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은 지난 4일 흥미 있는 내용을 게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특유의 서민적인 화술과 토속적인 비유법을 발휘했다며 몇가지 사례를 소개한 것이다. 먼저 3월6일 건설교통부 보고에서는 ‘홍역론’, ‘병아리와 방구들론’이 나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홍역을 오히려 반가워 한다. 왜 그런가하면, 홍역을 치르고 나면 다시 안 하니까. 안 하면 두렵지만, 하면 두렵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건교부가 다사다난한 2004년을 보낸 것을 격려하는 말이었다.또 국토 균형발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가운데 도시과밀로 발생할 수 있는 우려를 어린시절의 병아리를 키우던 경험을 빌려 전달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집에서 양계를 하면서 병아리를 방에다 키우는데 잠시 방구들 온도를 잘못 맞추면 병아리들이 한쪽 구석에 몰려들어 층층이 쌓여 결국 절반쯤 밟혀서 죽어 버린다.” 이어 3월24일 노동부 보고에선 ‘결판을 내는 정책’ 마련에 대한 각별한 주문이 있었다. “가짓수만 쭉 늘어놓고 반찬은 그득한데 국민이 보기에는 계속 허기지는 정책은 내지 말고, 전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달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이밖에도 “스타플레이어(재벌)를 비롯한 일부 선수들의 항의와 불평으로 심판(공정거래위원회)이 고생한다”(공정거래위원회), “투명성이라고 하면 숫자만 다 공개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전문가가 봐야 알 수 있는 수치의 나열은 투명성이 아니다”(기획예산처), “국민이 공직자에 대해 존경심까지는 안 가더라도 신뢰는 있어야 한다”(중앙인사위원회)는 등의 말들이 쏟아졌다.잘 알려진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 답게 달변가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 가운데도 달변가나 다변가가 많다.

어눌한 듯한 특유의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 있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과 과묵한 성격의 박정희 전 대통령 정도를 제외하곤 역대 대통령은 대체로 말을 잘 하거나 많이 했다.이에 따라 청와대 참모들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도 ‘대통령 말’의 수위를 조절하는 일이 됐다. 국가원수의 말 한 마디에 외교분쟁이 발생하고, 나라경제가 춤을 추며, 정치권이 들끓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까닭이다.그러므로 역대 청와대 비서실에는 대통령의 연설을 담당하는 별도의 팀이 있었다. 이 팀은 대통령이 언급할 중요한 정책적 사항은 관계 부처에서 자료를 넘겨받고, 정치적 쟁점은 여당의 협조를 구한다. 이후 마지막 문구 정리 작업은 과거 청와대에선 언론인 출신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 참여정부 청와대에서는 이 작업에 언론인 출신 보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386 참모들이 주로 간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스타일이 과거와 확연히 다른 근본적인 이유의 하나가 되는 셈이다.그렇다고 대통령들이 비서실에서 건네 주는 원고를 그대로 낭독하지는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게는 대통령 본인의 생각을 실어 첨삭을 한다.

JP 말은 사전 한참 뒤져봐야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를 갖고 진언을 하는 몇 안되는 인사들은 노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말을 좀 아끼시라”고 훈수를 한다. 그럴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나도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느 대통령을 막론하고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보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웃으며 토로한다.임기 초반 “이쯤되면 막 가자는 것이죠”,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등의 말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노 대통령은 결국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기대한다”라는 말(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이 빌미가 돼 국회의 탄핵소추를 당하기도 했었다.

노 대통령이 얼마나 말을 하는지 그가 외국에 나가 동포간담회 같이 좀 자유로운 분위기의 행사에 참석하면 풀기자(기자단을 대표해 취재하는 3명 정도의 기자)들은 말을 받아 적느라 녹초가 된다.물론, 노 대통령도 연설문 작성을 담당하는 참모에게서 연설문 초안을 제출받는다. 최근들어선 대변인을 지낸 386 참모 윤태영 제1부속실장이 주로 이 일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어느 연설문을 막론하고 노 대통령의 첨삭을 거치면 누더기가 돼 버린다.심지어 노 대통령은 TV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기념식 같은 연설에서도 연설문을 다 읽고 나서 “몇마디만 하겠다”며 첨언을 하곤 해 참모와 기자들을 긴장시킨다. 지난 3월27일 새봄을 맞아 기자들과 북악산을 함께 오를 때는 3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산세를 설명하는가 하면, 지방분권과 동북아 정세까지 현안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기도 해 젊은 기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노무현, 직설어법으로 곤욕

노 대통령에 앞선 두 사람의 정치인 출신 대통령(김대중·김영삼)도 말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한다. 다만 이들 세 명의 대통령 간에는 말솜씨와 말투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있다.노 대통령은 다변에 달변이다. 또 나름대로 논리성을 갖췄지만 표현 방식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곧잘 ‘말 사고’를 친다. DJ는 말을 많이 하고 잘 하면서도 매우 논리적이고 표현 역시 부드럽다. 젊은 야당 투사 시절엔 너무 선동적이란 비판을 들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상당히 변했다. 반면, YS는 전혀 말을 아끼지 않고 하는 데 비해 논리가 빈약하고 상당히 거칠다.‘3김 시대’ 정치판을 취재한 기자들은 세 사람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논리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DJ의 말은 받아 적으면 그대로 기사체가 된다. YS의 말은 아무리 받아 적어도 나중엔 기사 쓸 것이 하나도 없다.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말은 받아 적고 나서 무슨 뜻인지 한참 동안 사전을 뒤져봐야 한다.”

