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이명박 지지한다


최근 이회창 한나라당 전총재(이하 昌)의 ‘정계복귀’ 여부가 단연 화제다. 대선을 앞두고,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숨은 뜻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하지만 호가호위(狐假虎威)하려는 주변 인사들이 오히려 정치행보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 전총재 한 측근은 “좌파정권을 종식시킨다는 생각 때문에 당연히 (대선주자를)도울 것이다”라는 관측도 내놓았다. 나아가 당내에서는 지원 대상이 이명박 전서울시장(약칭 MB)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대선에서 ‘昌(이회창)-朴(박근혜)’간에 남은 앙금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더구나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캠프의 핵심라인이 MB캠프에 대거 포진된 것만도 예사롭게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昌‘식 가이드라인 제시

최근 정치권은 대선 전선 기류가 급격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때를 맞춰 이 전총재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시국강연회 일정을 살펴봐도 창원에 이어 서울, 대전 등지를 도는 전국투어 방식이다. 이것만 봐도 ‘창(昌)’만의 가이드라인이 드러난 격이다.
그는 지난 20일 경남 창원 특강을 통해 “좌파정권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묘한 발언이다. ‘내가 할 일’이라는 문구에는 ‘역할론’을 자임하겠다는 의중이 깔려 있다. ‘킹’보단 ‘킹메이커’ 임무라는 깃발을 올린 셈이다.

‘MB’캠프, 昌라인 대거 포진
이 때문인지 한나라당내에선 친이(親李)그룹에 속하는 의원들이 대환영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이런 정황은 곧 이 전총재가 이 전시장을 물밑 지원할 가능성이 관측되는 대목이다.
사실 지난 2002년 대선당시 이회창 캠프진영 핵심라인 상당수가 MB캠프에 투입된 상황이다. MB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당시 사무총장)과 친이(親李)그룹인 이재오, 권철현, 공성진 의원 등이 바로 ‘昌의 사람’이다. 김정훈, 나경원 의원 등도 친MB라인이다. 특히 이 최고위원은 MB캠프 진영의 지지세(勢) 모임에 얼굴을 자주 내밀고 있다.
최근 발족한 李캠프의 ‘한국의 힘’(정책브레인 자문기관)에는 김해수 이 전총재 보좌역이 합류했다. 또한 2002년 대선기획 단장 보좌역을 맡아 대선 ‘노하우’가 있는 권영모 조순 전서울시장 비서관 등도 활동 중이다. 이는 “박 전대표 캠프진영에 (이회창 사람의)지지기반이 몰렸다”는 일부 시각과는 다른 형국이다.

친이(親李)그룹, 昌정치적 행보 적극 권유
이 전총재의 ‘킹메이커’ 역할을 주문하는 쪽은 친이(親李)그룹의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 그는 지난 대선 때 원외에서 교수진으로, 정책브레인 역할을 맡아 창(昌)을 도왔던 인물이다.
그는 최근 KBS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이 전총재를 향해 과거 군부나 지역을 볼모로 정치하는 3김(金)시대의 킹메이커와는 다른 역할을 주문했다. ‘昌의 남자’라는 뒷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 의원측은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以心專心)으로 통하는 그 무엇이 있다”며 “(이 전총재가)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일정부분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재오 최고위원 역시 “당 상임고문 정도로 당 복귀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다.
‘창(昌)사랑’의 백승홍 상임고문도 “최근 행보가 대권도전을 하기 위한 수순 밟기는 전혀 아니다”며 하지만 “좌파정권을 타파하기 위한 연대, 기구 발족의 중심에 서야한다”고 촉구했다.

