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젊은이들 사이에 최근 연애결혼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북한에서는 당에서 정해준 배우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는 옛말이 됐다. 또 잘나가는 남편감으로는 바깥바람을 쐴 수 있고 달러 부수입도 가능한 무역관계자나 외교관 등 이른바 대외부문 종사자가 뜨고 있다.관계당국과 최근 북한을 빠져나온 탈북자들의 정보를 종합하면 갈수록 신세대나 청년들 속에서는 중매결혼보다 생활 속에서 맺어진 연애결혼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분위기가 돼가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중매로 결혼하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신식이고 앞선 생각이란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 ‘부도덕한 행실’로 매도되던 대학생들의 연애나 혼전관계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은 자연스러운 일로 되었다. 오히려 대학시절에 연애를 못하면 ‘깨지 못한 바보’란 말을 듣게 된다고 한다.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퍼졌다.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결혼은 생활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상과 한다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북한에서는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풍조가 비난의 대상이 됐다. 평양에서 발간되는 영화 전문잡지인 ‘조선영화’(93년 9월호)는 “…사람들속에서는 사랑과 결혼을 동일한 것으로가 아니라 서로 별개의 문제로 간주하면서 사랑은 사랑대로, 결혼은 결혼대로 분리시켜 생각하는 현상도 없지 않다. … 결혼을 이기적 선택의 자유로 생각하는 것 역시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불행에로 끌고 갈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결혼 대상자에 대한 선호도에서도 지난날과 많이 달라졌다. 지난날 당일꾼, 보위원(정보기관요원), 인민보안성원(경찰)을 선호하던 중상류층이 현재는 무역일꾼 외화벌이 외교관 등 해외여행이 잦거나 외화를 가질 수 있는 부문의 근무자들을 선호하고 있다. 북한의 중상류층에서 국제관계대학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 졸업생은 무조건 중앙당 고위간부 사위감으로 분류되고있다.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는 당 일꾼이 세도가 셌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위간부들은 아들들의 직업을 당 일꾼으로 택했다. 그러나 80년대 중엽부터 외화바람이 휩쓸자 간부들은 “아들들은 외국어를 전공하지 못했으니 외교나 무역, 외화벌이 부문에 넣지 못해도 사위만은 외국어를 전공한 사람을 맞겠다”면서 노골적으로 사위감 물색에 나섰다.

이런 풍조 때문인지 일반주민들 사이에서는 과거 주로 여성들이 상대남자의 가정환경을 따지며 덕을 보려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이해관계를 따지며 여자 덕을 볼 수 있는 이른바 ‘타산결혼’을 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현재 주민들은 결혼 적령기를 대체로 남자는 만 25~27세, 여자는 만 23~25세로 생각하고 있다. 남자 28세, 여자 26세가 지나면 결혼연령이 늦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최근 들어 일찍 결혼하는 풍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처녀나이 27세가 넘으면 노처녀로 분류돼 ‘값’이 떨어지며 남자도 30세가 지나면 노총각으로 밀린다. 고등중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물론 대학을 다닌 여성들도 졸업하기 바쁘게 서둘러 결혼하고 있다.

김일성은 71년 6월 21일에 있었던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 제6차 대회에서 한창 일할 나이에 결혼을 하면 혁명과업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남자는 30세, 여자는 28세가 된 다음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최근에도 경제난이 심화되자 생산현장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는 움직임은 여전하다. 북한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기관지 청년전위 등을 통해 조혼(早婚)을 ‘배은망덕한 행위’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자본주의 나라 사회주의 가 좌절된 나라들에서 부지기수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안락만을 생각하는 배은망덕한 행동”이라고 비난한 것이다.북한에서의 결혼식은 생활형편에 맞게 비교적 간소하게 치르고 있다. 먼저 양가부모들의 합의에 따라 약혼식을 한다.

약혼식은 여자집에서 간단히 음식을 차리고 양가부모나 가까운 친척 몇이 모여 앉아 결혼식 날짜 등을 정한다. 약혼식에서 양가는 신랑신부의 예물을 담은 트렁크를 교환한다. 상류층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자는 여자에게 반지, 화장품, 목걸이, 시계,사계절 옷 혹은 옷감, 속옷, 결혼식날 입을 한복감 등을 필수품으로 준다.여자는 남자에게 시계, 결혼식 때 입을 정장 혹은 옷감, 사계절 의류, 속옷, 운동복 등을 준다. 상류층답게 이것들은 물론 전부 외제고급품이다. 이에 비해 일반주민들은 트렁크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보자기에 결혼식 날 입을 옷감, 속옷 (간혹 시계가 포함) 등을 싸서 교환한다.

결혼식은 3~4일간의 휴가를 얻어 대부분 금요일에 치른다. 이전에는 토·일요일에 많이 했지만 북한당국이 유류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토·일요일의 교통수단을 제한하면서 결혼식도 주로 금요일에 하고 있다.신랑신부는 시내를 돌며 사진촬영을 한 후 신랑집으로 간다. 신랑집에서 정식 혼인 선언을 하고 상을 받는다. 사회와 주례는 따로 하지 않고 하객 중 지정된 사람이 “수령님과 지도자동지의 배려에 의해 신랑 ○○○와 신부 ○○○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수령님과 지도자동지께 충실한 가정을 꾸려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으로 혼인이 선언된다. 최근 평양시 중 상류층 가정들에서는 집보다 결혼식장에서 예식을 올리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전용 결혼식장은 평양의 경흥거리(경흥관)와 문수거리에 있으며 이외에도 이름난 음식점들인 청류관과 옥류관에서 결혼식이 비교적 많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숙청된 이유로 ‘호화결혼식’이 거론됐을 정도로 일부 권력층의 결혼식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우리 관계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북한서도 이혼 빈번하다”

북한에서도 이혼은 비교적 빈번하게 이뤄진다는 게 귀순자들의 증언이다. 북한은 이혼율 급증을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 합의에 의한 이혼제도를 폐지하고 재판에 의해서만 이혼을 판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또 가족법의 이혼조항(21조)에서는 ‘부부관계를 계속할만한 정치 도덕적 기초를 상실한 경우로서 이혼이 사회와 혁명에 이로울 때에는 용인하고 해로울 때에는 부인한다’고 규정, 이혼판결의 정치적 측면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체제유지에 입각하여 가정의 형성과 이혼을 판결하는 원칙으로 인해 정치적 문제가 이혼의 첫째가는 사유가 되고 있다.

부부사이의 극심한 갈등과 대립은 정치적 문제보다는 뒷전이어서 이혼이 허용되지 않아도 사소한 정치적 문제만 제기되면 가차 없이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 주민들 속에서는 이혼의 수단으로 배우자의 사상과 정치적 발언을 폭로하거나 허위진술하는 비극적인 행태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이혼사유가 엄연히 부부갈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허락을 받기 위해 결혼생활 할 때 상대방이 김정일을 욕했다느니 체제를 비난했다고 허위 진술이라도 하면 이혼은 물론이고 보위부의 취조대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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