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분양 아파트 상권의 허와 실


신도시형 아파트 밀집지역 주변을 보면 고층의 상업용 빌딩이 집중돼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규분양 당시 배후인구와 교통시설이 관건이다. 따라서 “최고의 상권”, “분양 또는 임대만 받으면 대박은 따 놓은 당상” 등 분양업자들은 홍보에 열을 올린다. 또 보통 역에서 도보 몇 분거리, 몇 천 혹은 몇 만세대 독점상권 등 투자자들과 창업자들을 현혹하는 자극적인 문구와 상권에 대한 전문가적인 식견을 내세워 투자를 부추긴다.
하지만 배후인구가 많다고 해서 모두 내 고객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아파트 밀집지역이 지척에 있다고 해서 그들이 당연히 상권내로 들어와 소비를 해주지도 않는다. 가까운데 사는 고객들이라도 그들이 주머니를 열 만한 거리가 없다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찾아와 주지 않는 법이다.



필자에게 매출부진에 대한 원인진단을 구했던 의뢰인의 사례를 통해 입지선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의뢰인의 점포는 수원시의 모 신도시형 아파트단지 주변 상업지역 내 2층의 닭갈비 전문점. 오픈한지 1년여 경과되었지만 하루 매출이 10여만원에 불과해 매달 적자에 허덕이는 실정이었다. 상권은 3면이 대단위 아파트단지에 둘러싸여 있고 삼성전자산업단지와 지근거리에 있어 초기 상가분양 당시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지역이다.

매출이 절로 따라온다고?
의뢰인은 점포를 임차하면서 분양업자의 말에 선뜻 계약에 임했다고 한다. 2층이지만 상권의 초입이다, 코너건물이라 가시성이 뛰어나다, 배후인구의 상권 내 진입시 대로변쪽 보다는 해당 점포 앞 이면도로를 통해 진입동선이 잡혀 접근성 또한 뛰어나다, 고로 매출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는 분양업자의 분석.
오픈 후 초기 몇 개월간은 하루 매출이 30여만원에 달했다. 3~4개월 후 의뢰인은 하루매출 10여만원을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매출이 떨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몇 개월간 이러한 상태가 이어지자 의뢰인은 매출부진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했다. 나름대로 고비용을 들여 다른 전문가들을 모셔와 컨설팅을 받았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자리는 좋다. 그런데 매출이 안 나온다는 얘기는 맛에 문제가 있거나, 홍보와 고객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 의뢰인은 그때부터 전단지며 홍보물, 이벤트 등 고객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막바지에 몰린 의뢰인은 ‘회생’이냐 ‘폐점’이냐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고자 필자에게 컨설팅을 맡겼다.
먼저 해당 상권은 1만8,000세대 규모의 주거지역에 둘러싸여 있다. 분양 당시 업체의 홍보대로 탄탄한 배후인구를 겨냥한 독점상권으로서 충분히 좋은 상권의 조건을 지니고 있는듯하다.
또한 의뢰인의 점포는 배후인구가 사거리 횡단보도로 집중되어 상권내로 진입하기 위한 초입에 위치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현장에 나와 육안으로 보면 누구나 “입지는 좋다”라고 볼 충분한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업종, 맛, 시설, 서비스 등 내부적인 문제점이 없고 좋은 입지조건임에도 매출이 없다는 것은 분명 다른 데 이유가 있었다.

배후인구 소득수준 따져야
배후아파트단지를 조사하면서 60% 이상이 18~32평형대 아파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세대주를 포함해 세대구성원이 젊다는 점, 자녀들은 초등생 이하로 비교적 어리며, 맞벌이 부부가 많을 수 있다는 점 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요건이다.
12~15시를 전후해 유치원 및 어린이집 차량의 통행량과 초등생들의 하교시 통행량 등을 조사함으로써 알 수 있었다. 또 탐문을 통해 거주인구 중 지역공단 근로자들이 많고 소득수준은 비교적 중·저소득층, 유치원 및 어린이집의 조사를 통해 종일반 아이들이 많다는 것 등을 확인함으로써 맞벌이 부부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곧 평일 소비가 부진한 이유일 것이다. 또 이들은 소비를 하더라도 야간을 이용, 아파트단지 내 상가를 주로 이용한다. 또한 생필품 위주의 소비가 주를 이룬다. 인근에 상권이 있다하더라도 평일에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자녀가 어리고 맞벌이 부부가 많은 주거지역 내 소비 성향의 특징은 주말에 몰아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젊은 부부들은 대형 할인점을 이용해 일주일치 생필품을 한꺼번에 구매한다. 또한 주말 외식도 대부분 쇼핑과 연계되어 이루어진다. 따라서 주변에 대형할인점이 있거나 더 큰 규모의 상권이 있다면 소규모 상권은 치명적일 수 있다. 불행히도 삼성홈플러스, 킴스클럽 등이 반경 1㎞ 이내에 있었다. 주말에 할인점을 방문해 본 결과 이용자수는 예상대로였고 대부분이 인근 거주민들이었다.
상권 내 동종업종이 있다면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이를 확대해 크게 보면 상권간에도 경쟁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상권의 규모, 특징에 따라 상권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이는 배후고객들의 소비지점이 이동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상권간 거리가 멀지 않다면 경쟁에서 밀리는 소규모 상권은 들러리 역할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의뢰인의 점포가 속해 있는 상권은 전반적으로 업소들의 업황이 부진했다. 엄청난 배후인구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이 상권 내로 들어와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후인구들은 어디서 소비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조사결과 의뢰인의 점포를 비롯해 상권 내 업소들의 부진 원인은 상권 경쟁력에 있었다.
의뢰인의 상권이 위치한 곳은 수원시에서도 4대 상권 안에 든다는 인계동 상권 주변. 상권 규모의 5배 이상, 전체 업소수의 3배 이상이 인근의 갤러리아백화점, 홈플러스, 뉴코아백화점, 킴스클럽 등의 집객시설에 집중돼 있는 곳이다. 의뢰인의 점포가 속해 있는 상권의 근본적인 부진은 여기에 있었다.
주고객이라고 생각했던 배후주거지역에서 고객들은 얼마든지 도보로 인계동 상권에 접근이 가능하다. 인계동 상권은 외식업 위주의 상권으로 외식업 개업소 수만도 500~600 업소에 육박한다. 의뢰인의 상권 내 외식업소 수는 80여개에 불과하다. 상식적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500~600개 업소에서 골라먹겠는가, 아니면 80여개 업소 중에서 골라 먹겠는가.

