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마켓 펀더멘털 견조, 희망 보인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전에 세계경제를 추동한 것은 다름 아닌 레버러지에 근거한 과도한 소비였다. 늘어난 수입만큼 소비가 증가했다면 무척 바람직한 상황이었겠지만 불행스럽게도 소비증가의 원인이 다름 아닌 부채에 의한 것이었고 그 불건전한 과소비가 초래한 거품이 터진 결과가 바로 금융위기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부채가 촉발한 위기는 그 부채가 모두 사라져야만 해결이 되는 것인데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본원인인 부채는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당시와 다른 것이 있다면 부채의 총량이 감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부채의 주체가 가계로부터 정부로 옮겨지고 있고 우리는 그 파국적인 결과를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위험천만의 상황은 유로존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 등 전세계 주요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 상태이다.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는 그나마 각국 정부의 유동성 공급으로 잘 견뎌왔다고 할 수 있다. 유동성 공급에 의해 심각한 경기후퇴를 저지하는 동안 펀더멘털이 충실해지고 충실해진 펀더멘털에 의해 부채가 축소되는 식의 소프트랜딩을 기대했지만 각국의 경제실상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으며, 그 실망감이 고스란히 현재의 증시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 소버린 리스크니 양적 완화니 복잡한 용어를 사용하여 변명하고 있는데 이를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간 빚내서 흥청거리다가 이윽고 계산해야 할 순간에 다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빚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첫째, 일을 열심히 해서 수입을 더 올리거나 둘째, 돈을 아껴 쓰는 것이다. 경제규모를 키워서 채무상환 능력을 키우려 하지만 현재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이 1.8%에 불과하므로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다. 남은 방법은 돈을 아껴쓰는 긴축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인데 문제는 유로존의 정부 지출 중 복지 분야의 지출이 대략 50%에 이르기 때문에 정부의 긴축정책은 곧장 국민의 극심한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불길은 유로존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번져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경우 기축통화국의 이점을 백분 활용하여 막대한 달러를 공급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하고 있다. 달러의 대량 공급에 따른 달러화 가치의 하락에 대한 전 세계적인 저항도 애써 무시하며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주택가격의 지속적인 하락과 고용증가율 0%에서 보듯 실물경제는 기대만큼의 회복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전 세계 투자자들의 우려만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10년’ 이후 계속 이어진 장기침체에서 도무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모범생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은 전 세계 경제학자들의 연구주제가 될 정도로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여기에 덧붙여 원자력발전소 사태, 대규모 쓰나미, 사상 최악의 지진, 초유의 태풍 등 갖가지 재해로 인하여 국가적 활력은 더욱 훼손되고 있는 형편으로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중국이 조금 나은 형편인데 중국의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빈부격차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대략 7%에 육박하고 있지만 실제 국민들의 체감 물가는 훨씬 더 크다는 보도이다. 통계로 말하자면 중국의 경우 당국책임자조차도 자신들이 내놓은 통계를 믿지 못할 정도로 그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경제가 7% 성장했는데 전기사용량은 오히려 2.2% 감소했다는 발표나 31개 지방정부의 GDP가 대부분 10% 이상인데 정작 중국 전체의 성장률은 10%를 밑돈다는 통계발표는 차라리 희극이다. 어쨌든 중국 역시 과도한 인플레이션과 이로 인한 빈부격차 확대 때문에 긴축을 해야 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연평균성장률 8%를 무조건 달성해야만 하는 숙명으로 인하여 경제 활력을 훼손할 정도로 적극적인 긴축정책을 펼 수는 없는 형편이다. 중국은 매년 8%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해야만 하는데 이 성장률은 새로이 도시로 이농하는 2000만 명의 농민일자리 창출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된다. 참고로 북경대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중국의 소득에 따른 인구구조는 역T자 모양으로 아프리카 빈민 수준의 인구가 대략 10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금융위기 속 부채 속도 증가가 ‘큰 문제’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한나라당의 경제통인 이한구 의원에 따르면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공기업을 포함한 정부의 실질적인 부채는 1638조 원에 달하며 그 증가속도 역시 대단히 빠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향후 급속한 노령화에 따라 복지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이에 따라 국가 재정 역시 급속히 증가하리라는 전망이다. 가계부문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부문의 금융부채는 이미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매년 급증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부채의 증가와 이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이자비용의 발생은 결국 가계의 가처분소득 하락으로 이어져 내수경기 위축의 기폭제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시장을 둘러 싼 국내외 거시적 경제상황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상과 같다. 증시는 미래경제를 앞서서 반영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증시는 하루에 3% 이상 오르내리는 극심한 변동성으로 요동치고 있으며, 이러한 변동성은 투자자들의 심리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시장이 이처럼 거의 패닉 수준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다음 카드를 확정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듯 이제까지 시장을 견인한 것은 펀더멘털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었다. 막대한 국가재정을 투입하고 통화를 공급하는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으로 위기에 처한 경제에 대응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두 정책의 효력이 더 이상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이다. 금리는 거의 제로수준이니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도 없고 양적완화 정책 또한 공식적으로 종결된 상황이다. 또한 미국 정부는 부채상한을 늘리느라 더 이상은 마음대로 재정정책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쏘아 올렸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에서 더 이상 사용할 카드가 없음을 내보인 것이다. 경기가 미처 살아나지 못한 상태에서 재정 및 금융정책을 사용하지 못할 경우 시장은 철저하게 펀더멘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바로 향후 세계경제와 우리 증시의 방향을 가늠할 핵심적인 포인트를 짚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펀더멘털, 그 중에서도 특히 이머징 마켓의 펀더멘털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로존 그리고 일본의 펀더멘털이 훼손되었다 해도 이머징 마켓의 펀더멘털이 견조하다면 세계경제는 어느 정도 희망을 걸어볼만하다고 할 수 있다.


김헌률 HMC투자증권 분당지점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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