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장성 진급 비리 의혹과 관련, 장성 진급 인사에서 탈락한 P대령이 지난 1월 “기무사의 비위자료는 날조된 것”이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육군본부(이하 육본)에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군 검찰이 남재준 전 육참총장에 대한 증인 채택을 재판부에 촉구하는 등 막바지 진실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드러난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육본 고위층이 진정서를 제출한 P대령을 상대로 진정서 취하를 종용하는 등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또 진급 심사에서 탈락한 후보자가 기무사 자료와 관련, 이의제기를 하면서 진급 탈락의 부당함을 주장한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로 현재 육군과 국방부는 진정서 처리를 놓고 곤혹스런 상황에 빠져 있다.

P대령의 진정서를 접수한 육본 감찰관실은 이에 대해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아직 (진정서건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기무사나 헌병대에서 올라오는 이른바 기관 자료를 인사에 활용할 때는 반드시 인사검증위(이하 인검위)를 거친 자료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탈락자에게 탈락 사유를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국방부, 육본, 군 검찰 간 감정대립으로까지 비화되며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육군 장성 진급비리가 터진 직후 국방부가 밝힌 진급제도 개선안의 골자다. 국방부는 지난 6일, 군 참모총장의 인사권한을 축소하고 국방부의 인사 참여 폭을 늘리는 내용의 개선안을 제시했다. 지난 육군 진급인사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기무사와 헌병의 진급 대상자 비위자료에 대해 투명한 절차를 거치겠다는 뜻으로 육참총장의 인사권에 제도적으로 선을 긋겠다는 국방부의 의지가 실려 있다.

그런데 최근 육군 장성 진급비리 사건 당시 유력한 장성 후보자였던 P대령이 “기무사의 비위자료를 활용한 진급 심사는 잘못된 것으로 자료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육본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정서는 군 검찰에서 육군 장성 진급비리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던 지난 1월경 육본 감찰관실에 제출된 것으로, 현재 현역 군인의 고충제기를 처리하고 있는 육본 조사과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육본은 진정서가 접수되자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문제가 된 비위자료의 출처인 기무사에 협조를 요청했고 기무사 관계자의 설명을 들은 것으로 확인됐다.진정서를 제출한 당사자인 P대령은 “당시 진급 심사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기무사 비위자료는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해 부당하다는 내용을 육본에 전달했다”며 “육본에서 진상규명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에 따른 조치나 통보는 없다”고 밝혔다.

육본측은 수사 초기부터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까지 장성 진급 인사는 적법한 절차를 거친 ‘시스템 인사’라는 점을 강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항변해 왔다. 때문에 장성 진급 인사에서 후보자의 진급여부를 가리는데 핵심자료로 활용된 기무자료에 대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부당하다’는 P대령의 주장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육본으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그동안 육군 진급인사에 활용돼 왔던 기무자료에 대해 부당하다는 진정서가 접수된 것은 전례가 없었던 만큼 진정서 처리를 두고 난감한 입장에 처해 있다. P대령은 육군 장성 진급비리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던 당시에도 군 검찰에 출석, 자신의 비위 사실을 적은 기무사의 자료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날조된 것이라고 강하게 항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 진급 인사에서 기무자료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데는 진급대상자를 평점 등 기초자료로만 변별하기는 어렵다는 인사상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장성진급은 3단계를 거친다. 갑·을·병 3개 진급 추천위원회가 위원회별로 모든 진급대상자를 1차 심사한다. 이곳을 통과한 후보자들은 진급 선발위원회에서 2차 심사를 거치는데 3개 추천위원회에서 모두 준장추천을 받은 대령들은 선발위원회에서도 자동적으로 준장 진급 추전을 받는다. 대령들에 대한 진급심사 평가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 100점 만점 가운데 ‘표준평가’가 85점, ‘잠재역량평가’가 15점이다. 표준평가는 장교로서 쌓은 공적, 경력, 상훈, 근무성적 등을 기초로 한 것으로 대부분의 진급대상 대령들은 82~84점을 획득해 큰 변별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최고 15점이 부여되는 잠재역량평가인데 자기계발, 공과(功過), 자질덕목 등 민감한 평가항목이 들어 있고 여기서 기무사 및 헌병대(육군 중앙수사단)에서 제출한 개인비위자료가 진급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진급 심사 당시 유력한 후보자였던 P대령은 자신의 비위사실을 적은 기무자료 때문에 탈락한 대표적 사례로 내부에선 알려져 있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P대령 관련 기무사비위 자료에는 ‘부대운영비 유용 등’이란 제목으로 “OO사단 OO연대장시 방책선 관리유지비 180만원과 장비유지비 120만원 등 총 300만원을 유용한 후 고교 후배인 영선반장에게 영선반 운영비로 사용한 것처럼 허위 정리 지시, 00.9.28. OO연대 주요직위자 친선 만찬시 술에 취해 대대장들에게 ‘야, 이 xx들아!’라고 욕설하는 등 음주시 경솔 처신 빈번, O군지사 OO처장시 OO사령관에게 대면보고할 자료를 무성의하게 작성, 군지사령관으로부터 질책 받았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등 안이한 근무자세로 상하 불신”이라고 적고 있다.