YS, 경상도 발음 아직도 전설

어쨌든 DJ는 말에 자신이 있어서인지, 일선 정치인 시절 어느 자리에 가서나 말을 많이 했다. 따라서 다음 일정에 늦어지기 예사여서 수행원들이 안절부절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시간 제약이 거의 없는 간담회 등에선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다만 미리 시나리오가 짜여 있는 공식적인 행사에선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공보수석비서관실 산하에 있던 연설담당비서관(‘아침편지’로 유명한 중앙일보 기자 출신 고도원씨가 오랫동안 담당했다)이 써 준 원고를 그대로 읽고 내려왔다.그런데 사실은 DJ의 본성이 원래 매우 내성적이어서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꺼리는 데 정치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변가가 됐다는 주변의 전언도 나온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2000년 6월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상봉 및 단독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서 김정일 위원장은 거침없고 자신감 넘치는 말솜씨를 보인 반면, DJ는 말수가 적어 대조를 보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통일문제 전문가로, 남북문제에 관해 해박한 이론과 지식을 자랑하는 DJ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세적 태도였다. 평양의 환대에 감사하다는 말과 김정일 위원장의 말에 동감을 표시하는 정도의 간단한 의사표시만 했다.이에 대해 당시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김 대통령의 생각은 이미 서울에서 각종 행사 등 언론보도를 통해 충분히 알려진 상태”라며 “북측은 김 대통령의 생각을 알고 있어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생각이 무엇인지 듣는다는 입장”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당시 너무나도 역사적인 의미가 깊고 세계의 이목을 받는 자리에 임하다 보니 DJ의 내성적인 성격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었다.

전두환 말, 유머 번득여

YS는 말에 있어서도 숱한 화제거리를 남겼다. 경상도 억양이 심한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 제주도에 가서 “제주도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만들겠다”고 한다는 것이 발음이 잘 안돼 “제주도를 세계적인 ‘강간도시’로 만들겠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도 와서 ‘강간’하고, 미국 사람도 와서 ‘강간’하고…”어쩌고 했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이런 에피소는 차라리 ‘애교’에 속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참모들이 볼 때 아찔한 순간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가령, 강원도에 가서 “아름다운 지하자원을 잘 보존하고 가꾸자”고 했다든지, 현충사에서 “한글을 창제하신 이순신 장군” 운운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YS가 말에 있어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은 기질적인 측면이다. 앞 뒤 가리지 않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는 바람에 참모들이 뒤치다꺼리에 애를 먹는다. YS가 10년 전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일갈한 것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의 한일관계와 관련해 “이번에는 반드시 뿌리를 뽑겠다”고 천명한 것은 적어도 ‘DJ식 어법’에선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매우 차분한 성격으로 군 시절에는 별로 말이 없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인으로 변신하고, 특히 1987년 대통령선거에 나서 전국 유세투어를 할 때 말솜씨가 크게 늘었다고 당시 참모들이 전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인 출신 답지 않게 말솜씨가 빼어났고 유머도 풍부했다. 군 시절부터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선 공·사석을 막론하고 자신이 분위기를 주도해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후임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를 당했을 때도 그는 산사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정기적으로 ‘강연’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들을 100여명 단위로 조(組)를 편성해 강연을 했다. 강연 내용은 주로 5공 당시의 경제 발전을 자화자찬하는 것이었는데, 대신 정치적 발언은 철저히 삼갔다. 특히 그는 이순자 여사와 함께 자신의 강연을 들은 사람들과 조 별로 기념촬영을 해 일일이 미리 받은 주소로 사진을 부쳐주는 성의를 보였다. 이를 두고 당시 ‘하산을 위한 여론조성용’이란 분석이 많았다.

박정희 유일한 ‘과묵형’

박정희 대통령의 말이 언론을 타는 것은 매우 의례적인 행사뿐이었다. 기념식 치사나 기자회견문 낭독 등을 제외하곤 일반국민들이 그의 자연스러운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기자회견도 회견문 낭독에 한 시간 정도를 소요한 뒤 미리 준비된 질문에 따른 답변도 답안을 거의 그대로 읽어내려가는 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꼭 필요한 말만 했으며, 간혹 취기가 오르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말 가운데 언뜻 떠오르는 것을 한마디씩만 들자면 아마 다음과 같은 말일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박정희 대통령= “조국 근대화의 역군” 전두환 대통령= “선진국 도약”노태우 대통령= “보통사람들의 시대”김영삼 대통령= “대도무문(大道無門), 인사가 만사” 김대중 대통령= “행동하는 양심”역대 대통령들이 한 말처럼만 실천했으면 우리나라는 벌써 국민의 의식 수준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세계 1등국가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