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장관의 숙부 정진엽씨는 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기자와 만나자 그는 처음엔 “집안 일”이라며 “언론에 공개해 품평회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먼저 지난 18일 전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작년 8월 4일 전북대병원에서 위암말기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투병생활한지 벌써 7개월이 넘었다. 그런 관계로 건강이 안좋다. 수술을 하면 30~40%확률이라고 했지만 살만큼 살았다. 수술을 해가면서 몇 년 수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퇴원수속을 받고 집으로 왔다. 집에서 한방약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최근 숙질간 법정 다툼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집안 친척들이 찾아와 정씨가 법원에 출석하지 못하도록 막아선 이유도 재판에 나가지 못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 장관하고 나하고 법정싸움을 한다고 하니 집안 형제들이 ‘형님 그럴 수 있느냐’ ‘우리 집안 망해먹으려고 그러는 거냐’며 법정에 못나가게 막았다”고 털어놓았다. 정씨는 “사람들이 이번 소송을 두고 ‘작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세상에 인간적으로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못된 작은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그럴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슴속에다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그는 특히 정 장관의 부친(정씨의 친형)이 작고했을 때를 회상하며 자신이 했던 역할을 강조했다. 정씨에 따르면 자유당 시절 도의원을 지낸 정 장관의 부친은 10년 넘게 투병생활을 했고 정 장관이 고 2 때에 사망했다. 당시 전주에서 공무원 생활을 접고 막노동일을 했던 그는 정 장관 부친을 전주의 모 병원에서 데리고 순창으로 내려갔다. 순창에 간지 이틀 뒤 정 장관의 부친은 사망했다고 한다. “형님(정 장관의 부친)이 작고했을 당시 (정 장관의) 가족들은 빚더미 속에 있었다. 장례 도중에도 빚쟁이들이 몰려왔다. 도 의원 선거운동 당시 선거운동자금 150만원을 대출 받았는데 빚이 그대로 남았다. 집안은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빚쟁이들에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갚겠다”고 까지 했다.

집안회의를 열어 “12대 종손은 살려야 한다. 우리 집 종손이 허물어져 버리면 작은 입(집)들이 융성해봤자 우리 집안이 내놓을 건 없다”고 말하면서 내가 직접 하던 일 팽개치고 6개월 동안 순창에서 뒷수습을 하며 생활했다. 정씨는 6개월 동안 정 장관의 부친이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짓고 순창을 떠났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유산도 포기하며 정 장관의 모친에게 “내 것(유산)도 양보하고 갈 테니 갚아야 할 돈은 모두 갚고 남은 돈이 있으면 자식들 공부하는데 쓰시라고 그랬다”며 “정 장관 어머니가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며 걱정하기도 했지만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입에 풀칠 못하겠느냐”고 말하며 순창을 떠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씨는 정 장관의 모친에게 섭섭함이 남았다. 그는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쌀 한 되도 주지 않았다”며 당시의 서운함을 내비쳤다. 이후 정씨는 막노동판, 식당(운영)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왔다고 한다. 현재 정씨가 살고 있는 10평 남짓한 임대 아파트도 60세가 넘은 후에 겨우 마련했다고한다.

“나는 나대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내가 기술자로서 행세를 했지만 제대로 배운 기술이 없다. 그 동안에 빚을 안 질 수가 없었다. 빚 속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가는 정이 있고 오는 정이 있고 하는 게 인간이다. 내가 곤경에 처해 있어 정 장관에게 ‘구걸 좀 하자’고 그랬다. 조건(과거 일)을 들먹여서 돈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다. 30년 동안 고생했고, 너희들이 잘 됐으니 (나) 좀 도와달라는 취지였다.” 정씨는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몇 차례 1천만원씩 도와준 적이 있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보니 생활비와 건강관리비로 금세 바닥이 나 버렸다”며 “결국 하숙비와 유산의 대가를 법에 호소하게 됐다”고 소송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소송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정 장관에 대한 자신의 섭섭했던 속내를 내비쳤다.