P대령은 이 같은 기무자료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진급 심사에서 날조된 자료가 활용된 것에 대해 진정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자료를 작성한 기무사는 “육군 총장이 진급 심사에 필요하다며 개인 비위자료를 요청하면 제공하도록 돼 있다”며 “그러나 정보내지 첩보수준으로 일부는 설(設)이 있는 만큼 사실 확인이 안됐기 때문에 육군총장이 재량껏 활용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기무사의 순수한 첩보수준의 자료가 육본 인사검증위원회(인검위)에서 재작성되는 과정에서 마치 혐의가 인정된 것처럼 탈바꿈됐다는 주장이다. 지난 육본 장성 진급심사과정에서 기무자료가 원 자료가 아닌 인검위 양식으로 재작성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육본 인사참모부 인사관리처장 L준장은 군 검찰에서 기무사 자료의 활용여부에 대해 “(기무사 자료를) 총장님으로부터 받았다. 총장님이 ‘기무사 자료는 검증없이 활용하되 진급되어서는 안 될 인원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셨고, 그에 따라 인검위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활용을 하였고…”라고 밝혔다. 인검위 Y대령도 L준장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으면서 “이 자료는 총장님께서 출처가 신뢰할 만하니 추가적인 사실 확인 없이 진급심사위원회에 활용하도록 지시하셨다”고 진술했다. 기무사에서 작성하는 개인비위 자료가 첩보든 정보차원이든 개인의 인권 및 명예와 직결되는 만큼 사실을 근거로 작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기무사 비위자료는 지휘참고자료, 존안자료…공포자료(?)

첩보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보고서로 정상적 기무활동인권침해 소지 많아 철저한 ‘사실검증’필요장성 진급비리의 핵심인 기무자료는 비위자료, 지휘참고자료, 존안자료로도 불리면서 군 내에서 인사를 앞둔 진급대상자들에게는 공포의 자료이기도 했다. 그동안 진급심사 과정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던 만큼 인사에서 탈락한 당사자들조차도 기무사의 비위자료에 어떤 내용이 기재돼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육군 장성 진급 비리가 터지면서 기무자료가 당사자들에게 공개됐고, P대령과 같이 기무자료의 사실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원천적으로 이번 사건에서 기무자료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무사 요원이 수집한 첩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정상 활동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사 자료가 아닌 첩보자료가 군 인사 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데 있다.

육군 인검위의 검증을 거친다지만 P대령과 같이 부대 운영비 유용 등의 경우는 검증과정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검증 자체도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기무자료에 기재돼 있는 것만으로도 진급심사위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때문에 기무자료 작성 시 개인의 인권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좀 더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물론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기무자료를 검증위가 진급심사위원회에 넘겼다는 것 자체가 1차적인 문제이다. 검증위는 육군 장성 진급 당시 사전에 내정된 ‘장성 진급자 52명’을 진급시키기 위해 P대령을 포함, 경쟁관계에 있던 17명의 기무자료를 자체 검증절차 없이 진급심사위에 올렸으며, 이들은 모두 잠재역량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아 탈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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