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계열 유동성위기설 추적


국내 대표적 핸드폰 생산업체로 떠오르고 있는 팬택계열이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였다. 팬택측은 즉각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팬택의 유동성 위기설은 지난 9월 말경부터 불거졌다. 위기의 근본은 팬택 계열의 단기차입금 급증이 원인. 시장에서는 최근 팬택의 부채비율과 단기차입금의 급증을 위기설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팬택측은 "현재 운용 자금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적극 부인하고 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팬택의 재무상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팬택계열의 재무상황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팬택측의 설명에도 결론적으로 볼 때 팬택은 단기차입금 비중의 증가로 자금운용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단기차입금 10배 급증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팬택의 지난 2002년 단기차입금은 326억원에 불과했지만 2006년 6월 현재 3,003억원으로 집계돼 4년만에 무려 10배 가까이 늘었고, 1,374억원이었던 부채는 지난 6월 현재 8,696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377%로 지난 2002년 97%에 비해 외부차입금이 크게 증가한 상태. 이밖에 시장이외에 사채로 조달한 자금도 만만치 많다. 2002년 198억원에 불과했던 사채자금은 2006년 현재 2,090억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팬택이 단기차입금과 사채의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분위기다.
흔히 유동성 문제를 거론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하는 지수가 있다. 바로 단기유동성 지수. 한신평에 따르면 팬택의 단기유동성 지수는 최근 38로 하락, 업계 평균 87보다 낮다. 이같은 수치는 낮아질수록 자금사정이 나쁘다는 징후다. 단기유동성 지수가 낮은 수치일수록 부채의 만기가 일시적으로 집중될 경우 부채상환에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
재무 상태를 볼 때 팬택은 재무사정이 썩 좋은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부채비율이 높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위기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자금순환을 얼마나 제대로 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회사채 등 자금시장의 경우는 악소문에 선의의 피해를 보는 기업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현재 팬택이 바로 이 입소문에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팬택의 위기설은 처음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저런 소문이 흔히 있기 마련이고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면아래에 머물던 팬택의 유동성문제가 최근 들어 급부상한 것은 영업실적의 악화가 겹치면서다. 지난 5년간 팬택은 2002년과 2004년 이익을 냈지만 최근까지 2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팬택은 지난 2005년 217억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올 상반기도 99억원의 적자상태에 빠졌다.

외국인 주식 매도
시장은 팬택의 어려움을 일시적 현상으로 봤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상기류는 지난 9월부터 감지됐다. 고점을 찍던 주가가 9월 말경부터는 침몰하기 시작했다. 잠시 주가가 주춤하더니 급락세로 돌아선 것. 지난 9월 29일 주당 5,500원(액면가 500원)이던 팬택 주식은 10월로 넘어가면서 3,500원대로 떨어졌고, 특히 외국인은 팬택의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팬택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지난 9월 2.3%였지만, 10월초 한때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외국인 주식보유 현황은 현재 1.18%에 머물고 있다. 반토막이 난 것이다.
외국인 투자 비중 하락과 주가 급락은 소문을 다시 확대 재생산했다. 당시 떠돌던 증권가 소문의 골자는 팬택측이 SK텔레콤에 지원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내용이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했지만 SK그룹 실무담당자들이 최회장을 만류했다는 것이다. 최회장은 박부회장을 돕고자 했던 모양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시장에서는 팬택의 부도설에 가까운 소문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르면 팬택측이 10월말경까지 막아야할 기업어음과 자금이 300억원대인데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소문이 확산일로를 걷자 팬택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직접 해명하고 나섰다. 팬택은 지난 10월 31일 “기업어음및 회사채로 인한 자금악화설 및 부도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팬택측은 이날 “팬택의 경우 연말까지 5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 만기가 예정돼 있으며, 팬택앤큐리텔의 경우 이날 350억원 규모의 협력업체 지급대금 등 결제대금이 도래하나 지불할 예정”이라며 “연말까지 2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 분할지급이 예정돼 있지만 운영자금 수준에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팬택측의 해명에도 팬택 유동성 문제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20일 팬택의 구조조정 발표도 소문을 확산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팬택측은 당시 부사장과 전무급 인사이동을 하면서 고강도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팬택에 따르면 11부문 41본부의 조직을 3부문 29본부로 크게 줄이고, 현대큐리텔과 SK텔레텍을 인수하면서 생긴 중복인력을 정리해 약 30%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마디로 유례없는 고강도 구조조정인 셈이다. 시장에서는 팬택측의 인력 구조조정을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팬택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그것.

SK텔 팬택 위기설 공론화
시장의 악소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팬택은 최근 또 다시 직격탄을 맞았다. 팬택의 위기설이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 팬택의 위기설을 수면위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핸드폰 단말기 공급 등 협력관계에 있는 SK텔레콤 고위관계자.
지난 10월 26일 올 3/4분기 실적을 설명하는 SK텔레콤의 컨퍼런스콜(전화회의) 현장에서 팬택에 대한 의미심장한 멘트가 튀어나왔다.
증권가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이날 회의에서 하성민 이 회사 경영지원부 전무가 한 애널리스트로부터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는 팬택에 대한 지원방안을 묻자, 하전무는 “팬택계열과는 단말기 수급 등에서 협력관계”라며 “자금 등 추가지원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던 것.
당시 하전무는 시장으로부터 팬택의 유동성 문제를 듣고 있다고 언급한 것. 이날 대화는 시장 전문가들과 이 회사의 고위간부 간 의견 교환에 불과했지만 이 소식은 즉각 외부로 유출되고 말았다.
이날 SK텔레콤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애널리스트들과 대화를 실시간으로 중계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었던 점에서 시장의 반응은 빨랐다.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자 팬택의 주가는 곧바로 약세를 면치 못했고, 소문으로만 그치던 팬택의 자금악화설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10월 31일 현재 팬택 주가는 하락세를 걷고 있다. 소문으로 돌던 위기설이 말 마디에 언론의 스폿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특정 업체의 위기설을 거론할 의도는 없었고, 3/4분기 실적을 설명하는 자리였다”며 본의 아니게 빚어진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팬택측은 하전무의 입을 원망하는 눈치다.
증권시장 관계자는 “회사채 등 채권시장에서는 소문이 무섭다. 특정 기업에 대한 악소문이 나돌면 돌이킬 수가 없다. 웬만한 기업도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말 한마디가 화근이 돼 위기설에 휩싸인 팬택이 작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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