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 회장 3연속 비리구속 ‘진기록’

얼마 전 농협 여직원이 12억원을 횡령해 한 트럭 분량의 명품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180여만원의 급여를 받는 여직원의 간 큰 횡령사기사건. 그러나 농협 직원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달 18일 국가청렴위원회가 2002년 1월 이후 공공기관 566곳의 비위 면직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공직유관단체 중 농협이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순위를 보면 농협중앙회(72명), 중소기업은행(35명), 한국전력공사(25명) 국민건강보험공단(20명) 한국수자원공사(17명) 순이다. 사람 수만 따져도 농협은 2위인 중소기업을 더블스코어로 가볍게 따돌리고 치욕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전체 비위 면직자를 따져도 경찰청, 국세청, 경기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정원 대비로는 국세청 다음인 2위다. 뿐만 아니다. 농협회장의 3연속 구속도 역사상 유래 없는 일로 기록됐다. 하루가 멀다하고 횡령, 사기 사건이 터져 나와 곪아 버릴 대로 곪았다는 농협.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의 근거를 찾아보았다.


288조원의 자산, 6만명이 넘는 임직원. 초메머드급 조직인 농협이 패닉상태에 빠졌다. 지난 20일 정대근(63) 회장이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윤재윤)로부터 현대자동차에 3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징역 5년 및 추징금 13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농협은 88년 회장선출직으로 변경된 이후 94년 한호선 초대 회장, 99년 원철희 전 회장, 2007년 정대근 회장까지 역사상 유래 없이 3연속 회장의 구속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총체적 시스템 마비 현상 직면

뿐만 아니다. 얼마 전 농협중앙회 평창군 나모(26·여)씨의 12억 5000만원 횡령사건, 전남완도 농협지점장과 직원이 공모한 수억원대의‘쌀깡’사건, 경기도 화성의 농협직원 공금횡령사건, 보은농협 상임이사 등 임직원의 특산품 사기사건 등 올해 상반기에 일어난 각종 비위만 해도 모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이같은 농협의 잦은 비위에 대해 전근대적 시스템에서 야기된 문제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선출직인 회장의 막강한 권한과 독불장군식의 운영은 이미 오랫동안 지적돼 왔으며 중앙회장을 중심으로 치열한 물밑 알력다툼으로 조직의 분열도 발전을 저해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체질을 개선해야한다는 비난여론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농협의 한 관계자는“농협은 개혁을 요구하는 파와 기존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곳의 파벌 싸움이 큰 장애물이다”며“수뇌부는 파벌싸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직원들은 횡령을 일삼고 있어 이를 통제하고 단속할 만한 시스템을 갖춰야한다”고 말했다.

농협의 문제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농협을 중앙회와 신용·경제부문 등 3개의 독립법인으로 분리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기간은 10년. 필요한 자본금은 신용 9조 7000억원, 경제 4조 6000억원, 중앙회 3조 2000억원 등 총 17조 500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농협의 자본금은 9조 3000억원으로 필
요한 자금은 8조 2000억원이다. 이에 농협의 과거 실적 기준으로 매년 8250억원의 자본금 축적이 가능해 기한이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와 신용부문의 분리 배경은 열악한 경제여건에 처한 농민들에게 농산물 가격을 유리하게 이끌어 농가경제의 도움이 되고자 한 바람이었
다. 이와 더불어 농협은 고품질 농축산물을 팔아줄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신성장 동력사업을 적극 발굴, 경제사업의 자립 경영기반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신용·경제 분리는 농민 위한 것인가?

그러나 막대한 비용과 시간, 어려움으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림부 안은 도중에 재원이 모자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일단 분리된 금융기관이 자금 이전을 하려면 두 조직 간 각각의 의사결정과 계약행위 등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독립된 기관들의 수익과 지원에 어려운 장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지난 1961년 8월 분리됐던 농업은행과 농협중앙회의 통합. 농업은행에서 얻어지는 자금과 수익을 농협중앙회로 하여금 농촌경제 발전에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농협은 분리를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분리와 통합, 통합과 분리의 농협.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리의 온상이라는 독버섯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다.


#박석휘 회장대행은 누구?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 매각과 관련, 수뢰혐의로 지난 20일 법정구속됨에 따라 농협측은 이사회를 열어 박석휘(63) 전무이사 대행체제로 전환했다. 박 전무는 유통경제와 기획관리부문을 거치면서 농협사업 전반에 관한 폭넓은 식견을 쌓아 농산물 유통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으로 평가됐다. 또 경북지역본부장 시절에 대구 성서 하나로클럽 등을 성공적으로 개장했다.

합리적이면서도 뛰어난 직관력에 과감한 추진력을 겸비했으며 대외활동도 활발하다는 평이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막힘없는 토론을 즐기며 특히 부하직원들과 격의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상사로 평가받고 있다.

경북 대구 출신으로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감사부속실 검사, 달성군 지부장 대구, 경북지역본부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6월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로 임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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