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이드-무점포 시대의 총아 ‘자동판매기’
‘자동판매기가 세상을 지배한다.’ 한 자판기 판매업체의 선전 문구다. 자판기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어 취급 품목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커피, 음료에서 호신 무기, 음주 측정, 운세까지 매우 다양하다. 고속버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 무인 자판기가 설치된 지도 오래됐다. 최근 들어선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판매 품목도 크게 늘고 있다. 주차요금 자동 지불, 민원서류 및 증명서 발급 등 공공서비스로 확장된데 이어 네일 아트, 성인용품 등 웰빙 분야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자판기사업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창업아이템이다. 큰돈 없이도 할 수 있는 분야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 전에 들어가는 임대료, 인테리어 비용 등 창업 준비자금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1000만원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해볼 수 있는 분야다. 또 인건비가 전혀 들지 않는 점도 장점이다. 취급품목이 많고 대상 고객
층도 다양하다. 학생에서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아주 넓은 편이다.

그렇다고 손님을 ‘왕으로 모셔야’ 장사를 잘 할 수 있는 아이템도 아니다. 전문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관리가 어렵지도 않다.

원가는 낮지만 수익률은 높고 투자자금 회수율이 빠르다. 불황에 강한 업종이란 것은 검증된 바 있다. 그래서인지 ‘1000만원 투자로 월 200만~300만원 수익 보장’이란 식의 호객 문구들이 자판기사업 광고에 자주 등장한다. 창업희망자들 역시 여러 조사과정에서 자판기를 아이템으로 떠올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1000만원 투자로 200만~300만원 수익

자판기 값은 취급 품목, 크기 등에 따라 다르긴 해도 대체로 대당 200만~300만원 선이다. 1천만원 정도의 창업자금을 마련했다면 이른바 ‘등급품’이라고 하는 중고제품을 쓰지 않아도 창업초기부터 몇 대를 마련해서 사업을 시작해볼 수 있다.

싼 것은 20만원 대도 있고, 비싼 자판기는 2000만원까지 하는 등 천차만별이다.

자판기 크기나 모양은 취급품목에 따라 거의 고정화 돼있다. 자판기 값의 높고 낮음은 5백원 짜리 동전 및 지폐, 신용카드, 현금카드 사용 가능 여부 등 주로 돈을 넣을 수 있는 다양성에 따라 나뉜다. 올 들어선 인터넷을 접목시킨 제품들이 인기다.

여름철에는 빙과류를 파는 원격조정 자판기가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엔 위성통신을 이용한 전자서비스 자판기까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쟁력 있는 자판기사업을 하기 위해선 투자비가 갈수록 늘 전망이다.

자판기사업은 일반적인 광고문구와 달리 투자대비 수익률이 5~8% 정도면 ‘꽤 좋은 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가장 보편화된 커피자판기의 경우 대당 투자대비 수익률이 3~5% 쯤 된다. 그러나 커피자판기 값이 200만~500만원 쯤 하므로 투자시간과 노력, 교통비 등 현실적 지출까지 감안하면 1~2대를 운영해 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 힘들다.

자판기사업 전문가들은 “창업 초기엔 3~4대로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장소제약을 받으므로 자판기를 최소한 3~4곳에 설치해야 사업성이 있다는 얘기다.

자판기사업은 무엇보다도 장소선정이 승패를 가른다. 자판기판매업을 하는 강영익 일산유통 사장(47)은 “자판기사업을 생계수단으로 삼으려면 목이 좋은 자리를 10군데쯤 잡고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황에 따라 자판기를 옮길 곳도 확보해둬야 한다. 학원가나 독서실 부근엔 라면자판기 등 음식관련 자판기가 유리하다.

30~40대 샐러리맨들이 많은 곳이라면 커피와 음료자판기를 설치하는 게 좋다. 흡연 장소에 이런 자판기를 설치하면 금상첨화다.

극장 밀집지역, 놀이공원, 대학가, 게임방 등 청소년이 몰리는 곳엔 스티커 자판기나 게임 등 놀이자판기를 설치하는 게 효과적이다.

