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 일본

이웃 일본에 닥친 참변과 관련 소식이 연일 뉴스의 머리기사로 올라오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엄청난 참상과 원전폭발로 인한 사회혼란 등의 기사가 폐허로 변해버린 참혹한 도시를 배경으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본 관련 소식 중 특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은 바로 뒷수습과 관련된 뉴스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은 손꼽히는 경제대국이다. ‘잃어버린 10년’으로 통칭되는 심각한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일본은 여전히 막대한 해외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산업생산성과 보유 특허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지표를 자랑한다. 하지만 선진국 일본과 그 일본을 견인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이번 사태로 인한 혼란과 어려움에 대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대단히 위태롭고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일본의 각급 정부기관에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등 지구촌 곳곳으로부터 온갖 구호품이 현지에 도착하고 있다. 또한 이재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매뉴얼에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통솔과 정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 모든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그 결과 구호물품은 정부창고에 쌓여만 가는데 정작 이 구호품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재민은 추위에 떨며 애를 태우고 있다. 사고지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야쿠자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탄식도 들려온다는 보도이다.

경제대국 일본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의 국가운영 시스템 문제를 지적한다. 과거 200년 동안 일본을 끌어왔던 시스템은 한 곳으로 개발역량을 집중하는 시대에는 적합했으나 다원화된 현 시대에는 맞지 않아 오히려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심지어 신흥경제국(BRICs)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일본이 세계 최초로 ‘신흥쇠락국(New Declining Country)이 될지도 모른다는 음울한 전망도 나오는 형편이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일본 사회의 양극화를 그 원인 중 하나로 추가하고 싶다. 과거 일본은 ‘1억 총중류 사회’를 자랑했다.

사회를 견고하게 지지하는 중산층이 전 인구 중 70%인 1억 명이라는 이야기인데, 최근 조사에 의하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46%에 불과했고 줄어든 비율만큼 일본 사회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일본 대학생 중 65%가 ‘일본에는 희망이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에는 사뭇 절망적인 느낌까지 든다.

더불어 정치의 후진성 또한 일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 위에서 정치권력은 오랫동안 개혁을 미뤄 온 나머지 일본 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인 영역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는 국가 리더십 부재로 이어져 모든 영역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타인의 엄청난 비극을 앞에 두고 그 비극이 내게 닥친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안도한다면 대단한 실례겠지만, 우리는 이웃 일본이 대면한 비극을 교훈삼아 지금부터라도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우리 역시 머지않아 인구 고령화로 인한 활력저하, 국가의 조타수 격인 정치의 후진성, 부실한 사회안전망 하에서 점차 격심해지는 양극화, 심각한 청년실업 등 일본과 흡사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현재가 우리의 끔찍한 데자뷰가 되지 않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일찍이 안중근 의사는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 사람이 멀리까지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곧 근심이 생긴다)라고 했다.

이는 모든 국민이 힘과 지혜를 모아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대비를 서두른다면 진정한 선진국 대열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HMC투자증권 양산지점 성두기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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