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에 담합 인정한 죄

최근 손해보험회사 사장과 손해보험협회장에게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고위 간부로부터 때 아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들 간 통화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동부화재가 담합혐의를 인정하긴 했지만 대놓고 ‘왕따’를 시키진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동부화재는 이번 담합과 관련해 삼성화재(119억원) 다음으로 많은 과징금(109억원)을 부과 받자 가장 먼저 손해보험사간 담합 사실에 대해 털어놨다. 1순위 자진신고자는 과징금 100%를 면제해주는 당근책이 힘을 발휘한 것. 이에 격분한 다른 손보사들은 “동부화재가 참석하는 회의는 나가지 않겠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실제로 최근 열린 손보사 사장단 골프회동도 이로 인해 없던 일이 됐다. ‘왕따 놀이’가 한창인 손보업계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봤다.


손해보험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보험료 담합에 따른 과징금 부과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다.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이 보험료 담합조사 때 자진 신고한 것에 대해 공식사과했지만 다른 손보사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김 사장은 지난 6월 27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업계 발전과 회사를 위해 불가피했다”면서 “동부화재는 윤리경영을 표방하고 있는데 윤리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잘못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준법감사인과 협의해 상품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므로 정상을 참작해 과징금을 탕감해 달라고 했다”면서 “손해보험업계에는 미안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 사장은 “공정위가 제시한 자료에 담합 정황과 증거가 명확하게 나타나 더 이상 부인하기가 어려웠다”고 호소했다.


담합, 과징금 그리고 배신

이러한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의 공식사과에도 불구, 손보업계는 ‘궤변’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오히려 김 사장의 “업계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발언만이 계속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순환 사장의 공개사과에 대해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업계가 공동으로 공정위를 설득하려 했지만 동부화재가 이를 어렵게 해놓고 ‘업계를 위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자기 회사만을 위한 행동을 해 놓고 합리화시키기 위한 말을 하고 있다”고 꼬집어 비판했다.

나머지 손보사들은 줄곧 “담합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으나 동부화재가 미리 ‘백기’를 드는 바람에 싸움도 걸어보지 못한 채 스스로 죄를 인정한 꼴이 된 것.

또 다른 손해보험사 관계자 는 “이번 건의 경우 손보사 입장에서 담합으로 인정하고 넘어가기에는 억울한 면이 있다”면서 “그런데 특정 회사가 모든 사실을 시인하고 공정위에 협조했다는 것은 상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언짢은 기분을 그대로 표출했다.

특히 한 손해보험사 임원은 사석에서 “(동부화재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업계가 한자리에 모여 공정위 조사에 대한 법률적 대응책을 논의한 회의 내용까지 조목조목 보고한 것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이유에서다.


‘왕따’된 동부화재 사장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과징금을 감면받은 동부화재와 과징금을 있는 그대로 물게 된 손보사들 간의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손보업계는 공정위 담합조사 결과 후 현재까지 사장단 모임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급기야 6월 중순, 코리안리 초청으로 이뤄진 손해보험사 CEO 골프모임에서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과 권처신 한화손해보험 사장이 참석기로 하자,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등 업계 1·2위 사장들이 여러 가지 사정을 대고 불참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업계에 따르면 안공혁 손해보험협회장 또한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 7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보험총회(JIS)에 참석하는 과정에서도 상당수 손보업계 사장들이 동부화재 김순환 사장이 참석한다는 이유로 불참을 고려할 정도였다.

이와 관련, 동부화재는 “그것 말고도 여러 건이 더 있다”고 한숨을 내쉬며, 업계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왕따설’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했다.

하지만 김순환 사장이 직접 자리를 마련해 공개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시각이 아직 냉정한 것에 대해선 “사과를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던 것은
아니었다”며 “중국 현지 법인을 설립하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장에서 겸사겸사 말했던 것”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당초 동부화재는 109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진 신고로 인해 과징금을 100% 면제받았다. 이어 2·3순위로 신고한 한화손해보험(16억원)과 대한화재(8억원) 또한 각각 30~50%의 과징금이 감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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