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5억달러 북한비밀송금은 송두환 특별검사팀의 70일 조사 과정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가성으로 드러났다. 4억달러는 현대가 대북경제협력 명목으로 보냈고 1억달러는 김대중 정부가 직접 부담키로 했다. 북한에 천문학적인 외화를 비밀리에 돈세탁까지 해가며 보냈던 시기는 2000년 6월로서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유례없이 어려웠던 때였다. 1997년말 갑자기 몰아닥친 외환위기로 국가 경제는 파산상태로 빠져있었다. 5억달러를 보냈던 2000년 6월 당시까지도 한국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 묶여 외화를 마음대로 쓸수 없는 처지였다.그런 다급한 IMF관리체제 상황에서 북한에 5억달러나 남북정상회담 대가성으로 빼돌렸다니 김대중 정권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정부였나 의심케한다. 특히 현대그룹은 그 무렵 유동성 부족 등으로 인해 채권단에 의해 정주영 명예회장 퇴진요구가 제기되는 등 그룹해체의 위기에 빠져있었던 시기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로 그때 현대를 통해 그토록 엄청난 달러를 보냈다니 김대중 정권은 남북정상회담과 노벨 평화상만 눈에 보였고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는 안중에 없었나 싶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의 잔여 고통속에 실직자, 노숙자, 파산자들이 자금과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다닐 때였다. 그토록 엄청난 5억달러는 굶주린 동포와 파산기업인들에게 풀었어야 했다.하지만 그 5억달러는 ‘주적’인 북한의 손으로 넘어갔다.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비조로 9억 4,200만달러나 퍼주기 시작한 것도 너무 억울하고 많은 돈인데, 그것도 모자라 5억달러를 한꺼번에 찔러준 것이다. 여기에 성난 국민들은 “김대중 사법처리”라는 요구를 외쳐대기에 이르렀다.사태가 이쯤되자 김대중 지지세력은 그를 엄호하고 나섰다. 5억달러는 ‘평화유지비용’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정상회담 대가성으로 지급된 돈이 ‘평화유지비용’이란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돈 주고 샀다는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간의 평화와 통일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하려면 정상회담 이후 평화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지 3년이 지났지만 남북간에는 평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남북평화조약, 불가침조약, 기본조약, 통신·통상·통행협정 중 어느 하나도 체결된바 없다. 이산가족 면회소 한군데도 설치되지 못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 하나 없이 남북한간에 평화가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동서독간에는 분단 이후 최초로 1970년 정상회담이 열렸다. 물론 서독은 동독에 정상회담 대가로 달러를 비밀리에 송금한 바도 없다. 그러나 2년후 동서독간에는 기본조약이 체결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각분야에 걸친 교류·협력 장치들이 줄줄이 마련되었다.그렇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에는 3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런 제도적 장치가 전혀 체결되지 않은 채 겉돌기만 하고 있다.김정일은 서울 답방 약속마저 어겼다. 단지 10차례의 장관급회담, 7차례의 100명 단위 이산가족교환방문, 제한적인 인적· 물적 교류 등이 있었을 따름이다. 그밖에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MDL)상에의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을 들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관계진행은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으로 정착된 것처럼 꾸미기 위한 전시적이며 선전적인 행사에 불과한 것이다. 남북간의 불가침조약 체결 없이 그리고 휴전선으로 집중배치된 북한군의 후방재배치없는 MDL 철도연결은 남한의 평화를 결코 보장할 수 없다. 그 연결도로는 도리어 북한의 6·25와 같은 기습남침 통로로 악용될 수도 있다. 그동안 열린 장관급회담이란 것도 북한에 쌀주고 비료주며 반미운동과 친북민족공조 선동장으로 악용되기 일쑤였다.도리어 북한은 남한이 찔러준 외화로 핵무기를 개발했고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지금 남한은 전쟁의 공포와 반미친북 세력의 준동속에 휴전후 최악의 안보적 불안감에 싸여 있다. 대북 뒷돈은 ‘주적’의 군사력 증강비요, 자유민주체제 파괴 공작비로 이용된 것으로 보아야한다.‘평화유지비’가 아니라 ‘평화유린비’가 아닌가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화는 절대 돈 주고 살수 없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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