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란 해법은 없나

전세값 상승이 가파르다. 지난 달부터 강북지역 전세값이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더니 최근 들어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경기도 과천시, 용인시에서도 전세값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가 전세금 지원 확대 등의 대책에도 부동산시장의 반응은 요지부동이다. 널뛰는 전세값 상승 현장을 집중 취재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도담마을 아이파크 32평형에 전세를 사는 최모(36)씨는 최근 집주인과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재계약을 했다. 8,000만원하던 전세값을 주인의 요구로 4,000만원이나 올렸기 때문이다. 한 달 전만 해도 부동산중개업소 전세시세는 1억500만원이었는데 그 사이에 무려 1,500만원이나 더 뛰었다.
최씨는 “맞벌이하는 동안 두 아이를 맡아주는 처가가 가까워 더멀리 이사할 형편도 아니다”며 “어쩔수 없이 대출을 받아 재계약했다”고 말했다.
최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8월 한달간 지역별 전세금 상승률은 서울 강북 14개구가 0.6%로 전국 0.2%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서울 전체와 경기의 상승률은 0.4%였다. 이달 들어서는 서울 강남과 경기 일부 지역마저도 불안한 모습이다. 9월 4~10일 1주일간 서울에서는 마포구가 0.3% 올랐고, 강남, 서초, 은평, 노원구 등이 0.2%의 상승률을 보였다. 전세금이 1주일 사이에 0.2% 이상 오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정부도 주간 전세금 상승률 0.2%면 불안한 것으로 본다. 경기 일부 지역은 더 불안하다. 용인시는 4~10일 사이 0.4% 올랐고, 그 전주에도 무려 1.9% 올랐다.
정부는 대책마련에 나섰다. 지난 13일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올해 영세민 근로자 전세자금 지원액을 1조 6,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4,000억원 늘리기로 했다.
무주택 가구주이고 연간 소득 3,000만원 이하인 근로자는 보증금 6,000만원 이하인 전세를 계약할 때 4,2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또 지자체의 추천을 받은 저소득 영세민은 보증금 5,000만원 이하인 전세에 들어갈 때 3,5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전세자금을 지원받으려면 전세보증금이 5,000만원 또는 6,000만원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전세난이 심각한 수도권에서는 대부분 전세보증금이 이 한도를 넘어선다.
정부가 이처럼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이유는 최근 전세난이 가을철 이사와 결혼이 몰리는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난은 수요부족
전세대란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서울지역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세난은 몇몇 구조적인 요인이 겹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보고 있다. 공급물량 급감을 첫째 요인으로 꼽는다. 건교부 통계에 따르면 서울지역 주택공급물량은 2002년 16만여 구가에서 2004년 5만8,122가구, 2005년 5만 1,797가구로 급감됐다.
가격이 비교적 싼 서민용 다세대 주택도 2002년에는 10만가구가 넘게 공급됐으나 2004년에는 7,257가구, 작년에는 6,631가구가 공급되는데 그쳤다.
반면 수요증가는 급증세다. 신혼부부와 단독 가구주의 증가로 임대수요는 늘고 있는 반면 기존의 전세 계약자들이 대부분 재계약하는 바람에 나타난 이른바 수요초과현상도 전세난 심화의 원인이다. 부동산 114 김희선 전무는 “보유세·양도세가 대폭 오른데다 대출규제까지 강화돼 내집마련 수요자들이 주택구입을 하지 않고 전세 재계약을 하는 바람에 신혼부부 등은 집을 구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향후 3~4년 주기로 전세난이 되풀이되며 전세가 월세로 대거 전환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이는 서민들의 주거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인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박사는 “각종 규제로 주택공급을 줄이고 보유세 강화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도록 강요한 정부 정책의 결과”라며 “월세가 확산되면 중산층의 저축 여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에 매달리고 있다. 수도권의 국민임대주택 입주가구수는 올해 1만9,900가구, 내년 1만 9,300가구, 2008년 3만6,100가구에 불과하다.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시의 경우 올해와 내년 입주가구수는 각각 625가구와 2,537가구에 불과했다. 국민임대주택은 소득제한이 엄격, 일부 계층에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전세난 해결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가 정책적 실수를 인정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데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 강북구 번동에서 10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정부 당국자들이 실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정부의 전세대책 발표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김씨는 “1,000만원~2,000만원을 더 주고 계약을 하고 싶어도 전세물건 자체가 아예 없다”며 “전세매물 자체가 없는데 자금지원만 늘리면 뭐 하느냐”고 말했다.
전세난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설명대로 수급 불균형이다. 문제는 그 수급 불균형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서울에 살겠다는 사람은 계속 늘어난 반면 입주물량은 이 정부 출범이후 계속 줄었다. 특히 집가진 사람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집없는 서민 입장에서는 집세도 오르고 구하기도 어려운 이중고에 빠졌다. 강남 집값을 잡는데 매진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은 못잡고 애꿎은 서민만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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