朴-孫, 昌견제 시작
그러나 ‘昌의 움직임’에 견제구를 가장 먼저 날린 쪽은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대표다. “(정계은퇴)의 약속을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표현으로 이 전총재의 행보에 제동을 건 셈이다.
어찌 보면 ‘변화구’를 주문하는 목소리일 가능성도 높다. 향후 창(昌)이 대선주자로 나설 경우, 당심(黨心)의 위력이 가장 센 박(朴)의 당내입지 또한 상당한 변화조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치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핵심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선에 2번이나 도전한 저력과 힘이 남아있는 만큼 한나라당에서 일정부분 지분을 갖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선뜻 정치일선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손학규 전경기지사 역시 ‘창(昌)’의 정치개입을 전면에서 은근 슬쩍 견제하고 있다. 자칫 ‘차떼기당’, ‘수구꼴통당’이라는 옛 한나라당의 마이너스 이미지가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손 전지사는 “오늘이 어렵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다만 “국가원로인 만큼 우리 사회를 쓰다듬는 스승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다”라고 했다. 손 전지사캠프의 이수원 공보특보는 “이 전총재가 직접 정치에 발을 들여놓겠다고 밝히지 않은 이상, 이와관련된 언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박근혜 ‘삭발이벤트’ 해프닝 앙금남아
일찌감치 ‘昌-朴’간에는 앙숙관계는 아니더라도 미묘한 관계가 설정돼 있다. 풀리지 않는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삭발 이벤트’ 해프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여성유권자의 표심 공략 차원이었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지지율 면에서 노무현 후보를 앞지르고 있는 판세. 하지만 현장선거유세에선 다소 노 후보에게 밀리는 형국을 캠프에서는 감지했다.
이 때 창(昌)의 비서실장이던 권철현 의원은 당시 박근혜 의원에게서 예전 박정희의 그림자를 그리는 정치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는 노 후보가 ‘감성 정치’라는 접근 방식을 취한데 대한 대책이기도 했다. ‘박(朴)’의 삭발기획은 대선 선거일 3, 4일을 남겨둔 상태에서 나왔다. 선거 종반판세를 판가름할 수 없는 마당에 구상한 기발한 대(大)이벤트였다.
하지만 당시 박 의원은 난색을 표했고, 결국 대국민 호소문 발표로 그 접점을 찾았다.
창(昌)의 주변측근들은 선거 패배요인을 박근혜의 삭발이벤트 중단에서 찾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박 전대표와 권 의원이 지금까지 서먹서먹한 관계다.
권 의원측은 “아직도 그 때 당시의 일로 감정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권 의원이 친박(親朴)에서 친이(親李)로 돌아선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昌-朴’은 동상이몽(同床異夢)?
특히 지난 2002년 박전대표의 한나라당 탈당, 복당 과정에서 빚은 그의 정치적인 동향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당시 박 의원은 자신이 주장한 정치개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다시 이 전총재와 계약적 관계설정이라는 조건부 재입당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서는 “정치예술인이 벌인 고난도의 곡예였다”고까지 표현한다. 한마디로 당시 박 의원의 행보는 ‘바위에 계란 던지기’식이었다. 여성정치인의 젊고 패기 넘치는 폭발력, 걸쭉하고 항의성 짙은 박 의원의 멘트는 대중들의 환심을 단번에 사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후보의 포용력, 친화력 부재 등이 부각되면서 창(昌)의 이미지에 역효과를 일으키는 단초가 됐다.
창(昌)의 주변 측근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지금까지 그 때의 일로 두 사람 사이는 마주 달리는 기차와 같은 격이라고 표현한다.
‘창(昌)-朴’, 겉으로는 같은 방향을 향하는 상생(相生) 관계일지라도 속내는 각기 다른 길을 걷는 ‘동상이몽(同床異夢)’관계라는 얘기다.

창(昌)=소양인, 박(朴)=소음인
체질학적으로 살펴봐도 이들 ‘창(昌)-朴’은 상극관계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전총재는 소양인이다. 반면 박 전대표는 소음인. 소양인과 소음인은 대립관계다.
체질학에 관련있는 한 전문가는 “소양인과 소음인은 서로 눈치 빠르게 대처하고 대치하는 관계”라고 했다. ‘창(昌)-박(朴)’이 표면적으로 앙숙관계는 아니더라도 껄끄러운 사이였던 만큼, 체질적인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창(昌)-박(朴)’간에는 일정거리가 유지됐다.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지우기’ ‘차떼기당 벗기’에 일등공신이 바로 박 전대표와 최병렬 대표다.

“유승민 의원 도운 것은 개인적 친분 때문”
정치권에선 한동안 이 전총재가 박 전대표를 ‘서포트’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무성했다. 단지 지지기반, 이념적 성향 등이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0월 재보궐 선거 때도 이 전총재가 박 전대표의 복심인 유승민 의원을 적극 지원 유세한 것만으로도 창(昌)-박(朴)간의 관계설정이 남달라보였다. 유 의원은 지난 대선당시 여의도경제연구소장을 지낸 경제 전문가다.
이 전총재측의 이흥주 전 공보특보는 이에 대해 “박 전대표가 다른 대권주자들에 비해 예의를 갖추다보니 (이 전총재와의 관계에서)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했다. 이종구 특보는 “(유 의원이) 이 전총재를 오랫동안 모셨기 때문에 당연히 개인적인 친분 차원에서 도왔을 것이다”라고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박 전대표의 복심인 유승민 의원측은 이에 대해 “다 각자 제 갈길을 가면서 자기 목숨 살자는 명분이 먼저 앞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창(昌)사랑’의 백승홍 상임고문도 “(박 전대표를) 적극 지원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며 되레 한나라당의 줄서기 경쟁을 지적했다. “한나라당이 나뉘어질 정도로 줄서기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정치권,언론 등에서 설정한 ‘昌-朴’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해준 셈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