그룹의 지분은 현대중공업그룹 25.48, KCC 5.97% 등 31%대에 이르고, 매각을 앞두고 있는 현대건설도 8.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투자 욕심
한숨을 내쉰 현회장 앞엔 또 하나의 큰 난제가 턱 하니 버티고 있다. 북핵이 그것이다. 현회장뿐만 아니라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과 시아버지 고 정주영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온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 남북 경협 사업이 북핵으로 올스톱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실상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에 큰 이익을 안겨주는 사업은 아니다. 그룹매출의 기여도도 낮다. 이 사업을 전담해온 현대아산의 작년 매출액은 2,350억원. 이쯤되면 버릴만도 하지만 현회장이 느끼는 대북사업에 대한 무게감은 남다르다.
우선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숙원사업이라는 점과 남편 정몽헌 회장이 죽음 직전까지도 대북사업에 집착했다는 점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듯하다. 또 남북화해와 협력이라는 대의를 추구해왔다는 점에서 당장의 사업성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 개념이 큰 것도 사실이다. 북핵 변수에 현회장이 어떻게 대처해나갈지 그녀의 관리능력이 주시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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