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저승사자’ 이헌재 론스타 구설수


검찰이 지난 11월 30일 이헌재 전경제부총리를 소환했다. 그동안 이 전부총리는 론스타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서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지난 6월 야당의 한 의원은 이 전부총리를 ‘외환은행 주가조작 사건의 몸통’이라고 공개적으로 지목한 바도 있다. 따라서 론스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과연 검찰이 이 전부총리를 소환해 그의 개입여부를 수사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검찰의 소환이 이뤄졌으나 일각의 기대(?)와는 달리 단순히 참고인 자격이었다는 것이 검찰 측의 설명이다. 여전히 론스타의 주가조작 여부와 조직적인 개입의혹을 밝혀내지 못한 검찰이 과연 이번 소환으로 ‘론스타 게이트’를 어떤 방향으로 마무리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론스타-김앤장-정부관료, 접점은 이헌재(?)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이번 론스타 사건을 외국계펀드(론스타)와 국내컨설팅사(김앤장), 그리고 정부관료들의 삼각동맹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즉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 관련된 각종 법률자문들을 김앤장 측에서 했고, 김앤장으로 영입된 정부관료 출신들이 이 과정에서 로비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헌재 전부총리가 의혹을 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있다.
그는 김대중정부시절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은행감독원장, 증권감독원장 및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치면서 IMF이후 여러 부실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을 총지휘했다.
이후 이 전부총리는 재경부장관에서 물러나고 1년 3개월 후인 2001년 11월에 김앤장 법류사무소에 비상임고문으로 위촉됐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사들인 2003년에 고문으로 위촉됐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엘리스 쇼트(46) 론스타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45) 론스타 아시아지역 고문변호사의 변호까지도 담당했다.
열린우리당의 임종인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당시 론스타의 인수자격과 관련해 어떤 곳으로부터 법률검토를 받은 적이 없는 재경부와 금감위가 유독 론스타의 대리인인 김앤장에서 비공식적이자 ‘대외비’로 분류된 법률 검토를 받은 것은 사전공모가 명백하다”며 “김앤장 고문으로 있던 이 전부총리가 재경부와 금감위의 연결고리로서 로비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도 “김앤장은 론스타의 모든 행위를 대리했고, 심지어 정부에 외환은행 불법매각의 방법과 법률적 근거까지 비밀리에 검토해주었으며, 나아가 주가조작의 방법과 불법을 위장하는 방법까지 함께 작전계획을 수립한 범죄의 공모자이자 본체”라며 “법률 대리 역할을 한 김앤장에 대한 압수수색과 당시 고문인 이헌재를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드러난 몸통도 대부분 ‘이헌재 사단’
일각에서 이헌재 전경제부총리를 ‘론스타게이트’의 몸통으로 보는 까닭은 단순히 이 전부총리가 ‘김앤장’의 고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하나의 잘 짜여진 연극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주·조연급 상당수가 소위 ‘이헌재 사단’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3인은 모두 이 전부총리와 학연으로 맺어져 있다.
변양호 전재경부금융정책국장과 김석동 전금융감독위원회감독정책1국장(현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이 전부총리의 경기고 후배이다.
또한 이 전부총리가 재경부나 금감위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함께 일하기도 했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을 푸는데 핵심열쇠로 꼽히는 BIS(자기자본 비율)를 축소해 은행법상 인수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변 전국장은 김앤장이 금감위에 주식 초과보유 승인신청서를 넣은 바로 다음날 금감위에 공문을 보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구속기소된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현한국투자공사 사장)도 이씨의 중학교 후배이다. 이들 3명은 2003년 7월15일 외환은행을 론스타로 매각하기로 사실상 결정한 ‘10인 대책회의’에도 함께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강원 전행장이 외환은행장으로 임명되던 2002년 당시 외환은행장 후보추천위원장이었던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도 이 전부총리와 아시아개발은행에서 같이 근무했었다.
이번에 외환은행을 론스타에서 사들인 국민은행의 강정원 행장 역시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였던 수출입은행의 이영회 행장도 역시 이헌재 전부총리와 가까운 사이다. 이 전행장은 재경부 기획관리실장 출신으로 재경부 시절 이 부총리의 측근으로 활동했다는 평을 듣는다.

검찰 “이 전부총리는 참고인”
현재까지 검찰의 수사는 변양호 전 국장과 이강원 전행장 그리고 하종선 현대해상화재보험 대표 등 3인의 ‘개인비리’로 종결될 전망이다. 법원의 영장청구와 론스타 관계자들의 해외도피로 인해 론스타 쪽 수사가 힘들어진 마당에 김앤장 쪽으로 수사의 화살을 돌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 전부총리를 조사한 후 “의혹에 대한 조사는 마무리된 것 같다”며 “다시 소환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해 이 전부총리에 대해서는 세간의 의혹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졌음을 내비쳤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의심을 받아 온 이헌재 전부총리에게 검찰이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러나 검찰 입장에서도 더 이상 다른 관련자들의 수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헌재 전부총리를 소환했다해도 참고인 이상의 자격으로 부르기엔 무리가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검찰은 마지막 남아있던 수사 대상인 이 전부총리까지 조사를 마친 만큼 사건 마무리에 속도를 낼 계획인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수사 발표문 초안 작성에 착수했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