상권내 이용고객 변화 감지
초기에 기대했던 배후고객들의 소비가 인근의 대형 상권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해당 상권 내에서의 소비는 부진해졌다.
한편, 상권을 이용하는 고객의 변화가 나타났다. 주고객으로서 기대치 않았던 인근의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의외로 상권 내 소비의 주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상권을 이용하는 주 고객의 동선도 다르게 나타났다. 즉, 의뢰인의 점포가 상권의 초입이 아니라 상권의 동쪽이 상권의 초입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의뢰인의 점포가 상권의 끝자락이 돼버린 셈이다.
결국, 고객의 접근성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점포는커녕 외부 간판마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보니 입지조건이 ‘C급지’로 전락한 모양새다.
상권이 형성될 초기 산업단지쪽의 점포에 입점한 업소들은 큰 기대 없이 입지에 대한 핸디캡을 안고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그러나 지금은 나름대로 매출이 양호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 오히려 점포비용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사람의 흐름에 따라 돈의 흐름이 따라간다는 상권법칙이 적용되는 사례인 것이다.
의뢰인 점포의 경우 전문가들도 충분히 입지선정에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는 것. 그간 배후아파트단지에만 전단지, 홍보물 등을 뿌리고 마케팅을 펴왔기에 수정이 필요했다. 의뢰인 역시 그간 산업단지 소비자들을 아예 바라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의뢰인에게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타깃을 산업단지 근무자들로 재설정해 공략해 볼 것인가 아니면 폐점을 할 것인가.
필자는 후자에 무게를 두었다. 의뢰인의 의욕은 꺾일 대로 꺾여 있는 상황이었고 적극적인 회복의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그간 적자가 심해 더 이상 홍보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것도 회생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또 점주의 주장으로는 맛과 서비스는 최고라고 하지만, 필자가 보는 바는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취급하는 메뉴가 낙지와 닭갈비인데 손님이 찾든 찾지 않든 재료는 항상 준비를 해놓아야 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낙지나 닭고기는 적정량을 준비해 놓지만 팔리지 않으니 냉장고에서 오래 보관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어 내니 맛이 좋을 리 있을까. 그렇다고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재료비 손실을 감수하면서 계속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자니 자금에 여력도 없다. 방법은 그나마 빨리 손을 털 수밖에.
필자가 폐점을 유도하자 의뢰인은 많이 아쉬운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투자자금이 3억이 넘게 들어갔는데 돈을 벌어보기는커녕 1년간 적자만도 5,000~6,000만원이 넘으니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다만 점주는 그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

성공 앞당기는 ‘실패 자각’
필자의 폐점 권유에도 의뢰인은 이후 3~4개월 버텨본 모양이다. 결과는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에서 떼이고, 재료는 외상으로 들여놓다보니 재료상으로부터 보증금 가압류까지 당했다고 한다. 그 결과 건물주로부터 쫓겨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컨설팅만으로 모든 점포를 살려낼 수는 없다. 또 정확한 진단과 회생방안을 마련하더라도 결과물에 대한 기대치는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폐점도 전략이다. 아니다 싶으면 빨리 손 털고 나오는 것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의뢰인이 클리닉을 받은 직후 폐점을 했다면 그나마 보증금은 온전히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대책 없이 버틴 결과 금전적 손해는 물론 마음의 상처까지 입게 되었으니 다시 창업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을까.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면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무리하게 어찌해 보겠다한들 제 모양새는 갖추기 어렵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시작이 잘못되었으면 결과도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시작부터 철저하게 준비하고 하든지 잘못 시작했으면 빠른 결정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실패에 대한 자각이 빠르면 그만큼 성공에 대한 시기도 앞당겨 질 수 있다는 점, 명심할 일이다.
<정연강 에이킹창업시스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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