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원 직원 무더기 해고 파문


“경찰관의 의견 하나로 1700여명의 직원들이 해고됐다.” 황당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로 무인경비시스템 보안업체인 (주)에스원에서 지난 8월 영업전문직 직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더구나 그 사유가 현직 경찰관의 문서 한 장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순식간에 실업자로 전락한 이들은 ‘삼성에스원 노동자연대’를 결성하고, ‘강제 해고된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집회를 열어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노동계 역시 이 사태를 두고 ‘과연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냐’는 반응이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에스원 영업전문직 무더기 계약해지 사태’의 내막에 의문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에스원 영업전문직 직원들은 지난 8월 회사로부터 ‘계약해지 신청서’가 담긴 통보서를 받았다.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내용인즉 ‘경찰서로부터 경비업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담은 공문을 접수했으며, 현재 영업전문직·딜러에 의한 영업형태가 불법’이라는 것이다. 에스원측은 이를 근거로 영업전문직 직원들에게 신청서 작성을 강요했다.
법적 강제력을 내세운 해고 통보 앞에 직원들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1,700명의 직원들이 계약해지 신청서에 서명을 했다. 이에 대해 에스원측은 ‘실제 계약해지 인원은 560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700여명은 이전에 퇴직한 인원들까지 누적된 인원”이라는 설명이다. 계약해지 인원이 감소되었다 하더라도 수백 명의 직원들이 일방적으로 해고조치를 당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이 계약해지의 사유로 밝히는 ‘경찰의 유권해석’이 어느 정도의 신뢰를 지니고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에스원측이 주장하는 ‘경찰의 유권해석’이 내려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경찰의 유권해석 작성이 한 개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익명의 개인’으로부터 기계경비영업이 경비업법에 위반되지 않느냐는 질의를 받고 ‘기계경비시스템 설치영업을 하도급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질의회시 문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의 유권해석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권위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성 연대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미 10여명의 변호사들에게 경찰의 유권해석이 법률적으로도 근거가 없다는 자문을 얻었다”고 말했다. 경찰측이 밝히는 규정은 경비용역업을 재하도급해줄 수 없다는 내용인데, 계약해지된 직원들은 경비업무를 맡지 않고 경비용역 계약영업만을 위탁받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언론의 보도로 확산되자 남대문경찰서 생활안전과는 “자문을 얻어 유권해석에 대한 재확인작업에 착수하겠다”며 다소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다.
계약해지의 핵심적인 근거가 되는 경찰의 유권해석이 설득력을 잃고 있지만, 에스원측의 입장에는 변동이 없다. 경찰의 유권해석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전문영업직 직원들을 계약해지 시킨 명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배홍건 에스원 차장은 “경비업법을 담당하는 부처가 경찰청인데 이들의 유권해석을 따르지 않고 민간법률단의 자문에 기대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적 조정을 받을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법률을 존중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동종업체 모두에 적용되는 사안에 본사가 움직일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동종업계에 모두 적용되는 법안이라고는 하나 이를 대처하는 기업들의 대응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KT텔레캅의 경우 동일한 사항을 두고 영업전문직 직원들을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전환하는 조치를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기업의 적극적인 대처방안이 사태악화를 막은 사례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양측이 법률적인 해결 방안만을 모색할 경우 장기전으로 갈 공산이 크다. 유권해석의 주체인 경찰측에서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 소속 에스원의 소극적이지만 막강한 무반응 앞에 영업전문직 직원들은 위태로운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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