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의 잦은 갈아타기, 자산운용사의 단기성과 ‘악순환’ 초래

30여 년 전 베스트셀러 중 독일의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의 모모라는 소설이 있었다. 우화 혹은 판타지 형식의 작품으로 시간의 귀중함을 일깨워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 전에 읽었던 작품이라 세세한 내용은 기억에 없지만 카시오페이아라는 이름의 거북이만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아마도 30분 앞에 일어날 일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그 거북이의 특별한 능력(?)이 부러웠기에 기억에 오래 남는듯 하다. 당시 그 작품을 읽으며, 내게도 30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황홀한 상상을 해보곤 했기 때문이다.

연고점을 경신하며 승승장구하던 대한민국 증시는 5월초부터 한 달이 넘도록 횡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객장을 찾은 고객들의 얼굴에는 사뭇 답답한 표정으로 앞으로의 장세에 대하여 의견을 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카시오페이아가 되어 혼란스러워 하는 고객들에게 확고하고 명쾌한 답변을 제시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뭔가 찜찜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답답한 순간에는 앞서 간 이들의 자취를 쫓아보는 것도 현재 우리의 좌표를 재점검하고 나아갈 바를 가늠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미래를 명확하게 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나온 과거 속에서 미래의 단초를 추출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미국은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였고 이에 따라 증시 역시 그 볼륨을 키워가고 있었다. 헨리 포드에 의해 만들어진 대량생산시스템이 많은 산업에 적용되며 괄목할만한 생산성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생산품을 구매해 줄 중산층이 두텁지 않아 결국 과잉생산, 대규모 재고로 이어진 후 마침내 그 유명한 대공황을 야기하게 되었다.

이후 미국의 정부, 기업, 사회는 서로의 임무를 적절히 조정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고 이 조치는 꽤 성공을 거두어 중산층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이 격변기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거의 모든 산업분야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기업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고 중산층의 임금은 더욱 상승되어 마침내 잉여자금을 축적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미국 기업은 국내를 벗어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야를 확대하게 되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대규모의 시설과 대대적인 자본을 필요로 하였다. 이제까지 자본조달은 대주주 등의 차입에 의존했으나 그때부터 자본은 증시를 중심으로 이어졌고 보다 큰 수익을 쫓아 중산층의 잉여자산이 증시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또한 각종 연기금의 주식투자 한도가 확대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뮤추얼펀드며 투자운용사가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바야흐로 미국 증시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비한 상태가 되었으며 이후 2000년까지 30년 동안 미국증시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됨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증시를 미국의 증시에 대입해볼 때 현재 대한민국 증시를 둘러 싼 투자여건은 1970년대의 미국과 대단히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조선, 화학, 정유, 자동차 등 거대한 장치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이유로 적절한 보호를 받고 있고 확대된 중산층의 잉여자금은 각종 펀드로 몰려가고 있다. 연기금은 증시에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를 더욱 더 확대할 태세이며 법인, 학교 등의 잉여자금도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증시로 몰려들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증시에 대한 희망적인 장기 전망이 가능하다. 물론 30분 앞을 예측 못할 정도로 유동적인 증시는 때때로 희망이 실망으로 바뀔 수도 있고 지루한 조정도 거칠 것이고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으로 위축될 수도 있으며 급격한 남북 관계로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역시 그저 여러 번의 조정 중 하나에 그칠 것이며 지수는 미국이 그러했듯 우상향할 것이다.


정효철 HMC투자증권 광주지점 부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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