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시지탄이지만 사실이 공개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와 관련해 김덕규 국회부의장이 던진 일성이다. 대표적인 6·3세대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김 부의장은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 만큼 밝혀진 역사적 진실을 토대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의장은 또 열린우리당 당 의장 경선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권경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당의장 선출이 축제로서 마무리되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 2일 국회부의장실에서 김 부의장을 만나 올 한해 국회 운영 방향 및 정치 현안과 관련한 궁금증을 들어봤다.

- 17대 국회 첫 해를 보낸 소회를 말씀해 주십시오.▲한 마디로 참 안타깝습니다. 여야는 17대 국회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정치, 공부하는 국회, 일하는 국회, 상생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뜻입니다. 다소 실망스럽고 그래서 저 역시도 송구스러울 뿐이지만, 그러나 많은 국정업무를 다루면서 모든 의원들의 행태가 세련되고 발전되어 나갈 것입니다. 국회에서 국정을 다루면서 종합적으로 국가 일을 조망하다 보면 조화의 방법론을 곧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작년이 국정의 접근, 섭렵, 확인의 해였다면, 올해는 아마도 ‘수렴의 한 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초선의원들이 과반을 넘습니다. 이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신다면.▲초선의원들이 사회 여러 분야에서 각자 전문성을 고도로 키워오셨고 크게 활약하셨던 분들이라 그분들의 정치적 활약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이들 초선들이 아직 구체적으로 많은 역할을 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것은 ‘공부하는 국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역대 어느 국회보다 내실있게 진행되는 의원연구단체, 공부모임들이 아침 일찍부터 국회의사당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작년이 이분들의 탐색전이었다면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인파이팅이 시작되리라 기대합니다.

- 선배 의원 자격으로 초선 의원들에게 당부할 말씀이 있다면.▲초심을 항상 기억하라는 당부와 당리당략보다는 나라와 겨레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지난해 4대입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국면이 장기화되면서 파행을 빚기도 했는데요.▲원칙적인 면을 말씀드리자면 국민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12월말 극한 대치 속에서도 결국 충돌하지 않고 임시국회를 끝냈던 것은 3대입법에 대한 2월처리에 대해 양당 원내대표간 합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합의사항은 준수되어야 합니다. 토론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문자 그대로 정치의 테크닉입니다.

-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특히 국가보안법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될 것 같은데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우선 작년말 여야 원내대표간 합의사항이 지켜져야 한다는 원론을 강조드립니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헌법정신의 실질적인 구현은 국가보안법의 존폐여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며 기본권조항들은 국가보안법이 없어야 오히려 훨씬 더 잘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열린우리당은 헌법규정과 헌법정신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연구와 논의 끝에 우리 당이 내놓은 안은 단순한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아니라 형법보완이 함께 첨부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드립니다.

- 한일협정 문서 등 잇따른 외교문서 공개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6·3세대 정치인으로서 외교문서 공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만시지탄이지만 사실이 공개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65년 한일협정은 분명 굴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이 너무나 불충분한 잘못된 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그 굴욕적인 부분에 대해 6·3반대시위를 벌였던 것입니다. 이번 공개를 통해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밝혀진 역사적 진실을 토대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일제의 만행에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정당하고 적정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일 양국 정부와 정치권은 전향적인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과거의 일로 돌리지 말고 공동으로 특위를 구성해서 과거청산을 분명히 함으로써 모두가 수긍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 국회내 한일회담특위 구성을 주장한 걸로 알려졌는데요.▲이 문제와 관련되어서 주관하는 특위는 과거사진상규명특위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도 되고, 별도의 특위로 만들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 문제를 포함해서 조사범위 등도 향후 구성될 그러한 특위에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한일 양국 정부와 정치권은 전향적인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과거의 일로 돌리지 말고 공동으로 특위를 구성해서 과거청산을 분명히 함으로써 모두가 수긍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 오는 4월로 예정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부의장께서는 어떤 인물이 차기 당의장에 선출돼야 한다고 보시는지요.▲국회부의장으로서 여야 사이에서나 당내 문제에서도 중립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경선 전에 입장표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당의 경선은 축제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동안 각종 경선의 집행 또는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당의 원로로서 당을 위한 지도는 적극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당권경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당의장 선출이 축제로서 마무리되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입니다.

- 올해 들어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이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여권의 이러한 노선 선회 움직임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면.▲참여정부도 그렇고 17대 국회도 그렇습니다만,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강렬한 여망을 절대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과반 여당의 탄생도 변화와 개혁을 해내라는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그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후퇴하지 말고 관철해 내야 합니다. 다만 시간의 조절은 있을 수 있습니다. 개혁과 병렬적으로 민생, 경제문제를 꼼꼼히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직시하고 실천하는 것이 실용주의라고 불리어지나 봅니다.

- 여권 주변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민주당과의 합당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민주당과는 한 뿌리, 한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애를 가져야 합니다. 다만 개혁의 질이나 속도 등에 대해 이견이 있어서 열린우리당이 창당하는 과정을 겪기도 했던 것입니다. 형제당이고 우당(友黨)이긴 하지만 합당문제는 아직 당에서 논의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고, 공론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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