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두 거두 사망 후폭풍


현영원 현대상선 전회장과 조수호 한진해운 전회장이 잇따라 별세했다. 재계는 국내 해운업계를 대표하는 두 거목의 잇따른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곧장 경영권 승계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오너를 잃었다는 사실 외에도 경영권 분쟁의 한가운데 놓여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경영권을 둘러싸고 현대중공업측과 대립해야 했던 현대그룹과 마찬가지로 한진해운은 형제기업인 한진그룹과 미묘한 지분경쟁 혹은 M&A가능성 등에 노출되어 있다.


현대상선은 고 현영원 전회장이 별세했지만 경영체제에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지분구도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 못하고, 현대중공업과의 사이에서 불거져 나오는 M&A설 역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중공업 측의 경영권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른바 ‘시동생의 난’으로 불리는 정몽준 의원을 비롯한 범현대가와의 경영권 다툼을 말한다.
지난 4월 27일 정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과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은 현대상선의 지분 26.68%를 인수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현대엘리베이터를 제외한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시숙의 난 격화 조짐
현대중공업측이 현대상선의 지분인수는 단순투자목적이라고 해명하고 있음에도 그 의도를 적대적 M&A로 보는 여론이 지배적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에 맞서 현대그룹 측은 현대상선 주식을 추가로 매입하거나, 해외 우호세력을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지켜냈다. 지난 10월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은 현대상선 주식 8만 8,400주를 장내 매수해 보유지분율이 1.67%에서 1.74%로 증가했다.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6월 23일 현대상선의 지분 230만주를 장내매수, 지분율을 17%에서 18.72%로 늘렸다.
10월 24일 현대엘리베이터는 이사회를 열어 아일랜드계 파생상품 투자회사인 넥스젠 캐피탈과 현대상선 주식 600만주에 대한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의했다.
이 계약은 5년 만기로 차후 넥스젠 측이 증시상황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가 소유하고 있는 현대상선의 지분 600만주를 매수하게 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계약 만료 후 현금 또는 현물로 정산하게 된다. 하지만 계약기간 동안 현대상선의 주가가 하락하여 손실이 발생할 경우, 현대엘리베이터가 그 차액을 전부 보상하기로 되어 있어 잠재적으로 재정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계약이 경영권의 확고한 안정에 기여한다는 측면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
고 현영원 전회장은 2005년 5월, 부인 김문희 여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장학재단 ‘영문’에 자기 소유 주식 162만 2,892주를 증여했다. 현정은 회장 양친이 고령이기 때문에 장학재단 설립을 통한 증여 등의 방식으로 지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주식들은 현재까지도 현정은 회장측의 우호지분으로 남아 있다.
현대그룹 우호지분과 주력계열사가 소유한 현대상선 지분은 41%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넥스젠측을 통해 추가로 현대상선 지분을 최대 4.5%까지 인수할 수 있어 지분율을 약 45%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대그룹의 전망대로라면 현대중공업 측과의 경영권 분쟁에서는 앞으로도 안정적인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대중공업이 소유한 지분 25.48%와 범현대가 정상영 회장의 KCC그룹 소유 지분 5.97%를 합치고, 여기에 현대건설을 인수하더라도 현대상선 지분율이 40%를 넘지 못하기 때문. 현대건설은 현대상선의 지분 8%를 갖고 있다.

