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

과도한 국가부채에 시달리다가 IMF의 구제 금융으로 얼마간 숨을 돌린 그리스가 다시금 디폴트(국가부도)로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자해지의 당사자인 유로존은 물론이고 세계 금융시장과 투자시장이 8월부터 9월까지 극심한 변동성에 내몰리며 혼란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결국 글로벌 수준의 레버러지인데 이 레버러지가 가능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는 과거의 통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현대 화폐의 추상성에 있다는 생각이다.

자본주의, 특히 화폐의 역사에 한정하여 살펴보면, 현대의 통화제도는 브레튼우즈 협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날로 확대되는 국제적인 무역과 거래의 필요성에 의하여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본위제를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달러화는 금 1온스 당 35불로 고정시키며 각국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시키는 것으로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선진국들은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기축통화국인 미국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이에 불안을 느낀 영국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국채 30억 불을 금으로 교환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 때 닉슨 미국대통령은 이를 냉정하게 거절하게 되며 세계 각국은 미국의 금 보유량이 발행된 달러보다 반 이상이 적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후 아랍산유국은 신뢰가 떨어진 미국 달러에 대항하여 석유금수 조치를 취하게 됨으로써 1차 세계오일쇼크가 발생하게 되며 동시에 주요선진국은 자신의 환율을 유동화시킴으로써 이제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국제통화제도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 즉 이제까지 통화는 보유한 금만큼만 발행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제부터는 각국의 형편에 따라 금 보유량과 관계없이 중앙은행 마음대로 찍어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금본위제가 폐지된 것이다.

이렇듯 현재의 화폐는 실물을 반영하지 않은 추상화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더군다나 IT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지폐나 수표 등 최소한의 형태마저 벗어버리고 이제는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전자부호로서 존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 전자부호로서의 화폐 그리고 추상화된 화폐가 전산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산 거품을 일으키기도 하고 원자재 가격을 급등시키기도 하며 가뜩이나 기준이 없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주식시장을 포함한 투자시장과 원자재시장, 각종 선물시장 등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어쩌면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환율과 외환, 통화에 대한 엄정한 룰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로존을 위시한 미국과 영국, 일본 그리고 중국 등 스스로 미래의 패권국이 되고자 욕망하는 강대국들은 향후의 질서 정립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하여 현재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진단이 타당하다면 현재의 글로벌 금융환경을 둘러싼 아노미적 상태는 새로운 질서가 확립될 때까지 당분간 지속될지도 모르며 바로 이 부분에서 주식시장의 리스크가 확대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를 진원지로 하여 유로존에 밀어닥친 쓰나미를 빌미로 미국은 유로존에 항복을 권유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로존 중심 국가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통하여 유동성 공급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중국 등 달러채권이 많은 국가는 이러한 상황을 지그시 지켜보며 다음 수순을 가늠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마치 사공을 잃어버린 배처럼 출렁이고 있으며 불행스럽게도 우리 모두는 그 배에 타고 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멀미로 정신이 혼미하겠지만 그럼에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만 한다.


박한수 유진투자증권
전주지점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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