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보호하라’. 노무현 대통령이 정국현안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여권에서 잇따라 강경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해찬 국무총리와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야권과 보수언론 공격의 선두에 나섰다. 한나라당 김덕룡 대표가 “노 대통령이 직접 밝히라”고 촉구한 뒤 이어지고 있는 여권의 강경발언 배경을 짚어봤다. “조선·동아는 더 이상 까불지 말라.”유럽순방을 마치고 20일 귀국한 이해찬 국무총리가 유럽순방도중 발언이 미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 동안 참여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온 조선·동아 두 보수신문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총리는 지난 18일 베를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자리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역사의 반역자”라며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은 용서해도 조선-동아일보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며 비판했다. 심지어 이 총리는 측근의 만류에도 불구, “조선·동아는 정권을 농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노무현 대통령이나 나나 끝까지 철저하게 싸울 것”이라며 “노 대통령은 절대로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다. 나는 절대로 조선·동아와는 인터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까지 밝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취중망언”이라며 “술 깨서 귀국하라”고 비난하자 이 총리는 한 술 더 떠 “한나라당 나쁜 것은 세상이 다 안다”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같은 이 총리의 공세배경을 놓고 정치권은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4대개혁입법을 놓고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4대 개혁입법안 중 언론개혁법안이 상정돼 있는 상황에서 그 동안 지면을 통해 노골적으로 비판어조를 보여온 두 신문에 대해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이 총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도 이 총리를 지원사격하고 나섰다. 동아일보 해직기자출신인 이부영 의장이 “조선·동아는 역사 앞에 사과하라”며 두 신문 공격에 가세한 것. 이 의장은 확대간부회의에서 “조선·동아의 시대착오적 여론 호도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분단 냉전시대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몸부림이 아니지 않나 싶고 다시 퇴행적인 기득권시대로 되돌리려는 작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또 “조선·동아는 해직언론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들 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이제라도 조선·동아의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국민들에게 용서받는 길이며 그런 것은 사과 안하고 마치 대한민국이 자기 것인양 오만불손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시대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조선·동아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도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8일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에 기고를 통해 “신문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며 “정부가 잘못한 것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언론이)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언론을 비판했다. 사실상 당·정·청이 두 신문과 전면전에 나선 셈이다. 야권은 ‘언론길들이기’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이 총리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만 참여정부 지지층의 재결집효과를 노린 것이란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여당의 언론법안 제출, 이 총리 발언, 이 의장 발언이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것은 정부여당의 계획된 대언론전략”이라며 “내부분란을 수습하고 지지층 결집을 유도해 그 힘으로 비판언론을 탄압하려는 정치적 책략”이라고 비난했다.여권 한 관계자도 지지층 결집효과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 등 분산됐던 지지층을 보수 언론과의 전쟁을 통해 다시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친노성향의 사이트에는 이 총리를 대권주자로 까지 거론하며 다른 대권주자들도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보수언론과의 싸움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글들이 게재되고 있다. 이 총리와 이 의장이 충성경쟁에 나선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조용히 있으니까 총리와 의장이 그 역할을 이어받아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마치 내가 더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유치한 행동 같다”고 비꼬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이 총리의 발언은 사실 노 대통령에 대한 ‘충성’에서 나온 측면이 강하다”며 “대통령이 외롭게 펼쳐온 두 신문과의 전쟁에 이 총리가 특유의 직설화법을 통해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왜곡보도 근거대라” 당사자 조선·동아 발끈

이해찬 총리의 발언에 당사자로 지목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발끈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지난 21일 지면을 통해 ‘이 총리에게 묻는다’는 제목의 공개질의서를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이해찬 국무총리는 유럽을 순방 중이던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동아일보의 전통과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발언을 했다”며 “동아일보 84년 역사에 권력자를 비롯해 그 어느 특정인에게서도 이런 폭언(暴言)을 들은 적이 없다. 이 총리가 무슨 근거로 이런 발언을 했으며, 그것이 총리 개인의 생각인지, 노무현 정권의 공식 입장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공개질의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공개질의서는 “시대에 뒤떨어졌고, 냉전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정부가 망하는 관점에서 기사를 쓴다”, “왜곡된 보도를 한다”는 이 총리의 발언 근거를 물었다. 또 “집권 저지 전략이 무엇이며 누가 이를 세웠는지”, “이 총리의 손아귀에서 논다는 것은 무엇인지”, “동아일보가 권력임을 자임하고 나라를 흔든 구체적인 예가 무엇인지 말하라”고 요구했다.조선일보도 20일 사설을 통해 비판했다. ‘“조선, 동아 까불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 총리의 발언은 아무리 취중이라 해도 정말 브레이크 없이 막 흘러갔다”며 “이 총리의 조선-동아를 향한 적개심은 이 총리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를 포함한 정권 전체의 정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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