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척도다”

주말만 되면 장이 요동치던 격동의 8월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9월이 시작됐다. 지난 8월의 시장 판도를 놓고서 각 증권사와 투자사들은 저마다 분석에 여념이 없다. 베어마켓(시장 하락세) 국면이라는 비관적인 분석이 있는가 하면 조정 중이라는 분석이 호각을 이루며 대치하는 형국이다. 주식시장과 별 관련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별반 중요한 사항이 아닌것처럼 보이겠지만 투자자들에게 이것은 향후 주가의 향배 혹은 모멘텀과 관련하여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와중에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정리 없이 개별 전투를 수행할 수 없듯이 전체 시장에 대한 이해와 정리는 투자의 선행조건이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하락국면에서의 투자와 조정시장에서의 그것은 전술, 종목선정, 포트폴리오, 포지셔닝 등 투자행위를 구성하는 모든 행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증시를 둘러 싼 주요 변수 중 하나로 유동성을 꼽을 수 있는데 유동성이란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유통되고 있는 화폐의 양을 말한다. 어느 나라든 중앙은행은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발권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발권력에 기초하여 인플레이션 억제나 물가조절을 위한 금리 혹은 통화정책을 수행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바로 특수은행으로서 이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이 유동성으로 인하여 실물시장에서는 물가에 대한 압력이 발생하고 투자시장에서는 변동성이 극심해진다.

대한민국은 1996년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OECD 가입과 IMF 사태를 거치면서 금융시장이 사실상 개방되었고,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장 환경은 대한민국 투자시장을 둘러 싼 유동성이 국제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현재 대한민국 투자시장에 공급된 유동성 중 대략 30% 이상은 외국으로부터 공급된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심하게 어지러웠던 지난달의 장세도 따지고 보면 그 방아쇠를 당긴 것은 외국인의 움직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국발 유동성의 급격한 유출 때문이었다. 마치 도미노 게임처럼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약화된 경제실적, 중국의 긴축정책 등이 외국발 유동성의 국내시장 유출을 불러왔고 이에 놀란 개인투자자들이 덩달아 매도에 나서면서 증시는 상당 폭으로 출렁거렸다. 새로운 달이 시작된 지난주 증시는 고점대비 15% 이상 빠진 상태에서 나름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주었는데 이를 추동하는 것 역시 외국인들의 매수세로 분석된다.

증시에서는 흔히 수급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급이란 바로 수요와 공급을 말하는데 이 수급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유동성이다. 이 유동성의 크기는 펀더멘털과 재료 그리고 불가해한 투자자들의 심리상태 등 대략 500여 가지의 변수에 의하여 결정되며, 설령 유동성의 크기가 결정되었더라도 그 유동성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복잡하고 난해한 여러 이유 때문에 주식투자는 실로 어려운 게임이고, 역사 이래 최고의 천재로 알려진 아이작 뉴턴도 주식투자에서는 쓴 맛을 본 것이며, 주식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의 섬세하고 명징한 통찰력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김헌률 HMC투자증권 분당지점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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