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월중 중대조치 발표를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돼 우리 정보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실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한·미 정보망이 총동원돼 북한 고위인사들의 동향과 관련한 정보수집을 벌이고 있고, 도·감청이 가능한 주한미군의 첩보부대가 평양쪽으로 향하는 채널을 모두 가동해 북한 권력 핵심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고위 정보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북한의 중대발표는 오는 2월2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3회 생일에 맞춰 기획되고 있다. 지난해 7월 김일성 사망 10주기를 지나면서 명실상부하게 북한 최고권력자로 자리매김한 김 위원장의 권위를 과시하고 생일을 축하분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점을 택했을 것이란 관측이다.특히 올해는 북한 노동당이 창건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또 광복 60주년과 함께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북한은 각별한 무게를 두고 있다.

북한은 5년과 10년 주기의 연도를 이른바 ‘꺾어지는 해’라고 부르며 성대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중대발표의 내용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 다양한 전망이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경제문제와 관련한 중대조치를 발표하거나 남북관계 혹은 북핵문제와 관련한 사안일 것이란 추정도 있다.그러나 현재까지의 정보로는 김 위원장의 후계체제 문제와 관련한 조치가 나올 것이란 얘기들이 지배적이다. 이미 환갑을 넘긴 김 위원장이 자신의 후계구도를 확정짓는 시점으로 올해 자신의 생일을 잡았다는 점에서다.사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난해부터 서방 정보기관과 북한정보통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됐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부인 고영희의 사망이다. 고영희를 둘러싼 신변 이상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해 4월말. 일본 언론이 고영희가 프랑스에서 신병치료를 하기 위해 머물고 있다고 보도하면서부터다.

여기에 ‘프랑스제 고급관이 북한으로 반입됐다’는 설과 함께 ‘8월13일 숨졌다’는 비교적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베이징 외교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사망여부가 관심거리가 됐다.정보당국자들의 비공식 언급을 종합하면 사망시기는 지난해 6월께. 신병 치료차 파리에 머물던 고영희가 숨지자 북한은 고려항공 특별기 편으로 시신을 평양으로 운구했다. 그러나 철저하게 보안에 붙여져 최고급 관의 반입이 고영희의 신상변화와 관련 있을지 모른다는 설 수준에서 한동안 그쳤다.북한은 당시 고영희의 장례식을 가족과 핵심 권력층만 참석한 가운데 극비리에 치렀다는 게 우리 정보기관의 파악이다. 당국자는 “북측은 고씨 사망이 이른바 최고지도부(김정일 위원장)와 관련된 사안이란 점에서 함구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북한이 고영희의 사망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건 나름대로의 사정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김 위원장의 공식활동을 보도하면서 부인의 동행사실을 보도한 적이 한번도 없다.

또 김 위원장의 부인과 자녀 등 가족사항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김 위원장은 외국방문이나 방북한 외국 정상과 만날 때 한번도 부인과 동행하지 않았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전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김 위원장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이런 고영희의 사망이 관심을 끈 것은 그의 죽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고영희의 두 아들 정철(23)·정운(21)이 후계자로 부상한다고 주장해왔다. 김 위원장과 성혜림(2002년 사망)사이에 태어난 아들 정남(33)이 가짜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다 국제적 망신을 사는 등 눈밖에 났다는 것. 우리 정부기관의 고위 관계자도 “이제 장남 정남이 권력세습에서 멀어졌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니냐”며 정철 쪽으로 후계구도가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 군 내부에서 고씨를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내세우는 우상화 작업이 진행중이라는 첩보도 한 근거가 됐다.일각에서는 고영희가 지난해 유선암이 재발해 건강이 악화된 것을 계기로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이 심화됐다는 설도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고영희는 1980년대 아들을 잇따라 낳고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을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해 김 위원장의 측근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데 전력을 다했다는 것.군 수뇌부를 형성하고 있는 조명록 군 정치국장, 김영춘 군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과 당내 실권을 행사하는 이제강·이용철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대부분이 고씨의 측근들이란 분석이다.

이들은 고영희의 아들이 성장함에 따라 후계작업을 위해 1990년대 말부터 군부대를 중심으로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여러 차례 추진했으나 그 때마다 김 위원장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중단됐다는 설도 있다. 특히 고영희측 세력은 고씨의 병이 악화되자 아들의 권력승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장성택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김정일의 권력을 노리는 인물’로 몰아 사실상 `근신처벌’ 상황을 이끌어냈으며 그의 측근들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이란 얘기다.고씨 세력이 장성택 제1부부장을 견제한 것은 그가 권력내 2인자였고 김 위원장의 여동생으로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의 사이도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란 게 이런 설의 배경이다.

김위원장의 여인들 고영희·성혜림 외 둘 더 있다

김 위원장에게는 고영희 외에도 모스크바에서 사망한 성혜림과 김영숙ㆍ 홍일천 등 여러 여자가 있었다. 김 위원장의 여자관계는 성혜림의 조카 고 이한영씨,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김 위원장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 씨 등 가까이서 생활했던 인물이나 고위층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서만 단편적으로 알려져 왔다. 김 위원장이 여러 여자 중 실제로 누구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근 북한 군부가 고영희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해 군인들을 대상으로 고씨를 ‘존경하는 어머님’ 등으로 우상화하는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부인의 실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소수 권력층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70년대 중반 이후 김 위원장과 함께 살아온 실제적인 퍼스트 레이디인 고영희지만 선뜻 공개하기 어려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고영희는 김정일 위원장과 사실상 부부관계를 맺어온 성혜림ㆍ김영숙과 달리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왔다. 일본에서 태어난 고영희는 제주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60년대 초 북송선을 타고 평양에 갔다.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약하던 70년대 중반 김 위원장의 눈에 들어 줄곧 함께 살았다.김 위원장과 사이에 두 아들과 딸 여정(17)을 뒀으며 고영희의 여동생 영숙은 90년대 말 서방으로 망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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