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등급 세분화, 자금조달계획서 완화도

요즘 사람들이 만나 주고받는 공통화제가 건강과 돈, 집, 세금 등 경제다.

그중에서도 부동산·세금얘기가 많다. 술자리에선 이에 덧붙여 정치, 386세대, 청와대, 대통령 얘기까지로 번져 열불을 내는 사람들도 적잖다. 지난해보다는 올해, 올 연초보다는 지금이 그 정도가 심한 것 같다. 특히 정부의 부동산·조세정책에 불만들이 많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엇을좀 하려면 정부가 자꾸 괴롭힌다는 볼멘소리다.

대표적 사례가 주택구입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이다. 정부가 9월말부터 주택거래신고지역에서 시가 6억원이 넘는 집을 살 땐 자금조달계획내용을 밝히도록 한 것이다. 6억원 이상 집은 고가주택범위에 들어가므로 집사는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서류로 내라는 얘기다. 투기차단, 탈세방지, 부동산시장안정, 건전한 주택거래를 꾀한다는 명분에서다.

하지만 비난의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나라가 돈을 대주는 것도 아니고 각자가 알아서 집을 사는데 강제로 계획서를 내라니 말이 안된다는 분위기다. 시장자본주의 경제·자유민주주의적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들이다.

서울 강남, 분당 등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싼 곳에 사는 일부 사람들에게 적용될 진 몰라도 정도가 심하다는 반응이다. 실거래가제도가 있고 등기내용이 바뀌면 국세청에 과세자료가 자동통보 되는만큼 관련세금을 제대로 추징하면 되지 않느냐는 강변이다. 심지어 ‘6억원이 넘는 집에 사는 게 무슨 죄냐’는 푸념까지 나온다.

이 제도는 투기가 극성을 부릴 땐 그럴 듯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부동산시장이 대체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서다. 미분양아파트가 쌓이고 지방건설업계는 죽을 쑤고 있다. 더욱이 고급주택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것이다.

비시가 되고 있는 ‘6억원 기준’은 어떻게 나왔을까. 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주택관련세법인 소득세법 시행령에 고급주택적용기준을 6억원으로 정한데서 비롯된다. 비과세대상의 1세대 1주택이라도 집을 팔았을 땐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고급주택 판정잣대였다. 6억원이 넘는 집은 비록 1세대 1주택이라도 ‘있는 자’가 가진 고급집에 해당된다고 보고 세금을 물려왔다. 그 전엔 5억원으로 돼있었으나 물가인상을 감안, 1억원이 올라갔다.

소득세법 시행령상의 고급주택기준으로 쓰인 실거래가 6억원 이상, 전용면적 50평 이상에 들어가는 주택은 그 무렵만해도 적었다. 세금문제도 별로 부각되지 않았고 간혹 과세나 규제를 받아도 지금과 달리 조용했다.

정부는 지난해 ‘8·31부동산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종합부동산세 부과기준을 공시가격 9억원 초과에서 6억원 초과로 강화하면서 1999년의 고급주택개념이 준용된 것이다. 그 때 재정경제부는 “바뀐 기준에 따른 2006년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은 전국 970만 가구의 1.6% 뿐”이라고 안심시켰다. 그 이후 국민들은 집값이 서서히 뛰면서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올들어선 민심이 악화돼 불안이 어느덧 불만으로 확대됐다. 아파트값이 어느날 갑자기 치솟아 과세대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공시가 또는 실거래가 6억원 이상 집을 가진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

문제는 낮게 책정된 고가주택적용기준이다. 게다가 6억원 이상 집에 대해 옥죄는 각종 규제들이 너무 과하다는 점도 그렇다.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외에도 종합부동산세 과세, 양도소득세 중과 등 찾으면 많다. 65세 이상 어르신이 집을 맡기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식눈치 안보고 매달 생활비를 받는 ‘종신형 역모기지론’혜택도 받지 못한다. 여기에 눈이 보이지 않는 정신적 스트레스, 주위의 따가운 시선까지 포함하면 6억원 이상 집에 살고 있거나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동산·조세정책에 대한 불만들이 참여정부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이어져 안타깝다.

“수 십 년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아파트 한 채 달랑 분양 받아 살고 있는 자신이 집값을 올린 것도 아니고, 저절로 값이 뛰어 6억원 이상이 된 것인데도 투기꾼이라도 된냥 몰아붙이는 당국이 서운하다.”는 한 중년 가장의 얘기가 설득력을 더해준다.

관계전문가들은 정부의 이같은 획일적 부동산·조세정책에 가려진 ‘그늘’과 ‘부작용’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다.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서민들을 집값이 올랐다고 해서 무차별적으로 규제하고 과세대상에 넣는 건 문제가 많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된 데엔 어디까지나 정부책임이 크다는 견해다. 집값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정책실패이지 투기의사가 없는 1세대 1주택의 소시민들이 아니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6억원 기준에 대해 이처럼 불만이 많은 건 정부가 1999년 고급주택기준 제정이래 집값이 엄청나게 뛴 것을 전혀 고려 않은 까닭이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분당 등지의 20~30평대 아파트면 거의 6억원이 넘는다. 개중엔 그 이하 금액의 아파트나 연립주택, 단독주택이 없은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 정도는 된다. 그 바람에 자신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고가주택’에 살게 됐고 졸지에 세금폭탄과 같은 불이익을 당하는 보통사람들이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6억원 이상 고급주택’규정이 만들어진 7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고가주택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국에 시가 6억원 이상 집은 약 1만3천가구에 머물렀다. 그것도 대부분 서울의 일부지역에 몰려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한 부동산포털업체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시가 6억원이 넘는 집이 수도권에서만 34만 채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대형 신도시의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들이 들어간다. 이렇게 볼 때 서울지역아파트의 약 20%, 수도권아파트의 약 10%가 고가주택이란 추정이 나올 정도로 1999년과 판이하다.

실거래가격보다 낮게 잡히는 공시가로 따져도 고가주택범위에 들어가는 집은 전국적으로 15만9115채며 내년엔 약 26만 채로 불어날 전망이다. 세계 2백여 국가 중 우리처럼 ‘고가주택’이 즐비한 곳이 없을 듯 싶다.

따라서 고가주택기준이 되는 ‘시가 6억원’이란 눈금을 현실에 맞도록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6억원이란 경계선 때문에 세금대상이 되고, 안되고 하는 획일적 기준도 손질 됐으면 한다. 더불어 과세등급을 현실에 맞도록 세분화시켜 집값이 비쌀수록 세금부담을 많이 하는 방안마련도 필요하다. 이왕이면 주택구입자금계획서 제출도 없앴으면 한다.

청와대의 부동산해법인 △모든 거래 투명 △투기수익 철저 환수 △공공부문 역할 확대 원칙을 지켜가되 정책실패로 피해보는 국민이 없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잖으면 말없는 다수 기층민들의 조세저항 등 무서운 반발이 생기고 나아가 나라통치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기(失期)를 하면 ‘백약무효(百藥無效)이고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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