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시스템, 총체적 ‘고장’ 왜

인류가 가장 흔하게 걸리는 병은 바로 감기다. 감기는 대략 90여 종의 바이러스가 주로 호흡기에 감염을 일으키는 질환인데 사람들 간의 접촉에 의하여 퍼져나간다. 감기가 창궐하는 계절이 주로 겨울인 것에 대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바이러스에 노출없이 추운 날씨만으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복용하면 일주일 만에 낫고,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7일 만에 완쾌 된다”라는 속담에서 보듯 고려 때부터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감기지만 아직까지도 뚜렷한 약물치료법은 없는 형편이다. 그 이유는 감기가 에이즈나 페스트 등과 달리 인류의 생존을 직접적이며, 치명적으로 위협하지는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치료법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현재 꽤 심각한 병에 걸려있다. 자본주의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 각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구조적인 문제와 오류가 발생한 탓이기도 하다. 각국의 우수한 정치가와 경제전문가들이 나서서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사태는 여전히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케인즈 등의 현대경제학 이론이 도무지 통하질 않고 있으며 경제교과서에서도 배우지 않은 금시초문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세계 경제시스템이 총체적으로 고장났다 하겠다.

흔히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에 비유되곤 한다. 주식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생물이든 병에 걸리면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해야만 하듯 경제나 주식시장 또한 일정 기간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지를 호령하는 사자나 호랑이도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리게 되면 진흙탕에 몸을 담그고 치유의 과정에 들어간다. 감기에 걸린 몸에 열이 펄펄 나며 몸져눕는 것은 몸 안의 항체가 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병에 걸린 작금의 세계 경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의 경제 위기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의 경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운영주체인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음험한 탐욕이 깃들게 되고 그로 인하여 경제시스템 또한 고장이 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래 주기적으로 경제공황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은 불가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에 의하여 부의 쏠림이 시작되고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한 인간들의 경쟁심은 레버러지와 거품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레버러지가 임계점에 다다른 순간 밸류체인의 가장 약한 부분부터 파열되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피하고만 싶은 디레버러지와 경기침체가 찾아온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의 새싹이 자라나듯 우울한 디플레이션의 와중에 서서히 희망이 깃들기 시작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경기순환 주기이다.

다시 말해 지금 세계경제는 위험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일반의 우려와 달리 계절의 순환처럼 그리고 아래로 흐르는 물결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초 이 혼란을 야기한 유럽과 미국의 부채는 향후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파열음을 내며 영향을 미치겠지만 감기의 가장 좋은 치료법이 시간을 두고 쉬는 것이듯 그 어려움 또한 시간을 두고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다만 이 위태로운 상태의 변화와 추이를 누가 더 힘차게 이 어려움을 딛고 다음 세상을 열어젖히는지 지켜봐야만 한다.

이기웅 메리츠종금증권 수원지점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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