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와 소장파들의 갈등이 심상치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당의 4대입법안 협상과정에서 터진 박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의 갈등이 소장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박 대표가 영남강경파 의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소장파들이 하나, 둘 박 대표 주변에서 멀어졌고 이제는 회복하기 힘든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최대지원세력에서 비토그룹으로 뒤바뀐 막후를 들여다봤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 등 이른바 수요모임이 중심이 된 한나라당내 소장파들은 박근혜 대표 등장과 함께 당의 전면에 배치됐다. 특히 이전 두 차례 전당대회에서 박 대표를 밀며 최대 지원세력으로 자리를 굳혔다. 게다가 소장파의 리더격인 원희룡 의원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남 의원은 수석부대표를 맡았다.

협력관계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차기를 노렸던 박 대표는 당권을 쥐어 정국운영의 리더십을 키우고 대권주자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최병렬 전대표 퇴진이후 당의 쇄신을 요구했던 소장파 역시 박 대표를 내세워 당의 내부 개혁을 추진한다는 복안이었다. 순조롭던 양측의 관계는 신행정수도건설법, 과거사법 등을 둘러싼 당내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박 대표가 당내 강경세력과 소장파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스탠스를 취하자 내부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여권이 추진한 4대 입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이 컸다. 소장파와 국발연 등의 입장에 동의하며 비교적 유연한 스탠스를 취했던 김덕룡 원내대표에 대해 박 대표가 다소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렸고 강경보수파도 박 대표의 입장에 동의했다.

강경보수파는 또 여권과 타협점을 찾기 위해 협상에 나섰던 김 원내대표에 대해 책임론을 제기하며 사퇴압력을 넣었다.이에 대해 소장파는 강경보수파가 박 대표를 등에 없고 김 원내대표를 공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책임소재를 굳이 따진다면 박 대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바라본다. 박 대표의 강경한 입장도 여야간 협상이 틀어지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는 시각이다. 소장파 한 의원은 “꽉 막힌 정국해법을 풀기위해 노력했던 김 원내대표에게 책임론이 가해지는 것은 모순”이라며 “오히려 박 대표의 강경드라이브가 여야간 대립과 반목을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갈등은 박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장파 내부에선 “박 대표의 최근 행보는 과거 제왕적 총재시절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박 대표가 당 쇄신작업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당명개정에 대해 내부 개혁없이 이름만 바뀌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당수가 바뀔 때마다 했던 당명개정을 그렇게 서두르는 것은 사당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대권에 대한 생각에 너무 몰두하는 게 아니냐”고 강경한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박근혜·보수파 VS 김덕룡·소장파로 갈등구도가 생기면서 양측의 관계가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당내 시각이다. 당내 한 관계자는 “소장파들이 박 대표의 온건 이미지와 유연한 입장에 동의해 당의 얼굴을 내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최근 실망하는 분위기”라며 “박 대표가 결정적일 때 소장파의 입장보다 강경파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아 양측의 거리감이 상당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같은 분위기속에 소장파들의 움직임이 주목을 끈다.

당내 소장파와 중도파 일부의원들이 오는 22일 워싱턴 회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동에는 원희룡 최고위원과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해 정병국 의원 등 당내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 소속 의원 대다수와 권오을, 박진, 임태희 의원 등 중도성향 의원들이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회동이후 당내 문제와 관련한 입장발표까지 고려하고 있어 자칫 커다란 폭풍을 몰고 올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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