정 장관이 첫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KBS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작은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컸다는 게 아니라 외가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그랬다. 나의 서운한 감정은 여기서부터 발단이 됐다. 방 2개 중 하나는 우리 부부가, 다른 방 하나에 정 장관과 우리 아이들 4명이 엉켜 생활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고2때까지 내 집에서 보살피며 키웠다. 나는 집안의 제일 어른이다.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가 키웠다고 그러면 무슨 마이너스가 되는가.”정씨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정 장관에게 연락을 했더니 뭔가 착오가 일어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음날 재방송할 때는 방송국에 가서 얘기를 해 시정을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재방송에서도 시정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 할 바엔 하숙비를 내고 방송을 해야 하지 않느냐. 집안에서도 야단났었다. 그 양반 성질에 가만있질 않을 것이라고 걱정들 했다.”정씨는 정 장관의 결혼식 당시의 섭섭함도 토로했다. 정 장관이 혼주를 친가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외숙부를 세웠다는 것. 그는 “정 장관 아버지를 내 무릎에 앉혀서 전주에서 순창으로 데리고 갔다”며 “돌아가신 이후에도 내가 직접 가족회의를 열어 12대 종손의 집안이 어려워졌으니 우리가 수습해줘야 한다고 직접 나섰는데 어떻게 혼주 자리에 외가쪽 사람이 앉아 있을 수 있느냐”고 역정을 냈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을 두고 정씨가 정 장관에게 잦은 청탁을 했었다는 풍문도 있다. 실제 정 장관과 가까운 여권의 한 의원은 “정 장관이 작은 아버지 때문에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청탁을 자주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씨는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권력이 탐이 나서 정치, 이권을 달라고 청탁을 하겠느냐.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상상도 못한다. 이권을 청탁한 일은 절대 없다. 정 장관은 그런 것을 부탁하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럴 처지도 못된다.”정씨는 “굳이 청탁이라면 MBC 기자시절 한 두 번 한 적이 있다”며 “내 개인문제가 아니라 일가친척에 관한 일로 법망에 걸려서 곤욕을 치르게 돼 있어 ‘네가 기자니까 아무래도 아쉬운 소리하번 하면 잘 되겠지 않느냐’고 도와주라고 부탁한 적은 있다”고 전했다. 정씨는 일단 4월 중순으로 잡힌 다음 재판기일엔 반드시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난 18일엔 건강과 친척들의 만류로 나가지 못했지만 꼭 나가서 할 말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음 번엔 꼭 출두할 것이다. 장정 몇 사람이 막아 가지고는 나를 묶을 수 없다. 정 장관이 재판을 건 뒤에 변호사를 샀다. 이기고 지는 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이기려고 한 게 아니다. 사실 이번에 내가 출석하지 않았을 때 내심 정 장관도 안나왔기를 바랐다. 그러면 유야무야 그냥 정리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정 장관이 변호사를 내보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쪽에서 말하는 대로 시효가 지났다. 그러나 끝까지 갈 생각이다. 법원에서 할 말까지 다 정리해놨다.” 정씨는 당초 언론과의 접촉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정 장관이 변호사를 여러명(법원에 학인한 결과 정 장관은 이번 사건을 5명의 변호사에게 수임했다)이나 고용해 대응하는 것을 보고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씨가 이런 입장을 갖고 있는 한 대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정 장관에겐 곤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것 같다. 그러나 양측 모두 감정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지만 ‘타협’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어 실제로 소송전이 법정으로 갈 것인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정 장관측 입장
“여력이 있으면 도울 생각”청구한 액수 너무 많아 이의신청한 것정동영 장관은 이번 일과 관련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정씨에게 보냈다. 정씨가 밝힌 답변서에는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에게 집에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고2때까지 생활하며 학교를 다닌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유산관계, 하숙비는 시효가 넘었고 그동안 도와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또 “여력이 있는 한 도와드리려고 한다. 그 동안 도와드린 돈은 유산, 하숙비로 전제로 한 게 아니다”라며 “도리를 하기 위해서 도와드린 것으로 앞으로도 여력이 있으면 도와드릴 생각”이라고 정 장관은 밝혔다. 정 장관 변호인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법률적으로는 시효가 지났고, 당시 (정 장관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지불할 의무는 없다”며 “하지만 숙부이다보니 생활비 성격으로 드리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씨가 소송을 제기한 직후 법원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게 된 것은 너무 많은 금액을 청구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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