병원, 백화점, 학교 등 대중시설이나 공공장소에 자판기를 설치하려면 임대료를 내야한다. 건물주와의 수익분배는 월정액 10만원 지급, 나온 액수를 반반씩 나눠 갖기 등 방법이 다양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면 정액제 지급이 유리하고 판매에 기복이 심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정률제가 좋다.

국유지나 시유지에 자판기를 설치하려면 해당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또 자판기는 건물 안에 설치하는 게 원칙이다. 밖에 설치할 경우 파손이나 도난 위험성이 크다. 도로상에 튀어나와 있으면 신고증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기억해둬야 한다.

자판기사업은 창업 준비자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등 매력이 많음에도 운용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 자판기 취급품목이 대부분 유행에 민감하고 쉬이 식상함을 느끼는 단점도 있다. 아이디어는 그럴싸한데 소비자들 반응이 신통치 않아 실패하는 자판기들이 적지 않다.

노래방 고객들을 위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등장한 드럼자판기가 좋은 사례이다.시판 초기엔 아이디어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줬다.

10분에 1000원으로 멋진 드럼주자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상품성이나 시장성이 높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그러나 연주의 단조로움이 문제가 됐다. 날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져 사업이 시들해졌다.

라면 즉석 자판기는 일부 청소년들로부터 ‘직접 조리된 라면보다 오히려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선 참혹할 정도로 실패했다. ‘집에서 끓이는 맛’을 내세웠지만 소비자들은 위생부분이 제대로 확인 안 된 자판기라면을 선택하지 않았다.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인식은 라면자판기를 이용하느니 차라리 컵라면을 사먹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팝콘자판기는 좀 다른 이유로 실패한 사례이다.

이 자판기는 영화관사업 성장과 더불어 시장성이 컸다. 단점이라면 특수한 공간에서만 소비가 이뤄진다는 것. 일정한 장소를 벗어나면 이상하리만치 팔리지 않는다. 또 불과 몇 년 전에 크게 유행했던 스티커사진 자판기도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인화해주는 자판기로 대세가 넘어가면서 그 판도가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이처럼 시장 유행에 민감한 게 자판기사업이다. 1000원 미만 가격인 커피나 음료자판기는 가능하지만 수 천원대 상품엔 자판기라는 판매 채널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판기에서 취급할 수 있는 상품 가지 수가 수 없이 많아도 커피, 캔 음료 등 몇 가지 아이템 외엔 매출을 꾸준히 내기가 어렵다. ‘유행이 지나기 전에 투자비를 뽑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게 마련이다.

자판기 설치장소에 결정적으로 제약을 받는다는 점은 자판기사업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게다가 서울도심지의 경우 ‘위탁업체’라는 대형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 회사 중 상당수는 ‘주먹’들이 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강영익 사장은 “건물주와 서면으로 계약하고 설치했는데 다음날 자판기가 쓰레기하치장에 조각나 버려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며 경험담을 전해준다. “보상이야 해주지만 건물주는 물론 경찰 조사도 유야무야 끝납니다.” 도심지 자판기사업은 ‘주먹’세계에서 달려들 정도로 이권사업화 돼있다는 설명이다.

자판기사업은 적은 수량과 소액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자판기 수가 많고 투자액 규모가 클수록 수익률이 높아지는 ‘빈익빈 부익부’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자판기사업은 투자비가 대부분 기기 값이므로 이이템 수명 연한에 따라 투자비 회수 조건이 달라지는 것도 유념할 점이다.

과거 스티커사진 자판기처럼 수명이 1~2년에 그친다면 투자비 회수도 못한 채 중고 값으로 팔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자판기는 다른 업종과 달리 유별나게도 일본 흐름을 따라 갑니다.” 3년째 자판기사업에 매달리고 있는 김학영 자판기방 사장(37)은 자판기 시장동향 파악을 위해 봄, 가을 일본을 드나든다. “유행을 따라가려면 철저히 따라가고 안정적인 창업 아이템을 잡으려면 커피, 캔 음료 등 안정적인 아이템이 좋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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