한진해운 적대적M&A 가능성 낮아
한진해운은 조수호 회장의 별세로 경영권 향배를 가늠하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외국계 자본에 의한 적대적 M&A가능성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위탁경영설이다.
결론적으로 외국계자본에 대한 M&A가능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현재 한진해운의 지분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외국 자본은 이스라엘 출신의 해운재벌 새미오퍼다. 지난 10월 4일 새미오퍼는 제버란 트레이딩으로부터 한진해운의 지분 8.7%를 추가 인수하면서 지분 12.76%를 확보했다. 따라서 외국계 제 3자에 의한 M&A는 새미오퍼로부터 비롯된다.
11월 28일 푸르덴셜투자증권은 외국계 자본에 의한 한진해운의 M&A가능성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최원경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12.7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새미오퍼를 제외하면 5%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계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데, 지분경쟁을 위해 모든 외국계가 단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설령 외국계가 단합한다 해도 범한진그룹의 우호지분 28.45%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보유한 6.62%가 우호지분이라는 가정아래 서로 합하면 35.07%이다. 이는 모든 외국계 지분을 넘는 수준이다”라고 했다.
2001년에 발행된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이 또한 경영권 방어에 유리한 측면이 높다는 해석이다. 발행 당시 소유주는 아시아계 투자회사 PVP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새미오퍼가 주인일 수도 있다는 가정도 있지만, BW발행 당시 PVP와 조수호 전회장이 주식전환시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할 수 있는 조항에 합의했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BW가 행사될 경우 범한진 그룹의 우호지분은 증가하고 새미오퍼를 비롯한 전체 외국계의 지분은 줄어든다.
조양호 회장으로 대표되는 한진그룹 내 지분경쟁 역시 외국계 M&A설과 맞물려 설득력을 잃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애초에 밝힌 바 대로 한진해운에 우호적이라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4일 대한한공 계열의 한국공항이 한진해운의 지분 0.23%를 추가 매입하면서 형제기업 간의 지분경쟁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맏형 조양호 회장의 한진해운 경영권 보호 또는 위탁경영이 언급되기도 한다.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
고 조수호 전회장이 보유하던 한진해운 주식은 6.87%이다. 이 지분을 누가 넘겨받느냐가 한진해운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가족이 그 지분을 인수할 경우 지분감소의 우려가 있다.
고 조 전회장의 지분 상속대상자는 부인인 최은영(40) 씨와 두 딸 유경(20), 유홍(19) 씨. 하지만 현재 세 사람 모두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두 딸은 아직 유학 중에 있어 경영을 맡기에 무리가 있다.
가족들이 이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70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무리한 현금부담으로 인해 상속세를 지분으로 대납하게 되면 지분이 절반으로 감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외국계 M&A에 의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을 보호하려는 한진해운의 입장에서 피해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현재까지 고 조 전회장의 유언 공개여부에 앞서 유언장의 존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어 직계가족 상속에 따른 지분 축소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조양호 회장측이 한진해운 지분을 매입하는 이유가 바로 상속에 따른 지분감소등의 위험요소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조양호 회장측의 위탁경영 체제로 변환될 것이라는 예측도 여기서 기인한다.
평소 한진해운과 조양호 회장측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도 한진그룹 내 지분경쟁설을 희박하게 만든다. 최 애널리스트는 “한진해운은 조수호 회장이 독립 경영을 해 왔으나 실질적으로는 한진그룹과 계열분리가 이뤄지지 않아, 굳이 대한항공 계열에서 지분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며 “장기적으로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확보할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굳이 생전에 사이가 좋았던 동생 고 조 전회장의 별세 직후에 지분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진家의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조양호 회장과 재산다툼을 벌였을 때에도 고 조 전회장은 조양호 회장과 유대관계를 유지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박정원 한진해운 사장이 주도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이다. 박정원 사장은 고 조 전회장이 병상에 있을 때에도 신뢰를 받아 실질적인 전문경영체제를 유지해왔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지금까지 박정원 사장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 체제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계상속이 이루어질 경우 유족들이 대주주 역할을, 조양호 회장은 후견인을 맡을 공산도 크다. 물론 이 경우, 차후 조양호 회장이 유족들의 지분을 인수해 한진그룹에 편입시킬 것으로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 한진해운 회장공석, 주인은 누구?

당분간은 공석유지 제2의 ‘형제의 난’ 가능성 희박

고 조수호 전회장의 타계로 현재 한진해운의 회장석은 비어있는 상태이다. 때문에 한진해운 회장석을 누가 이어가느냐는 문제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한진해운측이 밝힌 대로 한진해운의 경영은 박정원 사장을 축으로 전문경영체제를 고수할 것이 유력하다. 경영에 주요한 사안은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전문경영인인 박정원 사장이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한진해운은 고 조수호 전회장시절부터 한진그룹과 항공/해운계열을 분리하고 독자적인 경영체제를 구축해왔다. 박정원 사장의 전문경영체제를 유지하면서 앞으로도 자율적인 책임경영이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공석인 회장직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한진해운측은 “당분간은 공석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부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고 전문경영체제가 안정적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고 조 전회장의 유족들이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한진해운측은 “최은영 여사가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두 딸 모두 나이가 어린 학생으로 경영수업에 돌입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조양호 회장 외 다른 형제들의 경영권 분쟁을 우려할 수도 있다. 과거 유산상속을 둘러싸고 한진家 형제들이 다투었던 전례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한진해운의 경영권분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르면, 계열 분리된 회사는 분리 이후 3년 내 원래 소속되었던 그룹의 계열사 주식을 투자목적 등의 이유로 추가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계열분리한 한진중공업의 경우 2008년 10월 이후에 한진해운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2005년 3월에 계열분리됐다. 계열사간의 임원겸임도 허용되지 않으며, 보유지분도 3~15%로 제한을 두고 있다.
한진해운 측은 이를 근거로 “한진중공업과 메리츠금융그룹은 한진해운의 주식자체를 취득할 수 없어, 항간에 떠도는 형제간의 경영권다툼에 관한 이야기는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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